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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유레카] 압박과 보복의 수단, 아그레망 / 신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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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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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중동 지역 뉴스통신 <미디어 라인>은 아랍권 3개국에서 잇따라 대사 승인을 거부당한 파키스탄 고위 외교관 아크바르 제브 이야기를 보도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그를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대사로 내정했지만 번번이 아그레망을 받지 못했는데, 이름 때문이었다. 아랍어로 아크바르는 ‘위대한, 매우 큰’이란 뜻이고 제브는 아랍 속어로 남성 성기를 지칭해 신문에 대사의 이름조차 실을 수 없어서 거부했다는 것이다.

외교사절 임명 전에 상대국 동의를 구하는 아그레망은 오랜 관행이다. 정식 임명된 외교사절을 거부해 국제 분쟁이 일어나는 걸 예방하는 차원에서 내정자를 통보해 먼저 동의를 구하게 된 것이다. 관행이던 아그레망은 1961년 외교 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아그레망 확인’(4조1항)을 규정하면서 명문화됐다. 접수국은 아그레망을 거부할 권리가 있지만 그 이유를 밝힐 의무가 없다고 빈 협약은 규정했다. 그래서 아그레망을 거부, 지연하는 방식으로 외교적 압박·보복에 활용하기도 한다.

독일은 2016년 4월부터 1년 동안 두차례나 독일 주재 북한 대사에 대해 아그레망을 거부했다. 북한이 베를린대사관 공관 일부를 임대업에 이용해 외화벌이를 한 것에 대한 불만과 경고의 의미라고 언론은 분석했다. 한국도 1973년 덴마크가 북한과 수교하자 항의 표시로 신임 덴마크 대사의 아그레망을 보류한 바 있다.

껄끄러운 존재는 미리 부정적 의견을 전달해 내정 자체를 막는 일도 있다. 1965년 한-일 수교 뒤 초대 일본 대사로 한-일 회담의 주역인 이세키 유지로 외무성 아시아국장이 온다는 소문이 퍼졌다. 반일감정 폭발을 우려한 정부는 비공식 통로로 불만을 드러냈고, 그해 12월 마에다 도시카즈가 초대 임시 대리대사로 서울에 부임했다.

미국 대사로 임명이 유력했던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미국의 반대로 교체됐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빈 협약에 따라 미국이 실제 반대했어도 문제 삼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브루클린 임대아파트에서 114.13달러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달러를 받는 게 더 쉬웠다”는 등 한국을 모욕하니 도무지 곱게 봐줄 수가 없다.

신승근 논설위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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