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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요즘 애들은 정신력 약해 우린 '노력'으로 세계 1위 됐지 매일 밤샘·새벽 연습 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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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이혜운 기자의 살롱]

비보잉 전설 '진조 크루' 형제

조선일보

“형제끼리 같이 하는 동작이 있나요?”라고 묻자 “당연히 있죠”라며 즉석에서 바로 보여줬다. 스킴(사진 위)·윙 형제는 외모도 스타일도 달랐지만 눈빛만은 같았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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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스킴(34·본명 김헌준): "1999년 중학생 시절, 친구가 만화책 한 권을 빌려줬다. '힙합'이라는 책이었다. 책에 나오는 패션도, 말투도 재미있었지만, 난 책에 나오는 춤을 추고 싶었다. 영화 '닌자거북이'에서 미켈란젤로가 추던 춤. 화려한 묘기 같은 동작이 실제로 가능할까 궁금했다."

동생 윙(32·본명 김헌우): "형이 만화책 '힙합'에 빠졌다. 밖에선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연습했고, 집에선 방바닥에 이불을 깔아 놓고 춤을 췄다. 매일 춤 동작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구해와 집에서 봤다. 형이 하는 거면 다 따라 하고 싶었다. 아니 형보다 더 잘할 것 같았다."

지난 6월 26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제134차 총회에서 브레이크댄스를 2024 파리올림픽 종목으로 잠정 승인했다. 5년 뒤가 아니라 지금 올림픽이 열린다면, 금메달은 한국이 받을 확률이 가장 높다. 프랑스에서 발표하는 비보잉 국가별 순위 1위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팀별 1위도 한국의 '진조크루'다. 2001년 창단, 2012년 세계 최초로 5대 메이저 대회 석권, 현재까지도 세계 1위. 그 안에는 미국 비보이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프리스타일 세션' 대회 최초 비(非)미국팀 우승도 포함돼 있다.

브레이크댄스는 1970~80년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미국의 힙합 댄스 중 하나다. 현재 전 세계 200여개 나라에 브레이크댄스가 전파돼 있으며, 국내 비보이는 1만명 정도 있다. 미국 뒷골목에서 시작해 흑인을 중심으로 발전한 춤에서 어떻게 한국 형제가 수년째 정상을 유지할 수 있을까. 진조크루를 이끄는 단장 스킴과 개인별 세계 2위인 윙 형제를 경기도 부천에 있는 연습실에서 만났다. 연습실 유리에 붓글씨가 붙어 있었다. 중앙에는 '실력', 옆에는 '진조'. 진조란 불살라 오르다라는 뜻이다.

'스왜그(swag)' 대신 '노력(努力)'

―비보잉 연습실에 붓글씨는 낯선데요.

형 스킴: "저희가 세계 1위를 유지하는 비결이 강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열심히 노력해 실력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진조'라는 글자는 중국에서 공자의 제자가 써 준 거예요."

―힙합은 '노력'보다 '스왜그(자신 만의 분위기)' 아닌가요?

동생 윙: "그렇지 않아요. 저희가 비보잉 대회에서 우승하기 시작한 게 2005년부터 매일 밤샘 연습을 하면서부터예요. 매일 밤 11시부터 아침 9시까지 10시간 동안. 일 년에 딱 5일 쉬면서 5년을 했어요. 지금도 매일 5시간 이상은 늘 연습해요."

―왜 밤샘인가요?

형 스킴: "초기엔 돈이 없어서. 밤엔 연습실을 사용하는 사람이 없으니깐 대관료가 절반 정도였거든요. 처음엔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연습했는데 모래 때문에 피부가 너무 따가운 거예요. 그래서 무용 연습실 하나를 월 50만원 주고 밤에만 썼어요.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밤 연습을 해요. 낮에는 심사위원 등 비보잉 업계 고참 역할도 해야 하거든요."

