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행복입니다]
워킹맘 이진아씨가 보내는 편지
제가 복직한 지도 벌써 두 달이 됐네요. 엄마가 가까운데 살면서 낮 동안 윤재를 봐주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마음 놓고 일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윤재가 제가 없어도 아주 잘 놀고, 저를 잘 찾지도 않는다면서요? 아침에 자는 모습을 보며 출근했는데 퇴근이 좀 늦어지면 또 잠들어 있기도 하고…. 그렇게 온종일 저를 못 보는 날도 윤재가 잘 지내고 괜찮다는 게 놀랍고, 사실 조금 섭섭하기도 해요. 그렇지만 아마 그건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아주 잘 챙겨주고 재미있게 놀아줘서겠지요?
지난해 9월 이진아씨가 생후 80일 된 아들 윤재를 유모차에 태우고 어머니와 동네 산책을 하고 있다. /이진아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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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덕분에 우리 가족들 모두가 잘 적응하고 있지만, 사실 예전에는 복직 후를 생각하면 한숨부터 났어요. 남다르게 쑥쑥 커가는 아이랑 온종일 씨름하다 진이 다 빠질 때 특히 그랬죠. '30대의 젊은 나도 이런데, 내가 복직한 뒤 60대인 엄마가 윤재를 보려면 얼마나 힘들까?' 싶었어요. 엄마는 여러 번 "윤재는 내가 봐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젊을 때 열심히 일하라"고 했지만, 사실 이 서방이랑 저는 다른 대안은 뭐가 있을지 많이 고민했어요. 아이 태어나고 6개월 만에 제 허리도 조금씩 탈이 나기 시작했는데, 몇 년 전에 허리 수술까지 한 엄마가 윤재를 돌보다 다시 병원 신세라도 지면 어떡하나 싶었고요.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 엄마도 알죠? 사실 옛날엔 여럿이 다 함께 아이를 키웠을지 몰라도, 요즘 같은 시대엔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지금 상황에 대해 저는 늘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엄마가 육십 줄에 또 한 번 가족을 위해 희생을 하게 된 점이 늘 마음에 걸려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엄마 자신만을 위해 산 시간이 너무 없었는데, 늘 누군가를 위해 살았는데….
그걸 알면서 이젠 또 손주를 봐달라니 저라면 화부터 냈을지 몰라요. 그렇지만 엄마는 늘 저나 윤재를 먼저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윤재를 어린이집에 보내야겠다고 했을 때도 엄마는 반대했잖아요. 전 사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그 몇 시간이라도 엄마가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랐어요. 엄마의 일상이 즐겁고 행복해야 우리 가족도 모두 다 행복하니까요! 결과적으로 아이가 잘 적응했지요.
엄마 옆에 살며 제가 편해지는 만큼 엄마가 힘들어지는 건 아닐까 늘 미안한 마음이지만, 손주를 보며 행복해하는 엄마·아빠 모습을 볼 때면 뿌듯하기도 해요. 제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우리가 예전보다 더 많이 친해졌으니 말이에요. 무엇보다 저도 엄마가 되어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니, 그동안 엄마가 저에게 했던 말들이 다 이해가 되더라고요. 엄마 덕분에 이제야 조금씩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철없는 어린 시절에 제가 엄마 말에 잘 공감해주지 못할 때 엄마가 얼마나 섭섭하고 외로웠을까 싶어요. 엄마, 이제부턴 제가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될게요. 앞으로 맛있는 것도 자주 먹으러 가고, 좋은 데도 많이 다녀요. 그리고 만일, 엄마가 인생에 있어 또 다른 도전을 해보고 싶거나 엄마의 제2의 청춘을 찾고 싶어지면 언제든 말해주세요. 저랑 이 서방은 누구보다 엄마의 행복을 응원할 거고, 필요하면 그땐 제가 아빠를 챙길게요. 엄마가 늘 제 뒤에 있듯이 엄마 뒤에도 딸이 있다는 걸 늘 기억해주세요. 어렸을 땐 저를 키우느라, 지금은 또 손주 돌봐주느라 너무 긴 시간 동안 손이 가는 못난 딸이라 정말 미안해요. 그리고 정말 고마워요. 우리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요. 엄마, 사랑해요.
[이진아·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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