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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금발의 오토바이族, 얼굴에 스프레이 뿌리고 핸드백 확 낚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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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아차'하면 당한다… 해외여행 별별 도난

조선일보

일러스트= 안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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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털렸어? 나도 털렸는데." 당하기 전까지는 귓등으로 들었던 남의 일, 당하고 나면 주변에 온통 동지들이다.

해외여행 3000만(한 해 출국자 연인원 기준) 시대. 뒤집어 말하면 해외여행에서 도난당하는 사람 수도 그만큼 많아졌다. '아무튼, 주말'이 외교부에 문의한 결과, 재외공관에 접수된 여행객 도난 건수는 2016년 2271건에서 2018년 3251건으로 43%가량 증가했다. 올 들어 7월 말 현재 누적 건수는 2532건. 역대 최다가 될 전망이다.

외부 상황도 좋지 않다. 여행 업계에선 "2007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관광객 대상 절도가 확 늘었다가 최근 난민 유입이 늘면서 최악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알아서 제 몸을 지키는 수밖에. 해외여행을 앞둔 이들을 위해 별별 도난 사례와 예방 요령을 모았다.

렌터카 여행 급증, 차량 털이 늘어

얼마 전 아내와 스페인으로 자동차 여행을 한 A씨. 휴게소에 들렀다가 나오는데 오토바이 탄 현지인이 창문을 두드리며 뒷타이어에 바람이 빠진 것 같다고 했다. 당황한 A씨는 갓길에 주차하고 아내와 차에서 내렸다. 오토바이 남자는 트렁크를 열고 스페어 타이어 꺼내는 걸 도와주겠다고 했다. 잠시 뒤 운전석으로 돌아온 A씨. 눈앞이 새까매졌다. 가방이 몽땅 사라진 것. 오토바이 사내가 A씨의 시선을 따돌린 사이 조를 이룬 일당이 훔쳐간 거였다.

이달 초 렌터카로 남프랑스를 여행했던 B씨는 관광지 바로 앞 길가에 잠시 주차를 했다가 낭패를 봤다. 대낮에 뒷 좌석 창문이 박살 나 있고 여권, 카드, 현금을 둔 소지품 가방이 사라졌다. 스프링 줄로 연결해 몸에 차고 다닌 휴대폰만 간신히 건졌다. B씨는 국경 넘어 이탈리아 밀라노의 우리 영사관에 가서 단수 여권을 받았다. 거리상 차로 9~10시간 걸리는 파리보다 4시간 걸리는 밀라노가 가까웠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국경을 넘다가 여권 체크를 하면 어쩌나 가슴을 졸였지만 국경 검문소가 없어 무사 통과했다. 한 렌트 여행 전문가는 "솅겐조약으로 인해 중·서 유럽과 체코, 헝가리 정도의 동유럽 국가는 거의 여권 검색 없이 국경 통과가 가능하다"면서도 "테러나 도주범, 난민 문제가 생기면 임시 검문을 해 늘 가능한 방법은 아니다"고 했다.

렌터카 여행이 급증하면서 차량털이를 겪는 여행객이 늘고 있다. 해외 렌터카 예약 전문 업체 '여행과 지도' 이화득 대표는 "3~4년 새 자동차 해외여행이 2배 이상 늘어 올해는 유럽 자동차 여행 예약 대수가 1만5000대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렌터카 여행 1세대인 이 대표는 차량털이 방지법으로 "주차비 아끼지 말고 무조건 유료 주차장 이용하기, 차에서 내릴 땐 비닐봉지 하나 놔두지 말기, 캐리어끼리 체인으로 묶어 가져가기 어렵게 하기, 최대한 벽면에 바짝 붙여 후면 주차해 트렁크를 열 수 없게 할 것" 등을 꼽았다. 렌터카 여행족 사이에서 이탈리아 피렌체 '미켈란젤로 언덕', 프랑스 남부 레보드 프로방스 '빛의 채석장' 주변, 스위스 몽트뢰 시옹성 주차장 등은 상습 차량 도난 지역으로 악명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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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영원하다

방심은 선입견에서 온다. 26년 경력의 모두투어 여행 인솔자 나혜현씨는 "호텔은 안전할 거라 생각하고 방심하는데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호텔"이라고 했다. 체크인하는 사이 캐리어에 가방을 올려 뒀다가 좀도둑이 낚아채 가거나, 호텔 직원과 도둑이 짜고 객실 점검을 이유로 방에 들어와 물건을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나씨는 "방문 뒤에 의자와 트렁크를 두고 잔다"고 했다.

