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일본 도쿄 한 호텔에서 재일동포 중심 단체인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회원들이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해법 모색을 위해 일본을 찾은 의원들과 만찬을 하기에 앞서 서청원(왼쪽) 의원 인사말을 듣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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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가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짙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 안개를 뚫고 나가 마주할 바다에 미풍이 불지 폭풍이 일지 모르지만,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으로서 한 가지는 분명히 보이고 가슴이 아프다. 한일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마다 한층 어려워지는 재일동포의 삶이다.
사실 재일동포 사회의 변화는 그들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우선 재일동포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한국도 있기 어려웠을 것이다. 해방 당시 재일 한국인은 220만~230만명이었는데 120만~130만명은 귀국하고 100만명 정도가 일본에 남았다. 일본이 패전 후에도 한국인들이 모은 재산의 반출을 금하기도 했거니와, 바다 건너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게 말처럼 쉬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신민 신분이었다가 해방 후에는 외국인으로 신분이 전환돼 각종 전후 보상에서 제외되고 식민지 출신이라는 이유로 최하류층으로 분류돼 혹독한 차별을 견디면서 살아남았다. 오늘날 재일동포 81만명 중 30만명은 오로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우리 국적을 유지하는 일본법상 ‘특별영주자’들이다.
이렇게 살아남은 재일동포들이 보여준 조국 사랑은 눈물겹다. 1950년대 재일동포 애국심의 대표 사례는 6ㆍ25 참전이다. 전쟁이 터지자 학도의용군을 조직해 642명이 참전했고, 인천상륙작전과 장진호 전투 등에서 52명이 전사하고 83명이 행방불명됐다.
1960~70년대 산업화야말로 재일동포를 빼고 말할 수 없다. 한국 최초 수출산업공업단지인 구로공단 역시 그들이 모태였고, 1978년 재무부에 따르면 재일동포 모국 투자액이 10억달러를 넘어 외국인 투자액 9억3,700만달러를 앞질렀다. 1980년대 서울올림픽 때는 올림픽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며 100억엔(당시 한화 541억원 상당)을 기부했다. 1990년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도 재일동포는 미화 15억달러 상당액을 보내왔고, 우리 정부가 300억엔의 엔화 국채를 발행했을 때도 적극 나섰다. 이 총액은 한국의 범국민 금 모으기 캠페인으로 모은 20억달러를 상회했다.
2018년 평창올림픽 때도 재일동포는 2억엔을 모아 평창을 찾았다. 도쿄 대사관과 오사카 총영사관 등 일본 내 한국 공관 10개 중 9개가 1960~90년대 재일동포가 기부한 것이다.
이런 재일동포 애국심의 중심에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있다. ‘대한민국 국시 준수’를 강령 1조로 1946년 설립된 민단은 한일 국교 정상화 후에도 한동안 일본에서 한국 정부 역할을 일부 대신했다. 단원 30만명(자체 발표)과 1개 중앙본부, 48개 지방본부, 265개 지부를 둔 전국 조직으로 혐한론이 기승을 부려도 일본 전역에 태극기를 휘날리는 단체다.
척박한 현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민단이 간혹 우리 정부나 국민의 눈높이와 다른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민단은 한반도 밖 전체를 통틀어 가장 대규모로 조직화돼 있는 애국적 단체다. 그런 민단의 조직이 최근 급속히 이완되고 있으며 이에 함께 재일동포 사회도 구심점을 잃고 있다. 이 상황에는 민단과 동포사회 자체의 문제를 포함해 여러 배경이 있지만 조국에 대한 재일동포의 오랜 희생과 헌신을 우리가 몰라주는 것도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민단이 해체돼 없어진 상황을 가정해보자. 아무리 재원을 퍼부어도 일본에 이런 조직을 다시 갖기는 어렵다. 민단이 조직을 재건하거나 이완 속도를 늦추면서 우리 국민 눈높이에 맞게 대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우리가 지혜와 인내로 그들과 함께 해야 한다. 한일관계가 어려울수록 우리가 민단ㆍ조총련ㆍ조선적ㆍ신정주자 등 재일동포 사회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포용하면 좋을 것 같다. 그들에게 조국이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자. 그게 재일동포뿐 아니라 우리에게 좋고 한일관계에도 도움이 된다.
한우성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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