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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수)

성묘가 준 선물…머쓱했던 아버지와 아들이 친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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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27)



중앙일보

8월 13일부터 16일까지는 일본의 성묘 기간이다. '오봉(お盆)'이라 한다. [사진 photo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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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7월 말이 되면 성묘 갈 날을 잡기 시작한다. 한국의 추석에 해당하는 일본의 성묘 기간은 '오봉(お盆)'이라 한다. 8월 13일부터 16일까지이다. 이날을 전후해 사정에 맞춰 잡으면 되는데, 지역에 따라서는 7월과 9월에 하는 지역도 있다. 멀리 있어 성묘를 못 가는 사람은 대행업체에 의뢰하기도 한다.

나도 가족들 일정을 조정해 날을 정했다. 올해는 8월 10일 토요일로 낙찰됐다. 가능한 한 일요일을 택하는데, 큰아들이 일요일에는 일정이 있단다. 남편, 큰아들, 작은아들 중 두 명 이상이 갈 수 있는 날을 택한다. 올해는 세 명이 다 갈 수 있어 다행이다.

남편이 물어 온다.

“당신도 갈 거야?”

“아니, 나는 못 가.”

“왜?”

“나까지 가버리면 아버님은 누가 봐?”



추석에 해당하는 일본의 ‘오봉’



조상을 모시는 일과 관련해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 말이 있다. ‘죽은 조상보다 산 조상을 잘 모시는 것이 진정한 효도다.’ 살아있을 때 잘하라는 말일 것이다. 이 말은 친구 어머니가 한 말이다. 친구에게서 이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살아있는 사람도 ‘조상’이라 할 수 있는 거구나. 그때까지 나는 조상이란 저세상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살아계신 부모도 조상인 거다.

시아버지는 우리 집안의 ‘살아있는 조상’이다. 가시는 그 날까지 잘 살다 가시도록 모시려 한다. 단, 꼼작하지 않아도 되는 지극정성은 들이지 않을 생각이다. 어디까지나 시아버지의 인생. 목숨을 이어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시게' 하고 싶다. 내가 대신 살아드릴 수도 없거니와 시아버지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다.

그리고 누가 먼저 갈지는 두고 봐야 안다. 나는 아버지(향년 42세), 남동생(36세), 외할머니(87세), 시어머니(88세)의 순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겪어왔다. 시아버지는 91세, 가벼운 치매 증상은 있지만 건강하게 살아 계시다. 죽음에 나이 차례라는 것은 없다.

오봉(お盆) 휴가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포함하면 기간이 길다. 5월의 골든위크 다음으로 길 것이다. 물론 여행 성수기이다. 국내외로 여행을 떠난다. 타향에 사는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간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자를 기다린다. 친척이 있는 집은 하루 이틀 정도 모여 식사를 하며 왁자지껄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모습은 제사만 지내지 않을 뿐이지 한국의 추석 풍경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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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묘가 있는 절 모습. [사진 양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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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성묘 모습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변해 왔다. 신혼 때에는 친척들이 각자 요리를 지참하고 가족묘가 있는 절에 모였다. 시아버지 형제들이 고령이 된 후에는 절에서 모이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 후 가족 6명이 성묘를 갔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들 며느리, 손자 둘. 두 분이 연로해 장거리 이동이 어려워진 후에는 4명이 다녔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성묘는 남편과 두 아들이 담당하고 있다. 시아버지를 혼자 둘 수 없기 때문이다.

항상 같이 다니던 성묘인데 남편과 아이들만 보내면서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왜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시아버지를 혼자 둘 수 없다는 이유도 있지만, 아마도 친정에서 익숙해진 습관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제주도에서 벌초는 남자들의 일이었다. 지금도 기본적으로는 그럴 것이다. 나보다 어린 남동생들이 아버지와 가는데도 딸인 나는 가지 않아도 됐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동생들이 친척들과 같이 다녔다.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은 채 그렇게 지내왔다. 지금 나는 아버지 제사에는 가지만 성묘는 가지 않는다. 산소에 가려면 누군가에게 부탁해 데려다 달라 해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가는 버릇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심리적 습관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아름다운 삼각형 된 아버지와 두 아들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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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을 깨끗이 씻고 꽃다발을 꽃은 모습이다. [사진 양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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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들들이 성묘에 가기 시작하면서 예상치 못했던 효과를 보고 있다. 내가 없으면 불편해하던 부자지간이 성묘를 같이 다니면서 사이가 좋아졌다. 이런 걸 조상님 덕이라고 해야 하나? 첫해는 아빠랑 갈 거면 혼자 갔다 오겠다던 큰아들이었다. 그런데 올해 갔다 와서 하는 말이 “아버지와 역할 분담이 자연스럽게 자리잡혀가고 있어”라는 것이다. 서로 머쓱했던 부자지간이 성묘를 계기로 대화가 늘고 있다.

남편과 사이가 원만했던 둘째 아들은 아빠와 형을 관찰하며 제 역할을 해 나가고 있다.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다. 아버지와 두 아들의 관계가 아름다운 삼각형이 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걸 조상 덕분이라고 하나? 어쩌면 조상들은 이런 모습을 바라는 게 아닐까? 제사상에 무엇이 올라오는가가 아니라 후손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 조상을 떠올리고 기리며 후손들이 뭉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이라 해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얼굴이 보고 싶어서 모이는 추석. 그렇게 된다면 조상이란 존재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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