동생 윙: "밤에 하면 끊기지 않고 쭉 할 수 있는 것도 좋아요. 연습 시간을 길게 잡고 싶었거든요. 적당히 해서는 저희보다 잘하는 사람들과의 격차를 줄일 수 없었어요. 그들도 노력하고 있을 텐데, 똑같은 시간을 연습하면 더 잘할 수 없잖아요? 잘하는 친구들은 국내 대회 우승 후 해외 대회에 나가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실력을 더 쌓아 와요. 그 단계까지 오르려면 진짜 미친 듯이 해야 하죠."

―춤은 노력보다 재능 아닌가요?

형 스킴: "분명히 재능이라는 것은 존재해요. 초보자 시절에는 재능이 큰 빛을 발해요. 재능이 없는 사람들과 비교되며 칭찬을 받고 가능성을 인정받으며 먼저 성장하죠. 하지만 5년이 지나 발전의 단계에 들어가면 재능보다는 노력 같은 다른 요소들이 더 중요해요. 연애도 마찬가지잖아요. 얼굴만 예쁘다고 연애를 잘하는 건 아니죠. 외모로 인한 호감이 연애로 발전하고, 진정한 사랑으로 결실을 보려면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한 거죠."

―'노오력'이라며 노력의 의미와 가치를 조롱하는 세상인데요.

형 스킴: "노력하는 모든 사람이 성공하진 않지만, 성공하는 모든 사람은 노력했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희는 노력으로 지금까지 왔고, 앞으로도 노력해서 배우고 성장해나갈 거예요. 물론 노력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러나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건 없다고 확신합니다."

조선일보

집과 공장이 다 타버렸어도 춤을 연습하러 간 ‘진조크루’ 형제. 이들 뒤에는 그 꿈을 믿고 지원해준 부모님이 계셨다. 이제 서른이 넘어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은 비보이 업계 전설들은 “춤 외의 시간은 없었지만, 춤 덕분에 아내도 만났다. 모든 인연이 춤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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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같은 말이기도 한데요?

동생 윙 : "전 저희가 '꼰대'라고 생각해요. '요즘 애들은 정신력이 약해'라는 표현을 쓰니깐요. 우린 시작할 때 IMF(국제통화기금) 외환 위기와 맞물리면서 멘털이 강해진 측면이 있어요. 밤샘 연습을 시작하니 팀원들이 나뉘더라고요. '진짜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라는 멤버들과 '우리 진짜 한번 잘해보자' 하는 사람들로. 남은 사람들은 당연히 후자죠. 저희가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자 소문 듣고 찾아온 사람들 때문에 멤버는 6명에서 15명으로 더 늘었고요. 저희는 정말 죽기 살기로 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해요?'라는 게 좀 있어요. 세대가 다르더라고요."

형 스킴 : “그런데 재미있는 게 저희는 새벽 연습을 할 때, 그 당시엔 미쳤다는 생각도 안 했어요. 힘든지도 몰랐고요. 나중에 돌아보니까 ‘야, 우리 그때 진짜 미쳤었구나’ 생각하게 되죠. 그때는 친한 친구들 생일잔치도 안 갔어요. 그야말로 춤에 몰방했었어요. 몰입의 순간이었죠. 우리의 20대를 다 갈아 넣은 거지요.”

―아이돌 제안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요.

동생 윙: “엄청 받았죠. 메이저 회사에서는 거의 전부. 그런데 저희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춤을 시작한 본질적인 이유를 좇아가고 싶었어요. 나중에 좀 지나고 나니 ‘돈을 더 벌 수 있는 곳에 뛰어들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긴 한데, 예전엔 진짜 ‘춤을 제외하고는 다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연예인, 아이돌 이런 것도 춤 외의 다른 길로 새는 것 같았어요.”

―지금 수입은 어느 정도인가요?

형 스킴 : “저흰 대부분이 공연 수입이에요. 1회 공연당 1000만원 정도. 한 번 공연당 5~15분 정도 해요. 나쁜 편은 아니지요.”

부모님의 믿음

―형제가 모두 비보이인데, 집에서 반대는 없었나요?

