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능환 주위에 "판결문 건국하는 심정으로 썼다"
김능환 전 대법관(사진)이 퇴임 두 달을 앞둔 2012년 5월 24일 내린 강제징용 판결로 한일 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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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인 기자의 판결 다시보기
2012년 5월 24일. 아무도 예상치 못한 대법원의 역사적 판결이 내려집니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조차 승소를 예상 못해 법정에 배석하지 않았고 당시 대법원장이던 양승태 대법원장은 귀띔조차 듣지 못한 판결이었습니다.
이날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일본 기업인 신일본제철과 신미쓰비시중공업이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9명에게 손해배상의 의무가 있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파기환송했습니다.
일제 식민 지배로 피해를 본 한국인이 일본 기업에 승소한 최초의 사법적 판단입니다. 당시 김 대법관은 주위에 "건국하는 심정으로 판결문을 썼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신일본제철과 신미쓰비시는 이후 대법원에 재상고했지만 대법원은 2018년 10월과 11월 대법관 전원합의체(신일본제철·이하 전합)와 대법원 2부(신미쓰비시)에서 각각 2012년 김능환 대법관의 판결을 그대로 인정하는 상고 기각 결정을 내립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김명수 대법원장 등 대법관 13명(법원행정처장 제외)이 논의해 결정을 내리는 만큼 사법부의 최종적인 판단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이 반대 의견을 냈지만 소수 의견에 그쳤습니다.
두 대법관은 청구권 협정에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청구권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란 표현을 언급하며 "청구권 협정을 무효로 볼 것이 아니라면 좋든 싫든 그 문언과 내용을 지켜야 한다"며 "(일본 정부가 아닌) 한국 정부는 지금이라도 피해를 입은 국민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30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3명 사망)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재상고심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을 배상하라“는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춘식(94)씨는 선고 직후 ’너무 기쁘지만 세 사람이 먼저 가 슬프다. 동료들 없이 혼자 나와서 마음이 아프고 서운하다“고 복잡한 심경을 밝혔다. [김상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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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기업의 피해배상, 당연한 듯 한데 왜 파격일까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주장은 상식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법조계와 외교가에선 당시 '김능환의 판결'을 파격이라 평가합니다.
아베 정부와 일본 법원은 젖혀두더라도 한국 법원 하급심에서 네번에 걸쳐 내린 원고 패소 결정은 물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한국 정부의 기존 입장을 모두 뒤집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그리 파격이었을까요. 강제징용 판결의 법리적 쟁점과 김능환 전 대법관 판결 전 막전막후를 뒤쫓아가 봤습니다.
한·일 수교 이후 주요 갈등 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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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1·2심과 2012년 대법원의 판결이 엇갈린 핵심 쟁점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일본 법원 판결의 국내 인정 여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의 소멸 여부 ▶일제 강점기 당시 구일본제철·구미쓰비시의 채무를 강점기 이후 설립된 신일본제철·신미쓰비시의 부담 여부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10년)의 완성 여부입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해 10월 14일 사이타마(埼玉)현의 육상자위대 아사카(朝霞) 훈련장에서 열린 자위대 사열식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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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패소한 1·2심과 승소한 3심 어디서 갈렸나
우선 한일간의 논란이 되는 한일협정과 개인청구권 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965년 한일 정부는 한일 협정을 체결하며 식민 지배 이후 관계를 정상화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당시 일본에서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의 차관을 받으며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 됨을 확인한다"고 협약했습니다.
청구권 협정 합의 의사록에는 한국 정부가 제출한 8개의 항목이 나오는데 그 5번째 항목에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 및 기타 청구권의 변제 청구"가 적혀있고 그 세부 항목에는 '피징용 한국인 미수금'과 '전쟁에 의한 피징용자 손해 보상'이 들어갔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 협정을 근거로 2012년 판결 전까지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이 제한된다는 입장을 유지합니다.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한일협정 문서가 공개됐는데 당시 한일회담 문서공개 민관공동위원회도 한일청구권 협정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사할린 동포, 원폭 피해자 문제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는 포함되었다고 해석했습니다.
