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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아베 '경제보복', 文 지지율에 되레 보탬?…韓 '맞대응 카드' 만지작 [일상톡톡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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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1월 베트남 다낭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나란히 섰지만, 서로 다른 쪽을 바라보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일본이 대(對)한국 경제보복 카드를 상당 부분 꺼내든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맞대응 카드를 언제,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나 한국 백색국가에서의 일본 제외 등 상응조치의 큰 틀은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하지 않은 채 우리의 득실과 최적의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WTO 제소 준비는 물 밑에서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1일 일본이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대한국 수출규제 방침을 밝히자마자 WTO 제소 방침을 내놓았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같은 날 열린 수출상황점검회의에서 "WTO 제소를 비롯해 국제법과 국내법에 따라 필요한 대응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통상 당국은 일본과의 후쿠시마 수산물 분쟁에서 역전승을 일군 산업부 통상분쟁대응과를 주축으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의 부당성을 뒷받침할 법리를 하나하나 따져가며 전략을 세우고 있다.

한국이 일본의 부당성을 증명할 법적 근거는 많이 있지만, 이중에서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11조가 주된 공격의 근거로 쓰일 전망이다.

GATT 11조 1항은 회원국이 수출허가 등을 통해 수출을 금지하거나 제한하지 못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것은 GATT 1조 1항 최혜국 대우 의무를 저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이 수출규제 이후 30여일만에 1건의 수출허가를 내준 것도 한국이 WTO 제소 시 GATT 1조1항이나 11조 1항 등을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일본 입장에서는 해당 조치가 수출 금지가 아니라 '수출관리' 차원이라고 방어벽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日 "수출규제, 금지 아닌 '관리' 차원" 방어논리 유지하나?

WTO 제소를 위한 첫 절차는 양자협의 요청이다.

한국이 제소장 역할을 하는 '양자협의 요청서(request for consultation)'를 상대국인 일본에 내면서 정식으로 제소 절차가 개시된다.

이르면 이달 중순쯤 양자협의 요청서를 보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말을 아꼈다.

두번째 카드인 한국의 백색국가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방안은 일단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본 뒤 꺼내 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지난 2일 일본이 각의(국무회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가결하자 "우리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겠다"고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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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아베규탄 4차 촛불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현수막 펼치기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백색국가는 전략물자수출입고시 상 '가' 지역에 해당하는 29개국이다. 바세나르체제(WA), 핵공급국그룹(NSG), 오스트레일리아그룹(AG),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등 4개 국제수출통제체제에 모두 가입한 국가가 대상이다.

북한(제3국 경유 재수출에 한함), 중국 등 나머지 나라는 '나' 지역에 속한다.

수출지역 구분은 최종목적지를 기준으로 하지만, 최종목적지가 '가' 지역이어도 '나' 지역을 경유하는 경우에는 '나' 지역으로 전략물자를 수출한다고 본다.

◆이달 중순 WTO 제소? 정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신중한 모습

가 지역은 사용자포괄수출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나 지역은 개별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다만 허가 처리 기간은 일본의 90일 이내보다 훨씬 짧은 15일 이내, 유효기간은 일본의 6개월보다 긴 1년이다.

정부는 일본이 들어갈 새로운 전략물자 수출지역 분류로 '다' 지역을 신설할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다 지역에는 수출 처리 기간이나 유효기간을 일본 수준으로 강화된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다 지역 신설 등을 위한 전략물자수출입 개정안은 지난 8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결정될 것으로 여겨졌으나 일단 연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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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아베규탄 4차 촛불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촛불과 손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고 한국 백색국가에서 일본 제외를 취소하거나 정부의 상응조치 방침에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 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부가 잠시 검토를 위해 보류한 것"이라며 일부 중단 관측에 선을 그었다.

◆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메시지' 놓고 고심 거듭…대일 메시지 수위 결정 쉽지 않을 듯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5일 발표할 광복절 '경축사 메시지'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데다 북한이 연일 미사일 발사로 남북 경색 국면이 장기화되고 있어 대일·대북 메시지의 방향과 수위 등을 결정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번 주말 광복절 경축사 초안을 놓고 참모진과 의견을 교환하면서 방향을 잡아나가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선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일 갈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이어서 문 대통령이 어떤 대일 메시지를 내놓게 될 지에 국내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본이 지난 7일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법안을 공포하면서 수출 규제 강행 움직임을 이어간 만큼 문 대통령도 이번 조치의 부당성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발신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일본이 지난 8일 수출규제를 강화한 3개 품목 중 1건의 한국 수출을 허가하는 등 강대강 충돌을 피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청와대는 대일 메시지의 수위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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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문 대통령은 일본에 수출 규제 중단을 촉구하면서 양국 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광복절 전까지 일본이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청와대가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양국간 대치전 성격을 '전략·반복 게임'으로 규정하고 일본의 움직임에 따라 대응 조치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여부가 가장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아베 총리가 종전기념일인 오는 15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결정할 경우 국내 반일 여론이 고조되면서 문 대통령의 대일 메시지도 더 강경해질 가능성이 있다.

◆정치권 일각 "친일파 색출해야"…'정부 힘 실어주기' 여론 언제까지?

