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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동 트자마자 혹은 마음 내킬 때만… 巨匠의 글쓰기엔 정답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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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하루키·파무크… 유명 문장가 303명 인터뷰

독서량·작법·性愛 묘사 등 각양각색으로 답변 쏟아내 "글쓰는 방법은 하나가 아냐"

조선일보

작가라서

파리 리뷰 엮음김율희 옮김|다른
616쪽|2만6500원


글쓰기에 '정석(定石)'이 있을까? 수많은 작가 지망생이 궁금해하는 질문에 이 책은 부드럽게 "아닐걸?"이라 답한다. 1953년 뉴욕서 창간돼 '작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문학잡지'로 불리는 '파리 리뷰' 1~224호에 60여년간 실린 작가 인터뷰 중 '작가란 어떻게 탄생하고,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유지되는가'에 대한 질문 34개에 대한 919개의 답을 엮었다. 헤밍웨이, 하루키, 포크너, 토니 모리슨 등 303명의 문장가가 답했다.

먼저 '다독(多讀)'과 글쓰기 실력의 상관관계부터. 많이 읽는 사람이 훌륭한 작가가 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매일 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한 권씩 읽었다"는 보르헤스나 "상표나 요리법, 광고 등 뭐든 읽어댔다"는 트루먼 커포티의 답변은 대중에 각인된 '다독가로서의 작가'의 이미지를 충족시킨다. 그러나 '샬롯의 거미줄'로 잘 알려진 동화작가 엘윈 브룩스 화이트는 "사실 살면서 책을 끝까지 읽은 적이 없다"고 털어놓는다. "독서가 아니어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커트 보니것 역시 "서른다섯이 되어서야 윌리엄 블레이크에 열광했고, 마흔이 되어서야 '보바리 부인'을 읽었다"며 "독서 토론은 절망적일 만큼 서투르다"고 말한다.

글쓰기 습관도 제각각이다. 출퇴근하듯 꼬박꼬박 쓰는 '회사원형 작가'가 있는 반면, 내켜야 글을 쓰는 '보헤미안형 작가'도 있다. 헤밍웨이와 하루키는 '회사원형 작가'의 대표격. "어떻게 글을 쓰십니까?"라는 질문에 헤밍웨이는 "매일 아침 가능하면 동이 트자마자 글을 쓴다"고 답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대여섯 시간 동안 일하고 밤 9시에는 잠자리에 든다"는 하루키는 "장편소설을 쓰는 것은 생존 훈련과 비슷하다. 정신력과 체력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반면 엘윈 브룩스 화이트는 "미루기는 작가의 본능이다. 몸을 실을 파도가 밀려오기를 기다린다"고 말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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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법에 대한 의견도 다양하다. 하루키는 "아무 계획 없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릴 뿐"이라고 하지만 캐서린 앤 포터는 "이야기의 결말을 모른다면 글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늘 마지막 문장들, 마지막 문단을 먼저 쓰고 처음으로 돌아가 그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고 한다. 헉슬리처럼 "플롯을 짤 때 몹시 애먹는다"는 작가가 있는 반면, "플롯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 직관, 이해, 꿈, 개념으로 쓴다"는 존 치버 같은 작가도 있다.

섹스 장면 묘사는 많은 작가에게 부담이다. 최근 작고한 토니 모리슨은 "섹스는 쓰기 어려운 소재인데, 글로 쓰면 충분히 섹시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섹스에 대해 쓰는 유일한 방법은 간단하게 쓰는 거다. 독자가 자신의 성적 취향을 투영하게 하는 것"이라 말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 영화로도 만들어진 '시계태엽 오렌지'를 쓴 앤서니 버지스는 "성적인 부분을 자세히 묘사하기 싫은 이유는 자신의 경험을 묘사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사생활을 지키고 싶다"고 했다. '북회귀선'의 헨리 밀러는 다르다. "나는 만족스럽고 풍요로운 성생활을 누려왔는데, 그 부분을 왜 빼야 하는지 모르겠다."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작가가 동의한다. 노벨상 수상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첫 문단이 굉장히 어렵다. 쓰는 데 몇 달이 걸린다"고 푸념한다. '작가의 벽(writer's block)'을 경험해본 적 있느냐는 질문에 2006년 수상자 오르한 파무크는 답한다. "지난 30년 동안 소설을 써 왔으니 실력이 좀 늘었다고 봐야겠지. 하지만 아직도, 결코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막다른 길에 이를 때가 있다."

중구난방으로 쏟아지는 거장들 답변을 읽다 보면 이상하게도 위안을 받게 된다. 왕도를 찾기보다는 '나만의 글쓰기'를 자신 있게 해 나가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책을 편집한 니콜 러딕도 말한다. "이 책이 매우 다양한 생각을 담은 탓에 이상적인 작가에 대한 개념을 잡기 어렵다고 느낄 수도 있다.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작가들과의 인터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점이 있다면, 글을 쓰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주제에 접근하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며, 작품을 만들고 상상하는 방법도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곽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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