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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기자수첩] '우물 안 돈벌이'에 안주하는 남자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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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양지혜 스포츠부 기자


연봉은 '월드 클래스'인데 리그 실력은 하위권. 국내 남자 프로배구의 현주소다. 한국(세계 랭킹 24위)은 2020 도쿄올림픽 티켓을 사실상 놓쳤다. 지난 9~12일 네덜란드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대륙 간 예선 B그룹에서 미국(2위), 벨기에(12위), 네덜란드(15위)에 내리 졌다. 한국은 내년 1월 이란(8위), 호주(16위), 중국(20위)과 본선 티켓 1장을 두고 싸운다. 세계 11위 일본은 올림픽 개최국 자격으로 이미 출전권을 확보했다.

한국 남자 배구는 2000 시드니올림픽을 끝으로 올림픽 무대에서 멀어졌다. 국내 리그에선 각 팀들이 외국인 선수에게 공격을 맡기는 '몰빵 배구'를 한다. 우리 공격수 명맥은 끊어져 간다. 1985년생 박철우가 여전히 대표팀 주전 공격수다. 외국은 20대 세터가 중심인데, 한국은 한선수(34) 등 30대 위주다. 평소 국내에서 외국인 공격수를 막는 데만 신경 쓰다 보니 국가대항전에선 상대의 다양한 플레이에 우왕좌왕한다. 세계는 '킬 서브'로 상대 수비를 흔들고 전원이 공격에 가담하는 토털 배구를 한다. 한국은 서브가 약하고, 공격과 수비를 분담하는 구식 배구에 머물러 있다.

그러면서도 돈은 외국의 어느 리그 부럽지 않은 수준으로 받는다. 대한항공·현대캐피탈 등의 에이스급은 공개된 연봉만 5억~6억원, 각종 수당 등을 합치면 10억원 안팎을 쥔다. 현재 세계 최고 공격수로 꼽히는 윌프레드 레온(26·쿠바)이 이탈리아 리그에서 150만달러(약 18억원) 이상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선수들은 국내 무대에 안주하느라 해외 진출 생각이 없다. 국제 대회에서 잘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야나기다 마사히로(27)는 키(186㎝)가 작은 편인데, 특기인 서브를 앞세워 독일에 진출한 데 이어 이번 시즌은 폴란드 리그에서 뛴다. 이시카와 유키(24·192㎝)도 이탈리아에 진출했다. 여자 배구가 '월드 스타' 김연경에 힘입어 국제 대회에서 선전하는 것처럼 해외파 선수는 대표팀의 실력 향상에 큰 역할을 한다.

하지만 남자 선수들은 병역 특례 혜택이 걸린 아시안게임 말고는 태극 문양 달기를 꺼린다. 국가대표 사령탑도 프로팀으로 옮겨갈 기회만 노린다.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전임으로 계약했던 김호철 전 감독은 지난 4월 프로행을 타진하다 비난 여론이 일자 물러났다. 앞서 박기원 감독도 3년 전 대표팀에서 대한항공으로 옮겨갔다.

선수와 지도자들이 국제 경쟁력을 키우는 데 신경 쓰지 않고 '우물 안 돈벌이'에 급급하다간 언제 팬들의 마음을 놓칠지 모른다.

[양지혜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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