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새 일왕에 즉위한 나루히토(德仁·59) 일왕이 15일 도쿄 지요다구 부도칸(武道館)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과거에 대한 ‘깊은 반성’을 강조했다. 전쟁의 책임을 외면하는 일본 정치인과 대조적으로 줄곧 종전일 추도사를 통해 과거사를 반성한 부친 아키히토(明仁) 상왕의 ‘평화주의 노선’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나루히토 일왕은 이날 “전후 오랫동안 이어진 평화의 세월을 생각하며,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 위에 서서, 다시 전쟁의 참화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세계 평화와 일본의 발전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출생한 첫 전후 세대 일왕이다. 레이와(令和) 시대를 연 그가 전몰자추도식에서 어떤 ‘오코토바(お言葉·소감)’를 내놓을지에 전 일본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는 부친의 지난해 오코토바를 90% 정도 그대로 인용했다. 지난해 부친이 사용한 ‘깊은 반성과 함께’를 ‘깊은 반성 위에 서서’로 표현만 조금 바꾸는 정도였다.
나루히토 일왕은 전쟁을 겪지 않았지만 태평양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부친으로부터 늘 전시의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란 것으로 알려졌다. 왕세자 시절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미국과의 격전을 벌인 오키나와 등도 방문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부친과 마찬가지로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는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야스쿠니신사 측은 작년 가을 아키히토 당시 일왕에게 야스쿠니 창립 150주년을 맞는 2019년에 참배해주길 청원했지만 거절당했다. 아키히토 상왕은 일왕으로 재임했던 30년 동안 보수층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야스쿠니신사 참배 요청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참배하지 않았다. 이곳에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전 총리를 비롯한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다.
한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일왕과 달리 이날 추도식에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 및 책임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2012년 말 두 번째로 집권한 그는 2013년 8월부터 이날까지 7년간 추도식에서 과거사를 반성하는 내용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총리 이후 역대 총리들이 아시아 국가들을 가해한 책임을 언급하면서 반성과 애도의 뜻을 밝혀 온 것과 대조적이다.
아베 총리는 추도식 참석 직전 야스쿠니신사에 공물도 보냈다. 역시 두 번째 집권 후 7년 연속 계속된 행위다. 그는 2013년 12월 재집권 1주년을 맞아 야스쿠니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한국과 중국의 거센 항의는 물론이고 당시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가 “실망했다”고 하자 이후 참배를 하지 않았다. 대신 8월 15일은 물론 봄가을 제사 등 매년 세 차례 공물을 보내고 있다.
이날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 일본 외무성 부대신(차관), 기우치 미노루(城內實) 환경성 부대신 등 우익 성향의 ‘다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일본 의원 50여 명은 야스쿠니신사를 집단 참배했다. 총리 최측근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자민당 간사장 대행, 차세대 총리 후보로 꼽히는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중의원 의원도 개별 참배했다.
한편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상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수출 규제에 관해 한국과) 협의에 나설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2일 “일본이 대화를 원하면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것에 대한 거부로 보인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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