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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세상엔, 울면서도 강한 자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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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살아서는 "밤이 선생이다"라고 힘주어 말했고, 이제 스스로 '밤(夜)'이 되어버린 선생이 있다.

'우물에서 하늘을 보며' 우주를 건져올렸고 '불행을 잘 표현하다' 떠나버린 그는 깊은 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여전히 어딘가에서 세계를 응시하는 듯싶다.

작고 1주기를 맞아 고(故) 황현산 문학평론가(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1945~2018)의 신간 두 권이 서점가에 출간됐다. 절판된 두 번째 문학평론집을 복간한 '잘 표현된 불행'과 2014년부터 4년간 쓴 트윗 8554개를 가려 엮은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난다 펴냄)다. 황현산 평론가는 아직도 팔로워 36만명을 유지(아이디 'septuor1') 중인데, 사후(死後)에도 따뜻하게 기억되며 독자와 소통 중이다.

트윗 모음집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에는 그만의 사유의 깊이가 깊다. 단문의 형식으로 폭넓은 통찰을 부지런히 세상에 실어나르던 문장은 매일 소화해야 할 잠언처럼 읽힌다.

"잔인함은 약한 자들에게서 나올 때가 많다. 세상에는 울면서 강하게 사는 자가 많다."(2016년 6월 22일)

"문학과 예술이 인간의 미개한 지혜로 하늘의 순결함과 전쟁을 벌이는 일이라면, 정치는 인간의 허약한 선의가 땅의 욕망과 협상하는 일인 것 같다."(2015년 12월 3일)

매일경제

고 황현산 평론가의 트윗 모음집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와 복간된 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이 황 평론가의 작고 1주기를 맞아 도서출판 난다에서 새로 출간됐다. 그의 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은 문예중앙에서 2012년 출간돼 제20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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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간된 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에선 여러 시인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특히 두 이름이 반갑다.

최승자 시인을 어느 시상식에서 배웅하던 밤을 환기하며 황현산 평론가는 이렇게 썼다. 하나의 생(生)을 완벽하게 압축해낸다.

"자신의 존재가 잉여물이라고 늘 생각했던 그는 자아를 찾아서, 또는 그 잉여물의 처지를 벗어날 수 있는 합당한 운명을 찾아서 긴 여행을 했다."

최근 이승을 떠난 고 황병승 시인의 첫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를 두고 황현산 평론가는 시(詩)의 '자기 번역성'을 짚어낸다.

"시가 초월이라고 말한다면 그 말에는 시가 곧 자기 번역이라는 뜻도 포함된다. 시의 윤리에 관해 말한다면 타인의 말로 자기 말을 번역할 수 있는 이 능력을 맨 먼저 꼽아야 할 것이다."

황현산 평론가의 장남 황일우 미국 마이애미대 교수는 부친의 책에 서문을 대신해 이렇게 썼다. "아버지의 트윗들은 평소 모습과 가장 닮아 있는 텍스트다. 아버지가 지치지 않고 이야기하시던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믿음이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해지기를 희망한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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