2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전광판에 문재인 대통령의 국무회의 중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국가 배제 관련 발언이 생중계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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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영 외교부 차관 "사법부 판결, 청구권협정 틀에 심각한 시험"
2012년 대법원의 결정은 이런 정부의 입장이 "틀렸다"고 한 것입니다. 청구권 협정에서 일본이 불법적인 식민 지배나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보상도 인정하지 않았는데 국가가 국민의 동의없이 함부로 개인 청구권을 소멸시킬 수 없다고 본 것이죠.
문재인 정부의 대일 외교를 맡은 일본통 조세영 외교부 차관은 2014년 저서 『한일관계 50년, 갈등과 협력의 발자취』에서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50년 가까이 유지된 청구권협정의 틀이 한국 사법부의 판결 때문에 심각한 시험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2018년 대법원 전합의 다수 의견도 2012년 판결과 궤를 같이합니다. 이 판결 이후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에 대한 압류 조치가 시작됐고 일본 정부는 경제 보복까지 하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 쟁점을 제외한 나머지 쟁점은 법리적 성격이 보다 뚜렷합니다. 먼저 일본 법원 판결의 인정 여부를 살펴보겠습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2일 오후(현지시간)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외교장관회담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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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사소송법에 따르면 외국법원의 확정판결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어긋나지 않을 경우 효력이 인정됩니다. 2012년 대법원은 "일제 강점기를 합법이라 전제한 일본 법원의 결정은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 가치와 정면충돌한다"며 그 효력을 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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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리적 쟁점 논의 첨예한 건 피해자의 '소멸시효'
하급심의 경우 신일본제철 판결은 일본 판결의 상법적 측면만을 강조해 효력을 인정했고 신미쓰비시 하급심 판결은 대법원과 비슷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전후로 각 기업의 연속성에 대한 판단도 하급심은 갈렸는데 대법원은 강점기 전후의 두 기업을 사실상 동일체로 판단했습니다.
다만 피해자의 개인청구권 소멸시효의 경우 네 번의 하급심과 대법원 판결이 완전히 엇갈립니다. 서울 중앙·고등법원과 부산지방·고등법원은 모두 피해자들의 청구권 소멸시효(10년)이 지났다고 봤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 이후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시간이 충분했는데 하지 않았기에 구제할 수 없다는 뜻이죠. 반면 대법원은 2005년 한일협정 문서가 공개되기 전까지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사회적 여건이 되지 않아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권리를 남용하는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시효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김 대법관의 판결 중 소멸시효에 대한 법리적 논의가 가장 치열합니다. 복수의 현직 판사는 "소멸시효의 기준을 강제징용 피해자에게만 관대하게 적용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경우지만 법적 안정성이 흔들린다는 것이죠.
지난해 10월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재판부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김상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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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능환 판결 2주전, 대법원 소멸시효에 엇갈린 판결
실제 김 대법관 판결이 나오기 2주전인 2012년 5월 10일 대법원 2부(이상훈 대법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소멸시효 완성'의 법리를 적용해 원고 패소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만약 강제징용 사건이 소부가 아닌 전합에서 논의됐다면 다른 결정이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한 현직 판사는 "당시 양 대법원장은 이런 역사적 사건이 전원합의체에 논의되지 않아 격노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재판연구관 출신 변호사는 "소부에 속한 대법관 중 한명이라도 이견이 있었다면 전합에 올라갔을 것"이라며 "김 대법관이 소부 합의를 잘 이끈 것"이라 평가했습니다.
양 대법원장은 김 대법관 퇴임 뒤 재상고로 대법원에 올라온 강제징용 사건을 전합에서 논의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입장을 취합니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은 김 전 대법관의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22일 보석으로 풀려나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오종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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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재상고 사건은 사실관계 변경이 없다면 수개월 내 상고기각이 일반적이지만 이 사건은 대법원이 다시 판단하기까지 5년이나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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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상고 사건 전합에서 논의돼야"
당시 양 대법원장은 재상고 사건 소부 주심을 맡았던 김용덕 대법관에게 전원합의체 논의 필요성을 알렸고 2012년 대법원의 결정에 외교적 부담을 느낀 박근혜 정부 청와대·외교부와 이 사건에 대해 논의를 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갑작스레 탄핵 정국이 들어서며 양 대법원장은 임기 내 강제징용 판결의 결론을 내리지 못하게 됩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의 정책 과제였던 '상고법원 도입'과 강제징용 재판을 거래했다며 양 전 대법원장을 기소했습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국익을 고려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 과정의 일부였고 재판 개입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하는 상황입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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