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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기자메모]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로막고…꼭 그렇게 선고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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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 14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412호 법정.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실시간으로 상황을 보고했다고 허위 답변한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에 대한 1심 판결 선고공판이 열렸다.

이곳은 좌석이 30개 정도밖에 안되는 소법정이다. 기자는 사전에 취재용 방청권을 받아 법정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밖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방청권이 없어 법정에 들어오지 못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법정 경위들과 다투고 있다고 했다.

“김기춘 나와라!” “방청 못하게 하는 판사 각성하라!” 유가족들 항의는 형사30부 권희 재판장이 선고문을 낭독하는 동안에도 이어졌다. 누군가는 법정 문을 쿵쿵 두드렸고 그 과정에서 고성과 격한 단어도 나왔다. 권 재판장 목소리가 묻히거나 중간중간 끊어지기도 했다. 법정 경위를 향해 한 차례 “해결이 안돼요?”라고 물은 권 재판장은 계속 선고를 진행했다.

법정 문은 꽉 닫혀 있었다. 36도의 기온에 환기도, 냉방도 안되는 소법정에서 1시간가량 선고가 이어졌다. 이마엔 땀이 줄줄 흘렀고, 법정 밖에선 유가족들의 분노 섞인 호소가 들려왔다. 혼란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선고문 낭독을 듣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꼭 이렇게 선고를 해야 했을까. 법원은 청사에 입간판 형태로 ‘재판 방청권을 선착순으로 배부한다’고 공지했다 한다. 법원 청사를 자주 드나들지 않는 시민에게는 익숙지 않은 방식이다. 홈페이지에 공지글을 올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김경수 경남지사 재판과도 다르다.

권 재판장에게는 다른 선택지도 있었다. 법정에는 여유 공간이 있기 때문에 유가족들이 그곳에 서서 방청하도록 할 수도 있다. 다른 재판에서도 방청을 원하는 시민이 많은 경우 서서 선고를 듣게 하거나, 아예 법정 문을 열어놓기도 한다. 상황을 진정시키는 차원에서라도 잠시 휴정하거나 유가족들에게 법정에 들어오게 할 수 없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한 뒤 선고를 이어갈 수도 있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라 방청객이 많을 것을 예측하고 애초에 더 큰 법정에서 선고를 진행할 수도 있었다.

핵심은 ‘피해자 중심적 접근’이다. 재판 진행은 재판장 재량이고, 김 전 실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허위공문서 작성과 행사죄다. 엄밀히 말하면 유가족들이 ‘범죄 피해자’는 아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책임 회피로 진상규명이 지연됐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가족들이 입었다. 실질적인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을 피해자로 명시한 세월호특별법도 있다. 가해자에게 어떤 판결이 선고되는지는 피해자의 알권리에 속한다.

이준석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 사건을 심리한 판사들이 발간한 백서를 보면 충격이나 슬픔에 찬 유가족들의 격앙된 반응을 피해자의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이해하고, 제어만 하기보다는 이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으면서 달래는 방법을 고민한 내용이 나온다.

유가족들이 법정에 들어가지 못하던 그 시각, 같은 법원의 417호 대법정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차지하고 있었다.

대법정은 공간이 넓고 냉방도 잘된다. 방청객은 그다지 없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대법정에서 재판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시 묻는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정말 법정에 들어갈 수 없었나, 법원은 꼭 그렇게 선고를 해야 했나.

이혜리 | 사회부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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