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 며느리 이덕남(76) 여사는 최근 경제보복을 단행한 일본보다 친일 논란을 빚는 국내 일부 인사들이 더 못마땅하다고 했다.
1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여사는 광복절인 이날 인터뷰에서 '반일 종족주의' 대표 저자로 논란이 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사죄한다"고 발언한 주옥순 엄마부대봉사단 대표를 거론하며 "일본놈보다 더 심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땅에서 나오는 쌀알을 먹고 살면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하나"라며 "내가 나이를 먹어 그렇지, 60살만 됐어도 가만 안 둔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 여사는 단재의 둘째 아들인 신수범 선생(1991년 작고) 부인이다.
그의 남편은 단재의 중국 베이징 망명 시절 태어났다. 남편은 돌 때쯤이던 1922년 어머니인 박자혜 선생과 한국으로 돌아와 이후 쭉 국내에서 살았다.
시아버지 단재는 베이징에서 따로 살다가 1936년 돌아가셨다고 했다. 단재는 독립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돼 뤼순 감옥에서 복역 중 숨졌다.
이 여사는 남편으로부터 시아버지에 관한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고 한다.
이 여사는 또 "시어머니도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셨지만 대단하셨던 분"이라고 했다.
"남편은 아버지가 독립운동가인 줄도 모르고 지내다가 13살이 돼서야 어머니께 물어봤대요. 어머니가 싸릿대로 한참 때린 뒤 '오늘 이후 아버지 이름을 입에 올리면 혓바닥을 끊어버리겠다'고 다짐받은 후에야 아버지에 대해 얘기해줬다고 하더라고요."
이 여사는 단재와 같은 이들이 목숨을 바칠 정도로 나라를 사랑했지만 국가가 독립유공자 대우를 소홀히 한다고 비판했다.
이 여사는 "현충원에 가보면 17만명이나 되는 무후(자손이 없음) 유공자들이 있다"며 "그분들은 실제로 자손이 없어서 그렇기보다는 호적·국적이 없기 때문에 자손과 연결고리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아버지와 관련한 이 여사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여사는 최근 단재의 옛 삼청동 집터 소유권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단재가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산 곳으로 추정되는 삼청동 집터는 망명 후 1912년 국유지로 기록됐다가 단재가 순국한 지 2년이 흐른 1939년 한 일본인 앞으로 소유권 보존 등기가 이뤄졌다. 이후 소유권이 몇 차례 바뀐 끝에 현재는 선학원이 소유하고 있다.
[디지털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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