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06 (수)

강한 한방 없이 빠져드네…정준하‧테이의 ‘시티 오브 엔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공연리뷰]

한국 초연 나선 색다른 뮤지컬

극중극 형식에 탐정 느와르 녹여

중앙일보

한국에서 초연 중인 뮤지컬 ‘시티 오브 엔젤’은 현실과 영화 시나리오가 뒤섞이는 기묘한 미스터리 코미디다. 탐정 스톤 역의 테이와 도나/울리 1인2역의 박혜나. [사진 샘컴퍼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입가에 맴도는 히트 솔로곡 없이도 물 건너온 뮤지컬이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 8일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한국 초연으로 막이 오른 ‘시티 오브 엔젤’은 이런 우려와 궁금증을 남긴다.

일단 이야기 얼개는 흥미롭다. 먼저 등장하는 건 1940년대 ‘천사의 도시’ LA에서 활동하는 사립탐정 스톤. 그가 미스터리 범죄에 휘말려드는 과정을 플래시백(회상)으로 보여주던 무대는 어느 순간 이 탐정소설을 영화로 각색 중인 시나리오 작가 스타인의 세계로 바뀐다. 스타인이 거물 프로듀서 버디의 간섭 때문에 갈등을 겪는 중에 불쑥 스톤이 스타인의 세계로 겹쳐 들어온다.



1940년대 할리우드 배경 미스터리 코미디



마치 웹툰과 현실 간의 경계를 허물었던 판타지 스릴러 드라마 ‘W'(더블유)를 연상시키는 이 독특한 서사는 1989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첫 선을 보였다. 영국 웨스트엔드, 호주와 일본을 거쳐 올해 한국에서 초연에 나섰다. 논 레플리카(Non-Replica) 방식이라 극본과 음악만 가져오고 디테일은 국내 상황에 맞게 바꿨다.

중앙일보

한국에서 초연 중인 뮤지컬 ‘시티 오브 엔젤’은 현실과 영화 시나리오가 뒤섞이는 기묘한 미스터리 코미디다. 극작가 스타인 역으로 안정된 연기력과 가창력을 선보인 최재림 배우. [사진 샘컴퍼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초연이란 점을 감안해도 관객으로서 관건은 1부를 어떻게 버티느냐다. 스캣(의미 없는 음절을 가지고 즉흥적으로 노래하는 것) 재즈 선율로 시작해 탐정물의 느와르 세계와 할리우드의 속물 군상을 훑는데 그 과정이 통속적이다 못해 지루하다. 스타인의 세계를 천연색으로, 스톤의 세계를 흑백으로 구분하는 무대장치와 조명도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린다. 이 고비를 넘기면 2부에서 본격적으로 가상과 실재의 뫼비우스의 띠가 펼쳐져 흥미의 가속도가 붙는다.

이를 보완할 관전 포인트가 1인 2역을 하는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지난 10일 저녁 공연에선 칼라/어로라 역의 백주희와 도나/울리 역의 박혜나가 매끄럽게 현실과 영화를 넘나들었다. 작가와 극중 인물로서 긴장 관계를 보여준 최재림(스타인)과 테이(스톤)의 호흡도 출중했다. 극이 진행될수록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 건 이 같은 배우들의 호연 덕분이다. 스타인‧스톤에 각각 더블 캐스팅된 강홍석‧이지훈도 다른 색깔 매력을 발휘한다.

중앙일보

한국에서 초연 중인 뮤지컬 ‘시티 오브 엔젤’은 1940년대 할리우드 현실과 영화 속 가상 세계가 뒤섞이는 기묘한 미스터리 코미디다. [사진 샘컴퍼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반면 드라마에 가려 노래가 존재감을 잃는 게 단점이다. 특히 최재림과 테이처럼 노래 잘하는 이들의 매력을 100퍼센트 활용을 못하는 건 난제다. 인상적인 곡이 아예 없진 않다. 1막 마지막에 극의 강렬한 전환을 선도하는 ‘넌 안돼 나 없인’(You're Nothing Without Me)은 2막 마무리에 ‘너 없이 난 안돼’로 변환돼 위력을 발휘한다. 그럼에도 극장을 나설 때 입가에 맴도는 ‘강한 한방’이 없다.



반복된 뮤지컬 타성 벗어…지루하다 혹평도



오히려 이 점에서 최근 비슷하게 반복돼온 국내 뮤지컬의 타성에서 벗어난다는 시각도 있다. 뮤지컬 프로듀서 출신의 김종헌 성신여대 교수(문화예술경영학)는 “서사 중간중간 열창으로 감정을 고조시키는 방식에 관객도 이미 질리고 있다”면서 “‘시티 오브 엔젤’이 한국 관객에게 익숙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걸 넘어서는 무대 예술의 재미를 봤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한국에서 초연 중인 뮤지컬 ‘시티 오브 엔젤’은 현실과 영화 시나리오가 뒤섞이는 기묘한 미스터리 코미디다. 현실과 극중극 모두에서 영화계 거물로 등장하는 버디/어윈 역의 정준하. [사진 샘컴퍼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는 ‘링’ 방식 회전무대는 오경택 연출과 국내 제작진의 아이디어다. 찰리 채플린, 마릴린 먼로 등 할리우드 스타들을 오마주하고 영화제작 시스템을 풍자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극중 클럽과 파티 장면 등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무대 위 18인조 재즈 밴드(음악감독 김문정)의 활약도 돋보인다. 현실과 극중극 모두에서 영화계 거물로 등장하는 버디/어윈 역엔 ‘무한도전’ 종영 이후 오랜만에 관객 앞에 서는 정준하가 뮤지컬계 감초 임기홍과 함께 캐스팅됐다. 10월 20일까지 중학생 이상 관람가.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