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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는 미국은 물론 전세계 혁신의 중심지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인재들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로 세계 시장을 사로잡기 위해 밤잠을 설치며 노력하는 곳도 이곳이다. 구글ㆍ페이스북 등 우리 삶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꾼 벤처기업들이 배출된 곳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도전자 10명 중 9명은 실패의 쓴맛을 맛보는 혹독한 정글이기도 하다. 최근에는‘반드시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시작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성공한 벤처기업가들이 모여있다 보니 물가가 치솟은데다, 시애틀과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내 다른 지역에서도 벤처생태계가 발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프랑스, 싱가포르 등이 비자심사 완화 등으로 호조건을 내밀며 야심 많은 창업가들을 유혹하고 있다. 지난 2월 마케팅사 브런즈윅이 18~34세 실리콘밸리 종사자 300명을 조사한 결과 5명중 3명이 “1년 안에 이 지역을 떠나고 싶다”고 답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그럼에도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을 한 밀레니얼세대(Millennialsㆍ1981~1996년생)들은 이곳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만한 특별한 역동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실리콘밸리의 밀레니얼 창업세대 4명으로부터 이곳의 ‘특별한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스타트업’이 ‘스타트업’의 가치를 알아본다
문아련 굿타임 대표. |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재무분석가로 직장생활을 하던 문아련(35) 대표는 2015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뒤 기업의 채용면접 스케쥴을 자동화하는 시스템 기업인 ‘굿타임’을 창업했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은 빠른 성장으로 한 해 수천에서 수만명의 인재를 채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사람이 일일이 면접 스케줄을 잡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점을 포착한 서비스다. 굿타임은 현재 에어비엔비, 옐프 등 유명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이 이용하고 있다. 창업 후 현재까지 총 720만달러(약87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문 대표는 굿타임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로 스타트업이 즐비한 실리콘밸리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곳 스타트업의 개방성 덕을 톡톡히 봤다는게 그의 이야기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기술 스타트업들은 혁신을 중시하기 때문에 다른 회사의 새로운 서비스를 받아들이는 일에 열려 있다”며 “이는 규모가 크고 관료적이라 위험부담을 피하려는 대기업에게 찾아보기 힘든 장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업 초기 인근에 있는 스타트업을 방문해 직접 서비스를 소개했고, 이곳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실리콘밸리를 넘어 유럽 시장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기존 스타트업들의 활발한 멘토활동은 스타트업이 스타트업을 돕는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페이스북ㆍ구글 등은 ‘페이스북 트레이닝(훈련) 허브’ 등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육성기관)등을 만들어 새 아이디어를 지원한다. 후발주자들을 ‘잠재적 경쟁자’로 보는 대신, 새로운 혁신을 도모할 수 있는 동반자로 여긴다는 방증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엔 빛의 속도로 투자
알리 아메드 로보마드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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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말 캘리포니아주 밀피타스에서 스타트업 ‘로보마트’를 창업한 알리 아메드(36) 대표는 영국에서 이미 두 개의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 성공한 창업자다. 그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새로운 도전을 한 이유는 세계 최고의 창업생태계에서 더 큰 시장으로의 진출해보자는 포부 때문이었다. 과연 실리콘밸리는 달랐을까? 아메드의 답은 “예스”다. 로보마트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마치 우버처럼 쉽게 부를 수 있는 자율주행편의점이다. 창업 2년이 채 안됐지만 벌써 미국의 유명 슈퍼마켓체인인 ‘샵앤샵’과 함께 보스턴에서 자율주행편의점 시험운행을 준비하고 있다. 아메드 대표는 “이런 빠른 성장은 영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2017년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동업자와 나 밖에 없었는데 두 사람이 가진 돈을 다 털어서 로보마트의 모델을 제작했다”며 이듬해 국제소비자가전박람회(CES)에서 전시하게 되면서 금세 필요한 인재와 자금을 모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우리는 외국인이고 당시 서비스는커녕 정식 제품도 만들지 못한 상태였지만, 아이디어와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만으로도 빠르게 투자유치를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액셀러레이터(초기창업지원기관)를 비롯해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벤처투자기업만 650여개다. 그 외에도 수많은 소규모 투자자와 기업 들이 이곳 벤처기업의 젖줄인 투자자금을 공급하고 있다.
◇동네 친구가 알고 보니 유명 창업자… 네트워크 멘토링의 힘
임성원 임프리메드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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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반려동물 헬스테크 스타트업을 창업한 임성원(36) 대표는 창업 초기의 핵심 정보원으로 주저 없이 지인들을 꼽았다. 미 스탠포드대에서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알게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미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했거나 벤처투자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벤처 투자를 받아야 할지, 인재는 어디서 채용할지, 어떻게 기업을 소개할지 등 세세한 부분을 친구와 동문들로부터 조언 받았다. ‘최대’ 창업생태계인 실리콘밸리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이다.
실제로 많은 젊은 창업가들은 네트워크 활용의 용이성 때문에 실리콘밸리를 찾는다. 미시건대를 졸업하고 개인건강관리 관련 스타트업 창업을 위해 실리콘밸리로 날아왔다는 예비창업자 브랜든 아담스(27)는 “매일 새로운 창업자나 투자자를 사귀고 인맥을 쌓는 건 실리콘밸리에서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매주 수십개씩 열리는 업종별 모임, 선배창업자의 멘토링 등만 성실히 찾아가도 실제로 꼭 필요한 조언을 듣고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
물론 실리콘밸리가 처음 본 사람을 무작정 도와주는 예비창업자의 유토피아는 결코 아니다. 한국판 클라우드 데이터 마이그레이션(이전) 서비스 아이디어로 2016년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민동준 지컨버터 대표는 “네트워크의 덕을 보려면 개인이 신용을 두텁게 쌓아야하는데 외국인으로서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서로 윈윈할만한 사람이라는 게 확인되고 평판이 쌓이면 그 신용이 사업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패한 사업가에 ‘뭘 배웠냐’고 묻는 곳
크리스틴 옌 허니콤 공동창업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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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데이터 모니터링 서비스 스타트업 ‘허니콤’을 창업한 크리스틴 옌(33) 대표는 2010년에도 ‘베뉴타스틱’ 이라는 예약서비스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하지만 이 사업을 1년 만에 접었다. 그와 공동창업자가 설계한 모델로는 적정한 수입을 확보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스스로 사업 중단 결정을 내린 셈이지만 사실상 ‘실패’였다. 하지만 옌 대표는 낙담하지 않았다. 그의 실패 소식에 사람들이 던진 질문은 “그 경험을 통해 뭘 배웠느냐”였다. 옌 대표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으면서 사업실패 원인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고 이 경험을 통해 다음 사업의 방향도 잡을 수 있었다”며 “무언가를 시도하고 실패한 사람에게 ‘뭘 배웠느냐’고 묻는 건 실리콘밸리의 특별한 문화로 이 곳에서 사업을 하는 것은 행운”이라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엑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가 스스로를 ‘실패의 수도(首都)’라고 칭할 정도로 실리콘밸리는 실패자들을 포용한다. 창업자들이 자신의 실패담을 공유하고 서로에게 조언을 하는 ‘실패 밋업(모임)’도 자주 열린다. 물론 창업자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나 도덕적 해이에 따른 모든 실패를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자금을 보전해준다든가 재창업지원금을 주는 정책 지원도 없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에선 실패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될 성 부른’ 창업가에게 지지와 성원이 쏟아진다.
샌프란시스코=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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