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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솎아내고 탈수하고 살균하고… 매일 1만6000t 음식쓰레기 '신분 세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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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음식 쓰레기 따라가보니

조선일보

①지난 13일 오전 서울 도봉구 음식물 중간 처리장에서 기자가 음식 쓰레기 속 이물질을 선별하는 작업을 체험하고 있다. ②음식물 수거 차량이 도봉구에서 모아온 음식 쓰레기를 처리장에 쏟는 모습. ③처리장 직원이 음식 쓰레기에서 수분을 짜내는 탈수기의 내부를 보여주고 있다. ④모든 공정을 마치고 완성된 건식 사료.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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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를 잠시 잊게 해준 수박의 껍질과 며칠 만에 상해서 버린 반찬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음식물은 많든 적든 쓰레기를 남긴다. 식욕 또는 생존의 부산물이다.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짐짓 모른 척한다. 흉하고 냄새 나는 음식 쓰레기를 집 밖 수거통에 넣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약 1조원어치라고 하면 귀가 번쩍 뜨일지도 모르겠다. 정부 발표로 매년 음식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집에서 기르는 동물에게 잔반을 끓여 먹이고 음식 쓰레기를 일반 쓰레기와 함께 땅에 묻던 시절도 있었다. 약 15년 전인 2005년 1월 1일 음식 쓰레기 매립이 전면 금지됐다. 그것을 '자원'으로 바꾸는 사업이 시작됐다. 현재 음식 쓰레기의 90%는 사료나 비료 등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아무튼, 주말'이 부엌이나 냉장고에서 퇴출당한 음식 찌꺼기가 어디로 가는지 추적했다. '음식 쓰레기의 여행'.

쓰레기 수거 차량을 타고 '야반도주'

지난 13일 밤 10시 서울 송파구. 열대야라서 10분 정도 걷기만 해도 얼굴과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기온은 섭씨 30도. 3600여 가구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5t짜리 음식물 수거 차량이 들어왔다. 단지 정문을 통과하고 차량에서 내린 작업원 두 명이 뛰기 시작했다.

"원래 이렇게 뛰세요?" "어휴, 평소에는 더 빨리 뛰어요." 작업원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답했다. 작업원 한 명은 쓰레기 집하장에 있는 음식 쓰레기통을 도로 쪽으로 빼놓고 다음 집하장으로 뛰어갔다. 다른 한 명은 익숙한 몸놀림으로 그 통을 차량에 쏟아붓고 다시 제자리로 갖다 놓았다.

"한곳에 오래 차를 세워 두면 냄새 나고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옵니다. 빨리해야 해요. 한 시간 안에 이 단지 다 끝내려면 서둘러야죠." 동행한 기자도 수거 업무를 체험했다. 넓은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며 단지 내 집하장 25곳의 음식 쓰레기통을 조용하고 재빠르게 다 비웠다.

남의 눈을 피해 밤에 몰래 하는 '야반도주(夜半逃走)'. 120L 쓰레기통을 옮겨 올리기를 반복하니 허리가 금방 뻐근해졌다. "월요일에는 이 통이 꽉 차 있어요. 오늘은 가벼운 편이에요." 다행히 이날은 화요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하루 동안 생기는 음식 쓰레기는 1만5903t(2017년 환경부 통계)이다. 2013년 일일 음식 쓰레기 배출량은 1만2663t. 5년도 안 지나 음식 쓰레기가 25% 이상 늘었다. 서울시에서 2017년 음식 쓰레기 배출량으로 으뜸인 구는 강남구(하루에 261.8t). 그 다음은 송파구(191.8t), 서초구(179t) 순이었다. 가장 적은 금천구(62.4t)와는 격차가 심했다.

"여기 와서 봐요. 이런 데다가 쓰레기통을 둔다니까." 주택가에서는 숨바꼭질하듯 음식 쓰레기통을 찾아야 했다. 기자가 지나친 기둥 뒤, 건물 주차장 안쪽에도 쓰레기통이 숨어 있었다. "쓰레기통은 가벼워도 아파트 단지보다 주택가가 더 어려운 지역이에요. 재활용 쓰레기나 폐가구로 가려져 있더라도 놓치면 안 되니까요." 잘 안 보이는 쓰레기통을 가리키며 수거 차량 기사가 말했다. 큰 쓰레기통을 끌고 다니며 골목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려니 일이 배로 힘들었다. 하지만 적응한 것도 있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시큼한 음식 쓰레기 냄새를 피하려고 숨을 참았지만,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를 돌며 땀에 흠뻑 젖자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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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밤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기자가 음식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검색대와 불가마 지나 사료로 '신분 세탁'

같은 날 오전 10시 서울 도봉구가 직영하는 음식물 중간 처리장. 도봉구 곳곳에서 모인 음식 쓰레기가 트럭에 실려 도착한다. 지하로 내려가자 사료화 기계들이 철컥철컥 움직이는 소리가 처리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루 80~90t의 음식 쓰레기가 이 처리장에 도착한다. 돼지·닭·오리 등을 위한 건식 사료로 탈바꿈한다. 후덥지근한 공기에는 음식 쓰레기 냄새와 사료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음식 쓰레기는 동물 사료나 퇴비로 재활용된다. 메탄을 주성분으로 하는 연료인 바이오가스를 만들기도 한다.