전문가들은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와 관련해 정부·여당은 친일공세 대신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고 야당은 여기에 힘을 보태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이 한 뜻을 모아 대외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시기에 여야 모두 국내 정치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왔다는 평가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1일 뉴스1과 통화에서 "민주당에서 최근 친일파 색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일본을 향해야 할 메시지가 내부를 향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지난달 1일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한 이후 정치권이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한 상황에서 내부 정쟁이 부각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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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축제 찾은 외국인 관광객 광복절을 나흘 앞둔 11일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서대문독립공원에서 열린 ‘2019 서울무궁화축제’를 찾은 한 외국인 관광객이 무궁화로 장식된 대형 태극기를 촬영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정치권의 이러한 반응이 국민 정서에서 동떨어진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뉴스1에 "여당에서 나오는 도쿄 올림픽 보이콧이나 일본 여행 규제와 같은 강경 주장은 일반 국민 여론과 거리가 있다"며 "야당의 경우 일본 정부를 먼저 질타한 뒤 시간이 흘러 우리나라의 승기가 보일 무렵 정부의 문제점을 지적했어야 하지만, 사건이 터지자 '문재인 때리기'부터 시작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가 지속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당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와 정치권이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물론 실질적인 성과가 지지율에 반영될 것이란 전망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50%에 육박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5일부터 7일까지 조사한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0.4%포인트 내린 49.5%였다.

리얼미터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최근 2주 동안 네 차례 잇따랐던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와 미중 무역분쟁 격화에 따른 경제·안보 우려감 증대에 따른 것"이라며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며 추가 보복 조치를 취한 이후 '정부 힘 실어주기' 여론이 확대되면서 하락 폭은 1%포인트 미만의 소폭에 그쳤다"고 분석했다.

이 정치평론가는 "아베 총리는 문재인 정권에 싸움을 걸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상당수는 일본이 한국 국민을 상대로 싸움을 걸었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한일관계가 악화될수록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결국 아베가 문재인을 도와주는 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신 교수는 "국민들이 일단 정권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문제 해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민심이 돌아서면서 한국당이 반사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전격 사퇴…경영권 행사 가능성 아예 없나?

이런 가운데 '막말 영상'을 직원 조회 시간에 공개해 논란이 일었던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결국 11일 사퇴했다.

다만 여성 소비자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한국콜마 불매운동'을 잠재울 수 있을지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회장직에서 물러난다 해도 최대주주로서 윤 회장이 회사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간 한국콜마는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대표적인 기업으로 지적되어 왔다는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윤 회장의 전격적인 사퇴는 그가 지난 7일 직원 월례조회에서 틀었던 '막말·여성비하 영상'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지만, 지난달 초 일본의 수출규제 후 불붙은 불매운동의 영향력을 의식한 것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적지않다.

의류, 맥주 등에 이어 윤 회장이 튼 영상으로 한국콜마가 불매운동의 주요 타깃이 되고, 여야 막론하고 정치권과 주요 시민사회단체에서도 비판이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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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11일 서울 서초구 내곡동 한국콜마 종합기술원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가고 있다. 뉴시스


결국 윤 회장은 전격 사퇴하는 카드를 선택했다. 윤 회장은 이날 사퇴 회견에서 "제 개인의 부족함으로 일어난 일"이라며 "저의 과오는 무겁게 꾸짖어 주시되 현업에서 땀 흘리는 임직원과 회사에는 격려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9일 회사가 공식 입장문을 통해 사과했는데도 불구하고 비난 여론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자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강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화장품 연구개발생산(ODM)업체인 한국콜마는 국내 대다수 화장품 업체와 위탁제조·거래 관계를 맺고 있다보니 이 명단에 오른 화장품 상당수는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유명 브랜드들이다.

이 가운데는 최근 'K-뷰티 열풍'의 선봉에 섰던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미샤 등 주요 브랜드 제품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애꿎은 한국콜마 직원·고객사 향한 감정적인 비난 지양해야"

조회 영상에 여성 비하 표현이 들어있던 없든지 간에 화장품 주 고객층인 여성을 대상으로 "싼값에 몸을 팔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간 영상을 튼 것은 윤 회장 개인과 한국콜마 회사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견에서 윤 회장이 직접 "특히 여성분들께 진심을 다해 사과드린다"고 한 것도 이같은 점을 상당 부분 의식한 발언이라는 게 중론이다.

윤 회장이 한국콜마홀딩스 공동대표를 사퇴하면서 지주사인 한국콜마홀딩스는 김병묵 공동대표가 단독대표로 경영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한국콜마, CJ헬스케어 등 관계사 등은 현재의 전문경영인 체제로 그대로 운영된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한국콜마는 윤상현 사장 총괄체제가 그대로 유지된다. 윤 사장은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베인앤드컴퍼니를 거쳐 2009년 한국콜마에 입사, 2016년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윤 회장의 사퇴는 회사 임원들도 기자회견 직전까지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로 전격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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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견장에서 윤 회장이 직접 '자신의 과오'라고 밝혔기에 애꿎은 한국콜마 임직원과 고객사를 향한 무분별한 비난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한국콜마가 '막말 영상' 논란을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을지, 화장품·유통업계 관계자들은 물론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만약 윤 회장이 사퇴한 이후에도 사실상 회사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황이 포착된다면 언제든 소비자들은 다시 비난 여론을 확산시키며 불매운동에 나설 것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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