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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 (금)

독립운동가 며느리 "일본보다 친일파가 더 문제"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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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단재 신채호 선생 며느리 이덕남 여사.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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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친일파가 더 문제예요. 1945년 8월 15일 이후 친일파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게 오늘까지 이어졌어요."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 며느리 이덕남(76) 여사는 1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경제보복을 단행한 일본보다 친일 논란을 빚는 국내 일부 인사들이 더 못마땅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여사는 『반일 종족주의』 대표 저자로 논란이 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사죄한다"고 발언한 주옥순 엄마부대봉사단 대표를 거론하며 "일본놈보다 더 심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 땅에서 나오는 쌀알을 먹고 살면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하나"라며 "내가 나이를 먹어 그렇지, 60살만 됐어도 가만 안 둔다"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 여사는 단재의 둘째 아들인 신수범(1991년 작고) 선생 부인이다. 단재의 중국 베이징 망명 시절 태어난 그의 남편은 돌쯤이던 1922년 어머니와 한국으로 돌아왔다. 시아버지 단재는 독립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돼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서 복역 중 1936년 숨졌다. 시어머니인 박자혜 선생은 산파 일을 하며 가족 생계를 책임졌다. 그 역시 간호사들의 독립운동 단체인 간우회(看友會)를 조직해 활동할 정도로 열성적 인물이었다.

이 여사는 남편에게 시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시아버지가 독립에 목숨을 바칠 정도로 고집이 엄청나게 세신 분이라고, 남편도 아버지 유산으로 고집 하나를 물려받았다고 했다"면서 "그래서 부부싸움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 여사는 국가가 독립유공자 대우를 소홀히 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현충원에 가보면 17만명이나 되는 무후(無後·자손이 없음) 유공자들이 있다"며 "그분들은 실제로 자손이 없어서 그렇기보다는 호적·국적이 없기 때문에 자손과 연결고리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단재도 무국적이었다가 지난 2009년 국적을 회복했다. 단재는 1912년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해 호적제를 개편했을 당시 일본 호적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며 거부했다. 광복 후 정부가 호적에 등재된 이에게만 국적을 부여하면서 무국적자가 됐다.

이 여사는 "저 역시 투쟁가로서 아버님 국적 회복 운동을 19년간 했다"며 "바로 선 나라였으면 해방된 후 순국선열의 국적을 바로 회복해줘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지혜 기자 kim.jihye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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