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6 (목)

시한폭탄 된 ‘전자담배’…밀수 거래되는 산업용 배터리가 뇌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전자담배 시장이 확대되면서 소비자가 자신에게 맞는 기기‧액상 등을 취향에 따라 조합해 필 수 있는 ‘액상형 전자담배 기기(모드‧MOD)’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국내외에서 일부 액상형 전자담배에 사용된 배터리가 폭발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어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6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미국에서 한 남성이 피우고 있던 전자담배가 폭발해 턱뼈, 치아 등이 으스러지는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최근 국내에서도 육군 병사가 바지 속에 넣어두었던 전자담배 폭발로 화상을 입었다. 미국에서는 배터리 제조사인 LG화학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업계는 액상형 전자담배에 불법 판매된 산업용 배터리가 사용되면서 폭발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LG화학(051910), 삼성SDI(006400)등 배터리 제조사는 전자담배용 배터리를 생산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개별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시중에서 손쉽게 산업용 배터리를 구매해 전자담배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비즈

‘멕 모드’ 액상형 전자담배 /독자 제공



◇ 연기 뱉는 느낌 즐기려 용도에 맞지 않은 산업용 배터리 사용

폭발 위험이 있는 전자담배는 사용자가 임의대로 출력을 높이는 등 개조가 가능한 ‘멕 모드(Mechanical Mod)’ 액상형 전자담배다. 일부 이용자들이 자신의 취향에 따라 액상형 전자담배 기기를 조립하는 과정에서 규격과 용도에 맞지 않는 산업용 배터리를 사용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들은 연무량(담배 연기량과 뱉을 때 느낌)과 타격감(연기가 목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을 높이기 위해 출력이 높은 산업용 배터리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자담배에 쓰이는 전지는 18650배터리로 지름 18㎜, 길이 65㎜인 원통형 배터리를 말한다. 주로 사용되는 모델은 LG화학 ‘HG2’, 삼성SDI ‘25R‧30Q’, 소니 ‘VTC5A’ 등이다. LG화학과 삼성SDI가 제조하는 원통형 리튬 배터리는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AA 건전지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유사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원통형 리튬 배터리는 가정용이 아닌 산업용이다. 용도에 따라 안전장치를 설계해 적용하기 때문에 아무 곳에나 끼워 쓸 수 없는 제품이다.

LG화학, 삼성SDI 등 제조사들은 전기차, 노트북, 스마트폰 등 특정 제품에 따라 규격, 보호 장치 등을 맞춰 배터리를 설계한 뒤 제조한다. 규격에 맞지 않는 배터리를 다른 용도로 사용할 경우 호환 검사 등이 이뤄지지 않아 폭발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LG화학, 삼성SDI 정품이 아닌 가품일 경우 사고 발생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이에 미국 식약청(FDA), 미국 소방청, 미국소비자기술협회 등은 리튬 이온 전지를 전자담배에 오용할 경우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산업용 18650배터리를 쓸 수 있도록 기기를 만드는 전자담배 제조사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배터리 불법 구매를 유도하기 때문이다. 일부 소비자의 안전 불감증도 문제다. 폭발 위험성을 알면서도 관리만 잘 하면 괜찮다는 식으로 배터리를 구매해 사용해서다. 하지만 LG화학, 삼성SDI 등이 제조한 산업용 배터리를 전자담배에 사용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에 관리 여부와 무관하게 사고 가능성이 있다.

조선비즈

LG화학 리튬이온배터리 안전 가이드 /LG화학 홈페이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LG화학 "모든 전자담배 사용 금지"…판매 안하자 밀수로 국내 반입

LG화학과 삼성SDI는 모든 배터리를 기업 간 거래(B2B)를 통해서만 판매하고, 개별 소비자에게 팔지 않고 있다. LG화학은 홈페이지를 통해 "개인 소비자가 배터리를 취급할 수 없으며, 개별 시장에서 개인소비자에게 판매 될 수 없다"며 "특히 모든 종류의 전자담배 장치에 사용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한다"고 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온·오프라인을 통해 배터리를 쉽게 구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LG화학과 삼성SDI의 원통형 리튬 배터리는 모두 제조사 허가 없이 불법 판매되는 제품이다. 두 회사 모두 자사 원통형 리튬 이온 전지가 불법 유통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유출 경로는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배터리업계는 LG화학, 삼성SDI 거래처 중 일부가 제조 과정에서 사용하고 남는 물량을 거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규모가 큰 주요 거래업체는 관리가 가능하지만 중소업체나 소매점까지 관리하기 어려워 일부 물량은 총판 대리점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총판 대리점은 중소업체가 요구하는 배터리 수량과 사용목적 등을 배터리 제조사에 알린 뒤 물량을 확보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해외 대리점과 거래하는 일부 중소업체가 배터리 여분을 폐기하지 않고 시중에 유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산업용 배터리는 대부분 밀수를 통해 국내로 반입된다. 국내 전자담배업체들은 수입업체를 통해 확보한 배터리를 소비자에게 판매하고 있다. 배터리 수입업체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산업용 배터리 구매가 어렵지 않다"며 "전자기기나 전자공구 소매점을 차린 뒤 배터리업체와 거래하면 손쉽게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밀수를 통해 국내 반입되는 배터리는 안전인증인 KC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이 대부분이다. 개인이 해외직구를 통해 구매할 경우 KC인증이 없어도 세관 통과에 문제가 없다. 전기용품 안전관리법에 따라 안전인증을 받아야 하지만, 개인용으로 사용할 경우 요건을 면제해 주는 경우가 있다.

정부는 지난 6월부터 전자담배 폭발사고에 대해 사고 원인을 다각적으로 조사 중이다. 하지만 산업용 배터리 불법 거래에 대한 단속은 하지 않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소비자단체를 통해 거래 모니터링을 할 계획"이라며 "이달 말쯤 거래 단속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조지원 기자(jiwon@chosunbiz.com);서영일 인턴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