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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국경 밖에서도 군인·노동운동가·작가로 사회운동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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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롭스크에 이주한 한인들

군 지휘관 활동 ‘김유천 거리’ 조성

김 알렉산드라·조명희 ‘흔적’ 남아

경향신문

러시아 하바롭스크의 김유천(김유경) 거리라는 푯말이 붙어있는 건물의 모습. 홍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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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은 굶주림에서 탈출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러시아 연해주로 갔다. 최재형 일가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조선인들이 국경을 넘어 새로운 땅을 찾아 떠났다. 최재형의 옛집이 있는 우수리스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8시간 이상 가야 다다를 수 있는 하바롭스크에도 한인 후예들 흔적이 있다. 모두 사회주의를 지지했고, 여성들이 많았다.

하바롭스크에는 ‘김유천 거리’가 있다. 김유천은 김유경이란 이름을 러시아식으로 부르다가 나온 오기이다. 이 거리 이름은 1930년 붙여졌다. 김유경은 1900년 연해주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21세에 적군에 가담한 김유경은 소대급 지휘관으로 성장했고, 1929년 중·소전쟁에서 전사했다. 현재 거리 표지판이 달린 건물에는 은행이 입점해 있다.

마르크스가 22번지에는 김 알렉산드라 스탄게비치(1885~1918)가 일하던 건물이 있다. 김 알렉산드라는 우수리스크 근처에서 함경북도 이주민의 딸로 태어났다. 그는 20대에는 교사를 하다가 30세가 되던 해에 우랄 지역으로 거처를 옮겨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민족주의보다는 프롤레타리아 시각에서 조선의 독립을 바라봤다. 1918년 이동휘 등과 함께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을 결성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고 이듬해 9월 러시아를 침입한 일본군의 후원을 받는 백군과의 일전에서 체포돼 아무르 강변에서 총살당했다. 마르크스가에 있는 건물은 그가 일하던 곳이다. 건물 외벽에 걸린 동판에는 그의 생애가 요약돼 있다.

콤소몰 거리 89번지에는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카프) 출신의 작가 조명희(1894~1938)의 고택이 남아 있다. 조명희는 일제의 농민 수탈에 저항하는 지식인 운동가의 처절한 삶을 그린 <낙동강>(1927)으로 유명하다. 충북 진천에서 태어난 조명희는 일제 탄압을 피해 1928년 연해주로 망명했다. 하바롭스크에서 중학교 교편을 잡고 동포신문 ‘선봉’, 잡지 ‘노력자의 조국’ 편집을 담당했다. 그러나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당했고 이듬해 4월 일본 첩자를 도왔다는 죄명으로 처형됐다.

하바롭스크(러시아) |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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