전국 음식 쓰레기 처리 시설 338개 중 36개가 도봉구처럼 음식물을 건조해 사료나 비료의 재료로 재활용하는 시설, 144곳이 죽 형태의 습식 사료를 만드는 시설, 78곳이 퇴비화 시설이다. 28곳은 바이오가스를 만든다(2019년 3월 환경부 통계).

"음식 쓰레기 속에서 뭘 찾아야 해요?" "별거 다 나와요. 숟가락도 나오고 깡통도 나오고…."

공항 검색대를 잠깐 떠올렸다. 처리장에 도착한 음식 쓰레기는 컨베이어 벨트를 통과하며 속속들이 파헤쳐진다. 기자는 음식 쓰레기 선별 작업 경력이 10년쯤 됐다는 직원 옆에 섰다. 그는 베테랑이었다. 한 손에 작은 칼을 들고 쓰레기봉투를 찢으며 이물질을 찾아냈다. 초보자인 기자는 벨트를 따라 끝없이 밀려드는 음식물을 마냥 뒤지기 시작했다. 일을 시작한 지 10분도 되지 않아 스테인리스 밥그릇 뚜껑이 손에 걸렸다.

"찾았다!"며 신나게 소리치자마자 '이런 걸 음식 쓰레기에 같이 버리나' 싶은 도기 재질의 간장 종지, 싱크대 배수구 뚜껑, 플라스틱 포장 용기 등이 잇따라 나왔다. 음식 쓰레기만 봐도 계절 과일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수박 껍질이 많았다. 일반 쓰레기로 버려야 하는 옥수숫대나 과일 씨앗, 조개껍데기가 나올 때마다 '사수'에게 물어봤지만 "그냥 두라"는 답이 돌아왔다. 애매한 쓰레기까지 거르기에는 컨베이어 벨트 속도가 너무 빨랐다. 사람 손으로 큰 이물질을 솎아내고 나서 기계로 한 번 더 쓰레기에 섞인 비닐을 거른다.

이렇게 이물질을 제거한 음식 쓰레기는 새로운 세계로 떠날 출국장에 선 셈이다. 사료가 되려면 먼저 파쇄기로 들어간다. 잘게 다져진다. 그리고 물기를 꽉 짜준다. 도봉구 관계자는 "처리장에 하수 처리 시설이 따로 없어 폐수는 지하 저장고에 모아 성동구 중랑 물 재생 센터로 보낸다"며 "음식 쓰레기의 80%가 물이라 사료는 음식 쓰레기의 10분의 1 정도"라고 했다.

잘게 다져지고 물기를 뺀 음식 쓰레기는 100도의 '불가마'에서 30분간 살균하며 몸을 바짝 말린다. 전북대 수의학과 조호성 교수는 "음식 쓰레기를 동물에게 먹인다는 데 대한 심리적 저항감은 있을 수 있다"면서도 "학술적으로 100도 정도 열 처리를 하면 광우병 원인 물질인 프리온을 제외하고 병균이나 독소는 죽거나 사라진다"고 말했다.

컨베이어 벨트로 올라간 뒤부터 100~120분이면 사료로 거듭난다. 자원화 과정을 다 마치고 나오는 사료를 손으로 받아 만져봤다. 뜨끈했다. 흑갈색과 부드러운 입자는 분갈이할 때 만져 본 배양토와 느낌이 비슷했다. 과거(음식 쓰레기)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간장 조림이 탄 향이 고소하게 났다. 동행한 사진기자는 '낚시 떡밥'에서 맡아본 냄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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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달려 강원도 돼지를 배불리다

음식 쓰레기라는 과거는 지워졌다. 'made in 도봉구' 사료는 강원도 고성·홍천, 경기도 연천 등지로 떠난다. 여정의 마지막 구간이다. 도봉구 음식물 중간 처리장에서 가장 먼 강원도 고성의 돼지 농가까지는 200㎞, 차로 3시간을 달려야 한다. 도봉구는 소규모 축산 농가를 지원하기 위해 이 사료를 공짜로 나눠준다. 돼지와 닭·오리를 키우는 농장에서 사료를 가지러 도봉구 처리장으로 온다. 음식 쓰레기 사료는 광우병 위험 때문에 소 같은 반추동물에 먹이는 게 금지돼 있다. 도봉구 관계자는 "하루 생산량은 1t짜리 자루로 8~9개다. 골고루 나눠 주느라 원하는 만큼 드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못 가져가는 농가도 있다"고 했다. 다른 지역 자원화 시설에서는 '남은 음식물 사료'를 판매하기도 한다.

