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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7 (목)

[연합시론] 동북아 평화 위한 일본의 역사 직시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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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용광로에 불을 켜라 새나라의 심장에 철선을 뽑고 철근을 늘리고 철판을 펴자. 시멘트와 철과 희망 위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 세워가자"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인용한 김기림 시인의 시 '새나라송'의 일부다. 새나라의 심장에 불을 켜 용광로처럼 타오르게 해 국가 발전을 이루자는 의미일 터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올해를 시작하며 우리는 국민통합으로 번영과 평화의 새 100년을 열자고 다짐했다.

비핵화와 남북협력을 핵심으로 하는 한반도평화과정은 가다 서기를 거듭하지만 여전히 민족 화해와 통합, 남북 공존과 공영의 기대와 희망을 주고 있다. 복병은 예기치 못한 데 있었다. 과거사로 갈등과 반목은 했지만 경제, 안보, 문화에서 긴밀하게 협력하고 활발하게 교류해왔던 일본이 우리를 향해 느닷없이 수출규제를 감행했다. 일본의 경제 도발은 하필이면 3·1운동 100주년에, 광복 74돌 직전에 일어났다. 국가독립에도 경제적으로는 일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한일 관계를 보여줬다. 수출규제의 직접적 이유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해산이었다. 일본은 역사 문제를 경제 보복으로 대응한 셈이다. 이웃 국가와 평화, 협력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선진국이라고 믿기 어려운 행태였다.

일본이 경제 침략을 서슴지 않은 데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본다. 동북아시아는 격렬한 정세 변화를 겪고 있다. 중국이 제2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국 패권을 위협하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4대 열강의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한반도에서는 북미 비핵화 협상, 평화 프로세스로 남북의 냉전, 대치 구도가 바뀌려 하고 있다. 2위 경제 대국에서 중국에 의해 3위로 밀려난 일본은 중국의 군사 강국화에 위협을 느낀다. 북미 협상에서도 소외된 모양새가 돼 동북아 질서 재편 과정에서 주도권을 놓칠까 불안해하고 있다. 여기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일본을 추격하고 있다.

19세기 말부터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조선과 동아시아를 침략했던 일본이 침탈의 상흔이 아물기도 전에 침략 사실조차 부인한다면 역내 평화와 안정이 가능하겠는가. 한일 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하고, 동아시아에 협력과 평화 질서가 정착하려면 그러한 일본의 태도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의 변화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크지 않다. 가뜩이나 침략 전쟁의 역사 청산이 덜된 일본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정부와 일부 국민의 보수적, 극우적 성향은 더 강해졌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1945년 광복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조선 침략을 인정한 적이 없다. 식민지배는 조선의 동의나 요청에 따른 합법이었다는 강변을 계속하고 있다. 단지 외교 언사로서 반성과 사과의 뜻을 표하긴 했으나 침략과 불법을 부인하다 보니 의미와 표현이 분명하지 않았고, 그나마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했다. 일본의 침략 부인은 아베 정부가 전쟁 가능한 국가로 가기 위해 개헌을 추진 중이라는 점에서 가볍게 볼 수 없는 대목이다.

일본은 침략의 실체적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것이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의 출발점이다. 다만 그것은 하루아침에 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일본이 역사를 직시하도록 인내심을 갖고 이끄는 한편 경제, 문화, 인적 교류에서 발전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자고 했을 뿐 수출규제를 감행한 일본을 정면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일본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단호하게 대응하면서도 외교적 해법을 찾는 게 올바른 방향이다. 경축사에 나타난 일본 비판 수위 절제가 한일 대화를 위한 우호적 분위기로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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