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14일(현지시간) 한 트레이더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AFP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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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하반기 서브프라임 사태로 점화돼 이듬해 리먼브러더스 등 대형 금융기관 파산으로 이어졌던 글로벌 금융위기에는 '전조'가 있었다. 2005년 12월 무렵 미국 국채 10년물과 2년물 간 금리가 역전되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미국 경제는 성장률 3%를 육박하는 호황기였고, 금융기관은 수많은 파생상품을 만들어 주택담보대출을 확대했다. 하지만 경기가 하강하기 시작하자 결국 숨겨져 있던 시한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2001년 '정보기술(IT) 버블'이 터질 때에도 장·단기채 금리 역전이 어김없이 나타났다. 장·단기채 '수익률 곡선 역전(yield curve inversion)'이 경제 위기를 알리는 전서구로 각인된 배경이다.
지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은 발표 자료에서 금리 역전은 미국뿐 아니라 주요 선진국에서 향후 경기침체(리세션)를 예고하는 실증적 지표라고 인정했다. 1955년 이후 금리 역전이 발생했던 10번 가운데 9번 리세션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1960년대 중반 단 한 차례만 일시적 경기둔화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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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 금리는 일반인이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과 비슷한 원리로 움직인다. 장기채는 장기 예금과 같기 때문에 높은 금리를 받고, 단기채는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를 받는 게 당연한 원리다. 금리 역전이 나타나는 정확한 메커니즘은 규명된 바 없지만, 금융 투자자들의 비관적 경기 전망과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장기채 금리는 낮추고 단기채 금리는 끌어올리는 원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미국 국채는 미·중 무역전쟁이 촉발된 지난해 여름부터 장·단기 수익률 곡선의 '평탄화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지난해 네 차례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단기채 금리는 꾸준히 오른 반면 장기채 금리는 낮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횡보했기 때문이다. 이어 지난 5월에는 미 국채 3개월물과 10년물의 금리가 이미 역전됐다. 14일(현지시간) 3개월물 금리는 10년물보다 무려 0.4%포인트나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장·단기 금리 중 미 국채 2년물과 10년물의 금리 역전이 경제 불황과 가장 큰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발표되는 경제지표와 주요국 정책 방향은 향후 경기후퇴 가능성에 더욱 무게를 실으며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 심리를 자극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미·중 무역분쟁의 불확실성도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됐다. 미·중 무역전쟁발 경기후퇴 가능성이 커지자 연준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렸고, 9월 말에도 한 번 더 금리를 낮출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번에는 한번에 0.5%포인트를 내릴 수 있다고 점치는 시각도 많아지고 있다.
이번 금리 역전이 과거처럼 리세션으로 이어질 것인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은 이날 폭스비즈니스와 인터뷰하면서 "수익률 곡선 역전을 신뢰하는 것은 이번엔 잘못일 수 있다"며 "장기 국채 수익률을 떨어뜨리는 데는 향후 금리 경로에 대한 기대 외에도 여러 요인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15조달러가 넘는 외국 국채가 마이너스 금리로 유통되고 있다"며 "채권 시장을 교란하는 요인이자 장기채 저금리가 '뉴 노멀'일 수 있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또 실물경기 후퇴가 2008년과 같은 글로벌 위기로 확산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직은 반론이 만만치 않다. 미국 경제는 지난해 2.9% 성장률을 기록했고 고용 시장도 여전히 탄탄하다. 지난 2분기부터 성장세가 둔화되기 시작했지만 소비자들은 오히려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당장 리세션이 시작될 가능성은 낮고 증시도 폭락장을 연출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좀 더 우세한 배경이다.
금융시장 건전성도 2008년 글로벌 위기 때보다는 훨씬 강화돼 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2020년 경제 침체 가능성을 50% 선, 뱅크오브아메리카는 33%로 전망했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설에서 "중국의 경기침체는 유럽의 경기침체를 의미하며 미국의 성장률도 떨어뜨릴 것"이라며 "누군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경기침체를 가져오는 대통령은 재선이 될 수 없다고 말해줘야 한다"고 꼬집었다. 미·중 무역전쟁의 조기 해소가 가장 확실한 처방전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미친(crazy) 수익률 곡선 역전"이라며 "우리 문제는 중국이 아니라 연준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연준은 (지난해) 너무 빠르게 금리를 올렸고, 이제는 너무 늦게 금리를 내리고 있다"며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가리켜 '멍청하다(clueless)'고 맹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미·중 무역전쟁 때문에 리세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주장에 반론을 펴고 있으나, 내년 대통령 선거를 의식해 중국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계속 고집하기 어려울 것이란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 서울 =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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