시중에 판매하는 배합 사료보다 맛이나 영양이 떨어진다는 반응도 있다. 강원도 고성에서 15년째 돼지를 키우는 A(71)씨는 도봉구에서 받아 온 사료에 쌀겨·싸라기와 비싼 사료를 섞어 먹인다고 했다. "남은 음식물 사료만 주면 돼지들이 잘 안 먹기는 해요. 땅속 15m까지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람보다 맛을 더 잘 아니까요." 경기도 연천에서 닭 1만여 마리를 키우는 B(57)씨는 "닭 사료는 비싼데, 달걀값은 요즘 너무 떨어졌다"며 말을 이었다. "음식물 사료만 먹이면 달걀 껍데기가 얇아져요. 일반 사료와 도봉구 사료를 섞어 먹입니다. 그래도 홍삼을 먹이나 음식물 사료를 먹이나 달걀 검사해보면 성분은 똑같이 나와요."

음식 쓰레기의 여행은 끝났지만 끝난 게 아니다. 삶은 순환하니까. 삼겹살과 계란이 사뭇 달리 보였다.

음식 쓰레기를 냉동실에?… 세균 증식 원인 된다

'음식 쓰레기와 전쟁' 5가지 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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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기온과 습도가 높아 음식 쓰레기가 쉽게 부패한다. /셔터스톡


샤워하고 나와도 금방 땀이 흐르는 여름, 집안일이고 뭐고 다 미루고 에어컨 아래에 널브러져 있고 싶어진다. 하지만 더울수록 살림은 빈틈을 노출한다. 싱크대 배수구에 고인 음식물은 금방 썩어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엊그제 장 봐온 과일과 야채는 냉장고 안에서 무르고 곰팡이가 핀다. 음식 쓰레기통으로 직행이다. 여름철 공공의 적인 음식 쓰레기와의 전쟁, 이길 수 있는 5계명을 대방출한다.

악취? 베이킹 소다를

음식물 냄새를 피하려면 냉동실에 음식 쓰레기를 얼리라는 조언이 살림 팁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음식 쓰레기와 다른 음식 재료를 밀폐하지 않은 채로 함께 보관하면 세균 증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음식 쓰레기통에 신문지를 깔고 베이킹 소다를 뿌리면 악취를 잡을 수 있다.

초파리? 덫을 만드세요

먹고 나서 귀찮아 치우지 않은 과일 껍질과 씨앗에는 어김없이 초파리가 꼬인다. 초파리를 없애고 싶을 때는 초파리를 유혹해 가두는 ‘초파리 트랩(덫)’을 설치해보자. 제조법: 플라스틱 컵에 맥주와 식초, 설탕을 넣고 섞어준다. 컵에 랩을 씌우고 작게 구멍을 내 빨대 조각을 끼워주면 완성이다. 초파리 알이 생길 만한 싱크대나 화장실 배수구에 주기적으로 뜨거운 물을 부어주는 것도 좋다.

과일 씨앗은 일반 쓰레기, 껍질은 음식 쓰레기

요즘 많이 먹게 되는 수박의 껍질은 단단하지만 음식 쓰레기로 분류한다. 자두와 복숭아 같은 과일의 씨앗은 일반 쓰레기, 껍질은 음식 쓰레기다. 옥수수는 옥수숫대뿐 아니라 껍질까지 일반 쓰레기로 버려야 한다. 요즘 많이 먹는 양파의 껍질도 일반 쓰레기. 부피가 큰 수박 껍질의 양을 줄이고 싶다면, 잘게 잘라서 볕에 말리거나 전자레인지에 돌려 건조한다.

잘못 버리면 과태료

일반 쓰레기봉투에 음식 쓰레기를 넣어 버렸다가 단속에 걸리면 과태료를 물 수 있다. 지자체마다 금액은 다르다. 서울 송파구의 경우 쓰레기 혼합 배출이 적발될 때 1차 위반의 경우 10만원을, 관악구는 10만~30만원을 혼합 배출 과태료로 부과한다. 음식 쓰레기 기준 또한 다를 수 있으니, 이사했다면 해당 지자체의 분류 기준부터 숙지하자.

냉장고 안에서 상하는 야채, 오래 보관하려면

냉장고 안이라도 여름엔 방심할 수 없다. 야채와 과일을 냉장고에 넣기 전 포장된 비닐을 벗기고 흙과 이물질은 제거한다. 정리한 야채와 과일은 밀폐 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한다. 냉장고를 70% 이상 채우면 공기의 순환을 막아 냉장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

[조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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