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메리 | 작가 겸 번역가.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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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우리는 흔히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결과 없는 과정이 그 자체로 인정받은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발레리나 강수진과 축구선수 박지성의 흉하게 변형된 발 사진이 주목받은 것은 그들이 해당 분야의 톱 플레이어였던 덕분이지, 단순히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두 사람에 이어 기성용 선수의 매끈한 발 사진이 공개됐을 때 그가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한 사람은 없었다.
결과가 받쳐주지 않을 때는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사람들은 실패자가 걸어온 길을 아무렇지 않게 평가한다. 발이 매끈하면 훈련이 부족했다며 비난하고, 발이 흉하면 훈련 방법이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이 세상에 남의 노력에서 결점을 찾아내고 지적하는 것만큼 쉽고 간단한 일은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잣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낸 이를 보며 말한다. 노력을 하라고. 해서 안 되면 더 노력하라고.
최근 인터넷 세상에는 젊은 세대의 현실적인 고충을 무시하고 노력만을 강조하는 기성세대를 비꼬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하지만 실제로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래도 이런 태도를 지닌 것이 우리 사회의 일부 구성원만은 아닌 것 같다. 경기에서 패한 국가대표 선수들을 보며 우리는 쉽게 말한다. 쟤들은 근성이 없다고. 헝그리정신이 부족하다고. 이런 태도는 모이고 모여서 사회의 폐단인 결과 지상주의로 이어진다. 올림픽 시즌에 승률이 낮은 경기 중계를 취소하고 인기 종목 선수의 메달 수여식을 방영하는 것은 이미 흔한 풍경이다.
하지만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모두가 업신여기는 '패배자의 노력'을 집요하리만치 깊이 있게 파헤쳤고, 그 결과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 동시 수상작인 <노인과 바다>를 탄생시켰다. 작품의 주인공인 '노인'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어부로, 주변 사람들로부터 고기잡이 운이 끝장났다는 평을 듣고 있다. 원래는 뱃일을 돕던 소년과 함께 배를 탔지만, 허탕을 친 날이 한 달 이상 지속되자 부모가 나서서 아이를 데려가 버렸다.
<노인과 바다>는 말상대 하나 없이 작은 조각배에 몸을 싣고 시작된 노인의 85일째 고기잡이 과정을 보여준다. 몸은 늙었고 장비도 보잘것없지만, 노인의 마음만큼은 오늘이야말로 성과를 내고 말겠다는 의지로 충만하다. 그는 결의를 다지며 평소보다 먼바다로 나가고, 베테랑 어부의 직감과 노하우를 총동원해서 마침내 웬만한 어부들이 평생 한 번 잡기도 힘든 거대한 물고기의 입질에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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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기가 바늘을 물었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고기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했고, 가진 장비라곤 낡은 낚싯줄과 두 손뿐인 노인으로서는 그 고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배에 실을 수가 없다. 만약 고기가 바늘을 문 채로 깊은 바닷속으로 잠수해버리기라도 하면 낚싯줄이 끊어지거나 자칫 배까지 딸려 들어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노인은 포기하지 않는다. 때로는 부드럽게 타이르고, 때로는 거칠게 싸워가면서, 그는 낚싯줄 끝에 있는 목표물과 무려 3일 동안 사투를 벌인다. 식량도 물도 떨어지고, 낚싯줄을 지탱하느라 등과 손바닥의 살갗은 다 벗겨져 나간다. 교대해줄 사람이 없으니 밤이면 발가락에 낚싯줄을 묶어놓고 새우잠을 청한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건 '노력' 끝에, 노인은 결국 고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다.
하지만 성과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 소설의 결말은 비극이다. 고생고생해서 잡은 물고기를 배 뒤편에 매달고 돌아오는 동안, 상어 떼가 달려들어 살점을 전부 뜯어먹어버린 것이다. 무기라고 할 수도 없는 짧은 칼을 휘두르며 맞서지만, 노인에 비해 상대는 너무 크고 너무 많다. 살코기의 4분의 3 정도만 가져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노인의 바람은 이내 절반으로, 3분의 1로 줄어든다. 결국 배가 항구에 닿을 무렵 그에게 남겨진 것은 끊어진 낚싯줄과 엉망이 되어버린 손바닥, 그리고 커다란 생선의 뼈다귀뿐이다.
그는 84일 동안 고기를 잡지 못한 어부에서 87일 동안 잡지 못한 어부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모른다. 유일한 동료였던 소년조차 떼어놓고 나간 고기잡이였기에 증언해줄 사람 하나 없다. 하지만 그 치열한 3일을 지켜본 우리는 진실을 알고 있다. 내다 팔 고깃덩이 한 점 없이 집으로 향하는 노인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한심함이 아니라 경외심이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한심하다 말하는, 근성 없다 말하는 많은 이들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했지만 안타깝게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그 노력을 증언해줄 사람이 없었던 것뿐이다. 노인 산티아고의 외로운 사투에 공감한 사람이라면, 타인의 인생을 평가하기에 앞서 조금 더 신중한 태도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패배하고 돌아온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은 더 노력하라는 질책이 아니라 '고생 많았다'는 격려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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