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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2 (일)

"제2 톈안먼사태 될라"…홍콩시위 출구전략 고심하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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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0일 홍콩 시위대에 유모차 부대가 등장했다. 한 아이가 시위를 뜻하는 D(Demonstration), 분노를 뜻하는 A(Angry), 항의를 뜻하는 P(Protest)라는 글자가 쓰인 전단지를 들고 있다. [AFP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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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으로 범죄 혐의자를 송환할 수 있도록 한 범죄인 인도법, 일명 송환법 개정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가 잦아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중국 전·현직 지도부가 모여 홍콩 사태 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중화권 매체에 따르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한 공산당 현직 지도부와 후진타오 전 주석을 비롯한 전직 지도부는 지난 3일부터 하계 휴양지 베이다이허에 모여 연례 국정 현안 회의를 열고 있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국어 매체 보쉰은 이번 회의에서 최고 우선순위 의제가 홍콩 문제라고 10일 보도했다.

홍콩 대학생, 야권,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시위대는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사퇴와 경찰 강제 진압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 설치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홍콩 당국과 중국 정부는 오히려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특히 시위대가 궁극적으로 행정장관 직선제를 추구하고 있어 타협 전망이 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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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보쉰은 베이다이허 소식통을 인용해 "후 전 주석을 비롯한 원로들이 시 주석에게 '악역'을 맡지 말 것을 충고했다"고 전했다. 사실상 강제 진압에 반대하는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출병 형식이 아닌 다른 형태의 행동을 취하더라도 국제사회가 1989년 톈안먼 시위 무력 진압의 판박이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보쉰이 미국에 서버를 두고 중국 공산당에 반대하는 성향인 매체라 정치적 의도가 있어 보이지만, 보도가 사실이라면 당 원로들이 현직 주석에게 이례적으로 국정 현안에 대해 충고했다는 의미가 있다.

미국 블룸버그도 베이다이허 회의가 개막한 지난 3일 중국 전문가들을 인용해 "시진핑은 쉽게 타협하지 않는 성격"이라며 "이번 회의에서 미·중 무역전쟁과 홍콩 문제 모두 강경 노선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쉰은 한발 더 나가 중국 인민해방군이 홍콩 진압 작전을 위한 준비를 마쳤고, 이미 일부 군인은 홍콩 경찰에 섞여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홍콩 시위대는 주말에 홍콩 경찰의 대규모 진압 작전을 피해 도심에서 산발적으로 게릴라성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송환법 폐기와 강제 진압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첵랍콕국제공항에서도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송환법의 부당성을 선전했다. 홍콩 경찰은 도심 시위대에 최루탄을 발사하며 진압에 나섰고 10일 시위자 16명을 불법시위 혐의로 체포했다.

홍콩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인 캐세이퍼시픽항공은 시위 참가를 이유로 직원을 문책한 첫 번째 홍콩 기업이 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캐세이퍼시픽은 10일 지상 근무 직원 2명을 승객 비밀 누설 혐의로 해고하고, 시위에 참여한 조종사도 비행 업무에서 배제했다. 해고된 직원들이 누설한 '비밀'은 홍콩 경찰 축구팀이 중국 청두를 방문한다는 것이다. 강제 진압 이후 홍콩 경찰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경찰의 신상이 공개되자 홍콩 당국이 회사 측에 강력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캐세이퍼시픽의 직원 문책 결정은 중국 정부 측 요구를 하루 만에 수용한 것이어서 홍콩 기업들은 향후 이 같은 압력이 빈발할 것을 염려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9일 캐세이퍼시픽이 홍콩 시위에 참여한 직원을 비행 업무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캐세이퍼시픽이 홍콩과 중국 당국에서 미운털이 박힌 것은 지난 5일 송환법 반대 시위 일환으로 대규모 총파업이 벌어졌을 때 캐세이퍼시픽 직원 2000여 명이 파업에 동참한 데다 최근 캐세이퍼시픽 웹사이트에서 항공권 예약 국가 선택 항목에 홍콩·대만을 독립국가로 표기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캐세이퍼시픽이 1997년 주권 반환 전까지 홍콩을 지배했던 영국의 다국적 기업인 스와이어그룹 계열사라는 점도 당국의 압박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영국은 홍콩 주권 반환 당시 중국과 맺은 홍콩반환협정을 근거로 홍콩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와 평화 시위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혀왔다. 10일에는 도미닉 라브 신임 영국 외무장관이 람 장관에게 전화해 시민들의 평화 시위 권리를 다시 언급하기도 했다. 중국 노선 비중이 20%에 달하는 캐세이퍼시픽은 시위가 격화된 이달 초 직원들에게 "중국 민항당국에 최대한 협조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라"고 지시한 바 있다.

중국 공산당 산하 환구시보는 12일 사설에서 시위 참여자를 비행 업무에서 배제하라는 중국 민항당국 측 요구가 중국인 항공 탑승객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규칙을 어기거나 레드라인을 넘는 홍콩 기업에 대해 중국 당국이 거액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놨다.

[박만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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