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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경제직필]글로벌 전국시대, 원팀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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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8세기에서 진나라가 통일 제국을 이룬 기원전 3세기까지 중국에서는 수많은 제후국이 전쟁을 벌인 춘추전국시대가 있었다. 일본에서도 15세기부터 임진왜란 무렵까지 100여년에 걸쳐 치열한 전쟁의 시대가 있었다.

경향신문

전국시대는 말 그대로 모든 권력 집단이 생존을 놓고 싸우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상시화되었던 시기다. 길게 보면 통일국가를 향하는 전쟁이었지만, 전쟁에 참여한 제후국들은 패배할 경우 생존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모든 전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총력전 양상을 띠었다.

중국과 일본의 전국시대는 참혹한 전쟁과 더불어 정치, 경제, 사회 구조 등 모든 것이 변하는 대 전환의 시기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전국시대가 발생했을까?

다양한 시각이 있겠지만, 중국의 전국시대는 철기(鐵器) 사용이 빠르게 보급되던 시기였다. 청동기보다 월등한 철제 무기를 확보하게 되면 주변 제후국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 반대로 철제 무기가 없으면 철제 무기를 가진 상대방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서구의 대항해시대와 겹치는 일본의 전국시대는 서양의 과학기술이 일본에 전해지면서 조총과 같은 신무기의 사용 여부가 승패를 갈랐다. 전쟁뿐 아니라 철제 농기구(중국)나 서양의 과학기술(일본)은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면서 사회구조를 빠르게 변화시켰다.

고대 중국과 중세 일본에서 발생했던 전국시대가 21세기에 현실화되고 있다.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강대강으로 대립하면서 여기서 파생된 다양한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직접 대립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진영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도 강화 중이다.

미국은 호르무즈해협에서 군사적 긴장을 높이고 있다. 만일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 유가가 급등할 수 있다. 유가가 상승하면 산유국인 미국은 견딜 수 있지만, 이란으로부터 원유 수입 비중이 높은 중국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또한 미국이 대만에 첨단무기를 수출하려 하자, 중국은 인도양에서의 군사적 영향력 확보를 위해 캄보디아에 해군기지를 만들려고 시도 중이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열강들도 자국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전국시대에 참여하기 시작하고 있다. 인도는 파키스탄과의 분쟁지역인 카슈미르 지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러시아는 동해를 중심으로 군사력 확장을 시도 중이고, 나토(NATO) 회원국인 터키는 러시아로부터 첨단 요격 미사일 시스템을 수입하려고 한다.

전선은 군사적 갈등을 넘어 세계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중 간의 패권전쟁은 무역과 과학기술, 그리고 환율 등 금융 영역으로까지 확산 중이다. 미국이 절대적 우위를 점유하고 있는 네트워크 권력(구글,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등)에 대해 프랑스 등 유럽이 디지털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반면 미국은 한국에 한 것과 마찬가지로 유럽 국가에 방위비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누가 적인지 모를 정도로 거의 모든 영역에서 생존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모습을 나는 이종격투기 방식으로 싸우는 글로벌 전국시대로 부르고자 한다.

과거 전국시대에 과학기술이 패권의 본질이었듯이 현재에도 과학기술은 글로벌 전국시대로 가는 도화선이 되고 있다. 5G를 둘러싼 화웨이 문제를 넘어 전략무기의 진보로 새로운 형태의 국제질서 재편이 불가피해졌다. 일본의 아베 정권도 헌법 개정을 통해 타국을 공격하거나, 한국과 같은 과학기술 경쟁국을 압박하는 것만이 자신들의 생존을 담보한다고 믿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처지는 더욱 난감하다.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지정학적 특수성과 높은 과학기술 수준으로 글로벌 전국시대에 참여를 강요당하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장기적 안목에서 한국도 전국시대형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본의 경제 침략은 맛보기 수준일지도 모른다. 여타 국가들이 반도체를 넘어 다양한 영역에서 한국을 압박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따라서 현재 상황을 친일, 친중, 친미 등 과거형 이념적 프레임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근본적으로 생존을 담보로 하는 글로벌 전국시대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경제 문제의 경우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 신자유주의적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 이제는 국가와 기업이 한 팀이 되어야 한다. 기술개발, 원자재와 부품소재 조달뿐 아니라 판매까지도 정부와 한 팀이 되어야 한다. 국가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전국시대에 맞게 사회 모든 분야를 개혁해도 쉽지 않은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앞으로의 이데올로기는 전국시대형 생존 이데올로기다.

홍성국 혜안 리서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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