형 스킴: “아버지가 자식에 대한 욕심이 꽤 있으세요. 전 바둑을 시키고, 윙은 체조를 시키는 게 목표였대요. 어머니는 ‘애들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돈도 버는데 그냥 두자’고 하셨는데, 아버지가 싫어하셨어요. 아버지가 성격이 센 분이셨거든요. 제가 두 번 정도 진지하게 설득했어요. 첫 고비는 고등학교 진학할 때. 인문계에 가면 학교에 묶여 있는 시간이 많아서 춤 연습을 제대로 못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지금 인문계 진학하면 지금까지 해왔던 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춤으로 세계 최고가 되고 싶다. 대신 진짜 춤을 열심히 춰서 스무 살 때까지 결과를 보여 드리겠다. 만약 뭐라도 보여 드리지 못한다면 그땐 아버지가 원하시는 대로 하겠다’고 말씀드렸죠.”

―부모님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셨네요.

동생 윙: “저희가 춤을 진지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 드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부모님도 ‘얘네들이 이걸 장난으로 한 건 아니구나’라고 느끼신 거지요. 자녀가 뭘 할지 모르면 부모가 방향을 잡아주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자녀가 미래에 대해 확신을 갖고 주장을 하면, 그 확신에 대한 반대는 부모 입장에서도 엄청난 각오를 해야 하는 거죠. 부모도 그 반대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테고. 부모님도 믿어주셨고, 저흰 또 그 믿음에 보답하고자 열심히 하는 선순환이 이뤄졌어요.”

―‘춤 괜히 했다’라는 생각이 든 순간은 없었나요?

동생 윙: “아버지가 조명 제조 공장을 운영하셨어요. IMF 외환 위기 여파로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저희가 춤을 시작한 거였어요. 제가 스무 살, 형이 스물두 살 때 집에 불이 나 다 탔어요. 아버지 공장이 집 옆이었는데 공장도 함께 사라졌어요. 공장 옆 음식점에서 생긴 불이 공장으로 넘어왔다가 집까지 다 날려버린 거예요. 그때 ‘지금 우리가 춤을 추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형 스킴: “정말로 죽다가 살아났어요. 어머니가 자는 우리를 다 깨워서 밖으로 나와 겨우 살았어요. 정말 1분 1초가 위험했죠. 그런데 그다음 날도 공연을 해야 했어요. 뼈대만 남은 집을 두고 연습실에 갔는데 정말 생각이 복잡하더라고요. 움직일 기운도 없이 연습실에 누워 있는데 아버지가 찾아오셨어요. 저희가 춤 시작하고 처음 연습실에 오신 거였죠. 그러곤 ‘집안일은 내가 잘 해결하겠다. 너희는 춤에만 집중해라’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또 그렇게 말씀하신다고 곧이곧대로 ‘네’ 하고 연습만 했으니 참 철이 없긴 했죠(웃음).”

―춤에 대한 편견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형 스킴 : “새벽 연습을 할 때 건물 관리인 아저씨와 충돌한 적이 있어요. 저희 멤버 중에는 담배 피우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건물 주변의 담배꽁초를 저희가 버렸다고 하시는 거예요. 춤추는 애들은 다 담배 피우는 거 아니냐며. 대들며 싸웠다간 진짜 ‘양아치’처럼 보일 것 같아서 그냥 묵묵히 치웠어요. 그 모습을 보셨는지 이후엔 오해가 풀렸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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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조크루 연습실 중앙에 걸린 ‘실력’이라는 붓글씨. 스킴·윙 형제는 “비보이 중 세계 최고가 되려면 노력으로 ‘실력’을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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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잉 강국 ‘한국’

―작년까지만 해도 윙이 세계 1위였는데 최근엔 네덜란드 출신인 ‘멘노’로 바뀌었더라고요. 전성기가 끝난 건가요?