파리를 여행한 C씨 일행은 가죽 재킷에 금발 휘날리며 오토바이 몰고 지나가는 남성들을 보며 넋을 잃었다. "여긴 오토바이 탄 남자들도 다 모델이야." 몇 분 뒤 이들은 진짜 넋이 나갔다. 남자들이 이들 얼굴에 스프레이를 뿌린 것. 얼굴을 감싸고 있는 사이 '모델' 아니, '도 선생'들이 핸드백을 낚아채 사라졌다. 과거 아프리카·아랍계 이민자를 조심하라고 했지만 요즘은 동유럽 쪽에서 내려온 금발의 절도범도 많다.

익히 알려진 뻔한 수법도 막상 닥치면 속수무책. 지난해 스페인 마드리드를 여행한 D씨. 공원에서 일광욕하는데 옆 커플이 옷에 새똥이 묻었다며 닦아주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했지만 여자는 휴지를 꺼내 옷을 닦았다. 그사이 남자가 가방에서 아이패드를 빼갔다. 새똥이라던 끈끈한 액체는 머스터드였다. 이른바 '소스 테러'. 케첩, 마요네즈 등을 뿌린 뒤 닦아 주겠다고 접근하는 수법이다.

경찰은 당신 편이 아니다

현지 경찰을 믿었다가 낭패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13일 유럽 여행 전문 네이버 카페 '유랑'엔 해외에서 억울하게 경찰에게 연행됐다는 E씨의 사연이 올라와 공분을 샀다. 지난 8일 남부 유럽 한 도시에서 E씨와 친구에게 집시가 다가와 시비를 걸었다. 그냥 가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집시가 치한 퇴치용으로 보이는 스프레이를 E씨 일행에게 뿌렸다. 출동한 경찰은 오히려 E씨에게 인종 차별적 발언을 하며 신분증을 요구했고, 이들을 연행했다. E씨는 "경찰과 숙소로 가서 여권을 보여주고 풀려났지만 폭행, 욕설이 계속됐다. 심지어 경찰이 25만원 상당 현금과 물품 50만원어치를 가져갔다"고 하소연했다.

한 가이드는 "20년 넘게 일하면서 현지 경찰이 관광객 편을 드는 경우는 거의 못 봤다"며 "아무리 강도라고 해도 현지에서 세금 내는 자국민 편에 선다"고 했다. 그는 "소매치기를 현장에서 잡았을 때 소리는 질러도 되지만 밀치거나 때리면 일이 커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신속 해외 송금, 영사협력원 활용

한국 여권은 소매치기들에겐 구미 당기는 먹잇감. 최근 영국 컨설팅그룹인 '헨리 앤드 파트너스'가 발표한 '헨리 여권 지수'에 따르면 2019년 3분기 한국 여권의 파워는 총 109등급 중 2등급. 무비자로 입국 가능한 나라 수(187개국)가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전자여권이라 가져가도 소용없지 않으냐는 사람도 있는데 기술이 발전하면 위조 기술은 더 빨리 쫓아간다"며 "여전히 암시장에선 인기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여권을 분실하면 가까운 재외공관에 가서 사진 부착식 단수 여권을 받거나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외교부 여권과 통계에 따르면 작년 재외공관 사진 부착식 단수 여권 발급 건수는 8913건, 여행증명서 발급 건수는 9672건이었다. 단수 여권을 만들려면 여권용 사진 2장이 필요한데 대비용으로 가져간 사진을 지갑이나 여권 커버에 꽂아뒀다가 함께 잃어버리는 사람이 많다. 사진은 꼭 따로 보관해야 한다.

외교부에서 만든 앱 '해외안전여행 국민외교'도 꽤 유용하다. '내 위치 공관 찾기'를 누르면 가까운 공관이 검색된다. 강형식 외교부 해외안전관리기획관은 '신속해외송금'과 '영사협력원 제도' 등을 알짜 제도로 꼽았다. 신속해외송금은 도난으로 빈털터리가 된 여행자에게 1인당 최고 3000달러까지 재외공관에서 지원해주는 제도. 재외공관에 긴급 경비 지원 신청을 한 뒤 국내에 있는 연고자가 외교부에서 알려준 계좌로 입금하면 공관에서 돈을 준다. 영사협력원은 현지 교민이 사고를 겪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제도. 전 세계에 160여명의 영사협력원이 있다. 영사콜센터(+82-2-3210-0404)로 걸어 문의하면 된다. 긴급 상황에서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도 콜센터에 전화하면 된다. 24시간 영어, 프랑스어 등 7개 언어 통역 서비스를 제공한다.

나혜현씨는 "소매치기가 날로 극성을 부리니 1990년대에 인기였던 복대를 차는 사람, 속옷에 핀으로 지폐를 꽂는 사람 등 '쌍팔년대식' 대비법이 돌아왔다"고 했다. 렌터카털이를 당한 B씨는 "탈탈 털리고 보니 바지 주머니 안에 호주머니 하나를 덧대 여권, 카드 한장, 비상금을 얇게 접어 넣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때론 구식이 힘을 발휘한다.

[김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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