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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사설]‘한·일관계 리셋’의 출발점이 될 광복절을 맞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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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흔네 번째 광복절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촉발된 양국 간 경제전쟁의 한가운데에서 맞는 올해 광복절은 어느 해보다도 의미가 각별하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유지돼온 한·일관계의 틀을 전면 리셋(재설정)해야 하는 시작점에 광복절이 위치해 있는 것이다.

‘1965년체제’는 한·일관계를 규정하는 기본틀이자, 냉전 시기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 원칙이었다. 공산권체제를 봉쇄하기 위해 미국은 한·일에 군사안보를 보장하고 일본은 한국과 협력하는 대항체제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한·일 국교정상화를 서둘러야 했고, 식민지배의 완전한 청산이 이뤄지지 못함으로써 한·일관계는 출발부터 불씨를 안게 됐다. 1990년대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부상으로 동아시아 냉전체제에 균열이 발생했고, 한국이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을 동시 달성하면서 한·일관계의 틀도 변화를 요구받게 됐다. 군사정권이 억압해온 식민지배 청산 요구도 분출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양국 갈등으로 ‘정경분리’ 원칙까지 허물어지는 일은 없었다. 아베 신조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는 이 금기를 깬 것이다.

한·일 갈등이 역사·영토 분야를 넘어 경제로까지, 그것도 일본의 선제공격에 의해 확대된 것은 한·일관계의 기본틀이 효력을 상실했음을 확인한 사건이다. 일본의 반도체 3대 품목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제외는 일본이 한국에 대해 가해자로서의 책무를 더 이상 지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일본의 행동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불만이 있겠지만 한국이 경제·안보적 차원에서 자신들의 예상 범위를 벗어나고 있는 데 대한 당혹감이 근저에 깔려 있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가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 다음날 발표된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남북 화해와 북·미 대화의 진전으로 동아시아 냉전질서가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은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개헌의 명분을 약화시킨다. 일본의 외교전략은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 파트너의 지위를 굳히는 동시에 중국·러시아·북한과의 관계개선으로 역내 외교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일관계는 1965년체제의 틀 안에 고정시켜 한국이 냉전질서 해체를 주도할 수 없도록 할 필요가 있다. 남북의 급속한 화해와 한국의 식민지배 청산 요구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되며, 이 지점에서 한·일 간의 이해가 근본적으로 충돌하게 된다. 아베 정부의 도발이 형태와 방향을 바꿔가며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한국은 이에 응전하면서 한·일관계를 리셋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한국은 전후 고도성장으로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달성했다. 빈부격차 등 문제도 적지 않지만 전후 최빈국이던 한국이 단기간에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것은 세계 역사상 유례가 드물다. 경제면에서만 본다면 약소국이라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힐 이유는 없다. 일본의 소재·부품을 수입해 완제품을 최종 조립하는 분업구조가 고착화돼 왔고, 이 ‘약한 고리’를 일본이 치고 들어오긴 했지만 이 역시 극복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루아침에 달성되긴 어렵겠지만 핵심소재·부품·장비의 공급 다변화와 국산화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의 생태계를 조성해 한국 경제의 균형발전을 꾀할 모처럼의 기회이기도 하다.

일본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며 한반도 평화정착을 이루기 위해서도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다.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관계복원을 통해 협력해 나가야 한다. 정치와 민간 교류를 구분하는 냉정한 시각을 갖춰야 함도 물론이다. 일본에 맞서야 할 때는 의연하고 당당하게 나서면서도, 대화와 협력 기조는 유지하는 ‘균형 잡기’가 한·일관계 리셋의 출발점에 선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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