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자의 작품·연출관은 창작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모두 마찬가지죠. 알아두면 이해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연출자의 작품 세계. 지금부터 ‘디렉토리’가 힌트를 드릴게요. <편집자주>
윤가은 감독의 영화적 세계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혹자는 노이즈로 치부할지언정,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어찬 영화에는 우리의 유년을 상기시킬 만큼 강력한 힘이 녹아있다.
단편영화를 거쳐 장편 데뷔에 이르기까지 줄곧 아이들의 시선과 감정을 그려온 윤가은 감독이 두 번째 장편영화 ‘우리집’으로 아이들 그리고 가족을 이야기한다.
윤가은 감독 사진=MBN스타 제공 |
◇ 어른들은 모르는 ‘손님’(2011)과 ‘콩나물’(2013)
윤가은 감독의 단편은 모두 아이들의 세상이 담긴 영화였다. 클레르몽페랑국제단편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손님’, 베를린국제영화제 수정곰상을 수상한 ‘콩나물’까지 윤가은 감독은 어른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혹은 이미 다 잊고 만 동심의 세계를 담백하게 그려냈다.
‘손님’은 아빠가 바람피운다는 사실을 안 고등학생 자경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내연녀의 집으로 향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19분짜리 단편영화다. 분노 가득한 얼굴로 내연녀의 집 문을 열어젖힌 자경이 마주한 건 정작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두 남매다. 자경은 막무가내로 집에 들어가 아빠의 흔적을 찾아내고, 내연녀의 귀가를 기다리면서도 겁에 질린 두 남매를 보며 복잡한 심경을 느낀다. 자경과 두 남매,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 그저 일 나간 엄마를 얌전히 기다렸을 뿐이다.
영화 ‘손님’ ‘콩나물’ 포스터 사진=영화 ‘손님’ ‘콩나물’ |
‘콩나물’은 엄마를 대신해 콩나물 사러 집을 나선 7살 보리의 이야기를 그린 20분짜리 단편영화다. 일종의 보리 로드무비라고 봐도 무방하다.
할아버지의 제사 준비로 바쁜 엄마를 대신해 보리가 콩나물을 사기 위해 슈퍼로 향하는 동안 동네는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보리는 쭈쭈바를 먹으며 동네 오빠들의 오락을 구경하고, 슈퍼 앞 평상에서 막걸리 마시는 어른들의 대화에 끼기도 한다. 자신의 몸집보다 더 큰 개를 만나 일생일대 위기에 봉착해 어쩔 줄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보리는 자기 키보다 한뼘 더 성장한다.
윤가은 감독은 아이들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매순간 어른의 시선을 경계한다. 어른의 입장에서 극 중 어린 아이의 입장을 재단하거나 성급히 판단하지 않는 실수를 범하지 않음으로써 보다 담백한 성장영화의 카테고리를 완성했다.
영화 ‘우리들’ 포스터 사진=아토ATO |
◇ 우리 모두가 아는 ‘우리들’(2015)
단편들을 통해 동심의 세계를 응시했던 윤가은 감독이 장편에선 조금 더 복잡미묘한 세계를 그렸다.
윤가은 감독은 ‘우리들’로 제37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비롯해 국내외 유수 영화제를 휩쓸며 평단의 찬사는 물론 관객까지 만족시켰다. ‘우리들’은 11살 외톨이 소녀 선과 전학생 지아의 관계를 따라가며 오해와 질투, 그보다 더 깊고 어두운 감정으로 물든 아이들의 세계를 담아냈다.
선과 지아는 서로에 대한 애착관계를 형성한다. 문제는 애착의 이면에는 두려움과 질투가 도사린다는 점이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영원할 줄 알았던 두 소녀의 관계도 오해로 물들어 끊어지고, 결국 서로를 극단으로 내몰고 만다.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경제적 차이도 은연 중 생채기를 남긴다. ‘왜 휴대전화도 없냐’는 지아의 말이 여린 선의 마음에 비수를 꽂듯 말이다.
‘우리들’의 첫 장면은 피구시합이다. 암전 상태에서 뭔가 생동감 넘치는 사운드가 들려오고 이내 화면이 밝아진다. 관객들은 곧 아이들이 피구시합을 위해 편을 짜는 상황이라는 걸 인지한다. 카메라는 어느 쪽에도 선택되지 못해 난감하고 민망한 아이의 표정만 가만히 비출 뿐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윤가은 감독이 만약 ‘우리들’을 통해 따돌림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명확히 구분 지었다면, 지금과 같은 잔상은 떠오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윤가은 감독은 아이들의 세계를 획일화하고 단순하게 규명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응시하는 쪽을 택했고, 결국 영화는 아이들도 어른들도 언젠가 한 번쯤 느껴봤을 감정으로 잔상을 남겼다.
영화 ‘우리집’ 포스터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
◇ 누구나 갖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우리집’
윤가은 감독이 두 번째 장편 ‘우리집’에서도 아이들의 성장담을 찬란하게 펼쳐낸다.
오는 22일 개봉하는 영화 ‘우리집’은 숙제처럼 느껴지는 가족의 문제를 풀기 위해 어른들 대신 직접 나선 세 아이의 빛나는 용기와 여정을 담았다.
전작들의 연장선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 나름의 방식으로 고군분투한다. 매일 다투는 부모님을 둔 12살 하나와 잦은 이사를 겪는 10살 유미 그리고 유미의 동생까지, 이렇게 삼총사가 된 아이들은 어른들은 절대 모를 가족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한다.
어떻게든 친구의 집을 지켜주려는 소중한 마음은 이벤어도 역시 보는 이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과 공감을 이끌어낼 전망이다. sunset@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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