동생 윙: “순위는 대회 규모와 성적, 참가 횟수로 결정돼요. 1등 하고 싶으면 대회에 많이 나가면 돼요. 그런데 지금 저희는 춤만 추는 사람이 아니라 비보잉신(분야)을 이끌어 가는 사람입니다. 대회만 나갈 수 없어요. 저희가 국내에서 주최하는 대회만 7개예요. 해외 대회 심사 위원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순위가 바뀌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순위 집착도 없고요.”

형 스킴: “저희가 1위를 하기 시작한 건 2013년부터인데, 그 이후 두 번 순위에서 자진 하차했어요. 윙은 두 번이나 포인트를 삭제하고도 세계 2위입니다. 한 번 세계 1위가 되고 나니 알게 모르게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다른 활동은 안 하고 계속 대회만 나가게 돼요. 그래서 두 번이나 빼달라고 했는데, 이젠 그쪽에서 화를 내더라고요. 자기들이 공정하게 세계 순위를 책정하는데, 순위에 오르기 싫으면 대회를 나가지 말라고요(웃음).”

―진조크루뿐 아니라 다른 한국 팀들도 세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어요.

형 스킴: “우리나라 사람들이 뭘 해도 좀 지독하게 하는 게 있는 거 같아요. ‘뭘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저희가 비보잉을 시작할 때는 인터넷도 없었고, 겨우 비디오테이프 구해서 춤 연습하고 그랬어요.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멘털도 좋고, 뭘 하나 하면 끝까지 하는 거 같아요.”

―진조크루 공연을 보면 한국 전통 음악을 사용하는 등 한국적인 콘셉트가 많은 것 같던데요.

동생 윙: “비보잉이 미국에서 시작된 문화니깐 의도적으로 한국적인 면을 강조하려고 해요. 한국식 비보잉이랄까. 춤추기 좋은 한국 음악이 되게 많아요. 국악 중에서 드럼 비트 들어간 것도 많고. 한 번은 인터넷에서 이경섭 선생님의 ‘타(打)’라는 음악을 듣게 됐어요. 아주 마음에 들어 직접 연락을 드려서 ‘선생님, 저희가 이번에 세계 대회에 나가게 됐는데 선생님 음악으로 공연해도 될까요?’라고 여쭤봤더니, 매우 기뻐하시며 원본을 보내주시더라고요. 그 음악으로 대회 나가서 우승했죠.”

―안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요?

형 스킴 : “대중성. 지금 춤을 20년째 추고 있는데요. 전문성을 갖춰 우승하는 것도 좋고 올림픽 금메달을 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많은 사람이 이걸 보고 즐겁고 재미있어야 하잖아요. 우리끼리만 이해하고, 우리끼리만 알고, 우리끼리만 볼 수 있다면, 이건 우리 문화로만 끝날 테니깐요.”

―30대 현역입니다. 체력의 한계를 느끼진 않나요?

형 스킴 : 어느덧 30대가 익숙해졌어요. 나이 때문에 체력의 한계를 느낀 적은 없지만, 나이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많아졌어요. 몸 관리와 연습에 예전처럼 시간을 많이 쓸 수 없어 아쉽죠. 현재 진조크루 운영뿐 아니라 비보잉 공연을 기획하는 ‘수퍼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 대표이사도 함께 하고 있거든요.”

―당신 인생에서 춤은 무엇인가요.

형 스킴 : “저희 형제는 정말 사이가 좋거든요? 전 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전 가족도 춤으로 만났어요. 아내가 중학교 선생님인데, 제가 방과 후 학교 강의하다가 만나 결혼해 아이도 낳았지요. 제 아들도 연습실에 놀러 와 저희를 따라 하며 춤을 추고요. 춤이 제 인생을 만들었어요.”

동생 윙 :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열심히 하면 한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생각이 복잡하면 복잡한 대로. 춤은 제가 가진 모든 걸 가장 단순하고 솔직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무슨 일을 할 때면 늘 ‘춤추는 것처럼 하자’고 생각해요. 그럼 순리대로 다 잘 풀리더라고요.”

[이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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