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통일부 소관 자료중 눈에 띄는 대목이 보고서에 나타났다. 경원선(서울~원산) 복원 공사를 위해 책정했던 659억 2600만원의 예산중 지출이 ‘0’원으로 기재돼 있는 것이다. 혹시 인쇄가 잘못됐거나, 오타가 아닌가 싶었다. 매년 이맘때면 정부 부처 예산 담당자들은 한푼의 예산이라도 더 따내기 위해 국회 문턱이 닳도록 쫓아다니는 풍경이 되풀이 된다. 그런데 어렵사리 따낸 예산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니…
확인 결과 국회 담당자도 통일부 당국자도 오류가 아니라고 했다. 공사가 진행되지 않아 공사비를 포함한 관련 예산이 일체 집행되지 않았다는 답이다. 올해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오전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역에서 경원선 남측 구간 복원 공사 기공식에 참석에 앞서 설명을 듣고 있다. 왼쪽부터 최문순 강원도지사, 최연혜 코레일 사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 박 대통령, 유일호 국토교통부장관, 강영일 한국철도시설공단이사장. [청와대사진기자단]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경원선 복원 공사는 2015년 광복절 70주년을 맞아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사업이다. 서울에서 출발해 원산을 거쳐 유라시아로 진출하겠다는 구상이다. 일단 백마고지역에서 군사분계선까지 남측 구간 11.7㎞만 복원해 놓겠다는 계획이었다. 1단계로 비무장지대 바깥의 남측구간(백마고지~월정리) 9.3㎞를 2017년까지 복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공사의 속도를 위해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고,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하는 방식을 택했다. 같은해 8월 5일 진행한 기공식엔 박근혜 당시 대통령도 참석해 의욕을 보였다. 토지매입과 공사비 1508억원도 책정됐다. 비무장지대 바깥 남측 지역 공사조차 중단되며, 완공시점은 네 차례 조정끝에 2022년까지 연기됐다. 예산도 당초보다 283억 1100만원이 증액된 1791억 1100만원으로 추정됐다.
현재로써는 언제 공사가 끝날지, 아니 언제 재개될지조차 불투명하다. 공사가 진행되지 않은 이유와 관련해 보고서는 통일부의 설명을 담았다. “남북관계 상황을 고려하고 사업 추진을 위한 제반 여건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며, 이같은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토지 매입 및 설계 이후의 사업계획에 대하여 관계부처 간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의문점 하나. 지난해엔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통일부가 바빠서 연초에 수립해야 할 연간 계획을 12월이 다 돼서야 작성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남북관계 상황 때문에 경원선 복원 공사를 할 수 없었다는 통일부의 설명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물론 어느 지점에서 북측 구간과 연결하느냐에 따라 노선이 달라질 수 있다보니 남북관계가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런데 공사 완공 예정 시한을 2년이나 넘긴 시점에 “제반 여건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국회에서도 “통일부의 설명은 당초의 사업추진 의지와 괴리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왜 딴소리 하냐?”는 점잖은 표현이 아닐까.
의문점 둘. 이미 340여 억원의 예산을 이미 집행하고, 공사를 하던 터였는데 “관계부처간 협의가 필요하다”고?
이 공사의 예산은 통일부 소관이다. 하지만 실제 공사는 국토교통부가 주관한다. 따라서 국토부와 협의가 필요하다는 게 통일부의 입장이다. 또 공사구간 일부가 태봉국의 궁궐터를 지나기 때문에 문화재 발굴이나 검토를 해야 한다도 해야 한다는 게 통일부의 설명이다. 애초에 예상됐던 이런 문제들을 사전에 협의하고, 검토했어야 하는게 아닐까.
일에는 순서가 있다. 통일부의 설명대로라면 당시 사업 결정은 2년뒤도 내다보지 못한 주먹구구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 된다. 국민의 세금인 예산을 담보로 위에서 하라고 하니 앞과 뒤를 가리지 않거나, 정권이 바뀌었으니 전(前) 정부가 추진한 사업을 덮겠다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바늘 허리에 실을 꿰서는 안된다. 이번 사업을 거울로 삼아 2년 뒤와 20년 뒤를 동시에 생각하는데 예산이 쓰이길 기대해 본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