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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4 (화)

"백남준·박서보…한국 미술시장은 매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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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세계 톱 경매사인 소더비 시가감정평가사로 활약하는 앤-마리 리처드는 "유년 시절을 19세기에서 보낸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최근 서울 동교동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컬렉터 집안에서 태어나 19세기 프랑스 근대미술과 캐나다 조각 작품들에 둘러싸여 성장했다. 내 삶이 자연스레 미술품 시가감정평가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세상에 눈을 뜨자마자 미술품을 보면서 키운 안목을 토대로 미국 파슨스디자인대학교와 스미스소니언 쿠퍼-휴잇 내셔널 디자인 뮤지엄 석사 과정을 거쳐 영국 소더비 런던을 우등졸업했으며 순수·장식미술 전문가, 큐레이터, 미술사학자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현재는 경매사와 감정평가사를 양성하는 뉴욕 소더비 인스티튜트(Sotheby's Institute of Art) 디렉터를 맡고 있다.

미술시장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그의 예상을 빗나가는 경매 결과가 종종 있다. 1000억원대를 넘긴 데이비드 호크니 그림 '예술가의 초상'(1019억원), 제프 쿤스 조각 '토끼'(1085억원), 미국 낙서 화가 장 미셀 바스키아의 '무제'(1247억원) 등은 추정가를 훨씬 웃도는 낙찰가를 기록했다.

리처드 디렉터는 "응찰자 2명이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열정 비딩(Bidding)'으로 가격이 치솟을 때가 있다. 경매는 누구도 결과를 예측 못 하는 게임 같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세계 미술시장 트렌드로 '라이프스타일'을 꼽았다. 지난달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나이키 운동화 '와플 레이싱 플랫 문 슈'가 예상가 2배를 훌쩍 넘긴 5억1625만원에 낙찰돼 화제가 됐다. 나이키 공동창업자인 빌 바워먼이 아내의 와플기계를 이용해 만든 와플 무늬 밑창이 달린 러닝화로, 1972년 뮌헨올림픽 예선전에 나가는 육상선수들을 위해 12켤레 한정판으로 제작됐다.

리처드 디렉터는 "여전히 인상파와 현대미술 걸작이 강세이지만 점점 더 우리 생활과 관련된 디자인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매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를 묻자 그는 "감정"이라고 답했다. "모딜리아니나 모네 등의 작품이 경매 최고가를 기록하면 모사(模寫)작품이 쏟아진다. 2017년 여름 이탈리아 제노아에서 열린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특별전'에 걸린 그림 21점 중에서 20점이 위작으로 밝혀졌다. 작품의 출처와 소장 이력, 작가 재단 서류, 감정서 등을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소더비는 미술품 시가감정평가 기준인 USPAP(Uniform Standards of Professional Appraisal Practice)를 적용해 감정 보고서를 작성한다. 작가 생애와 전시 이력 등을 자세히 보고서에 써야 한다. 최근 한국에선 학력, 전시이력, 언론 노출 빈도 등을 점수로 반영한 미술품 시가감정평가 모형이 논란이 된 바 있다. 이에 대해 리처드 디렉터는 "그 평가 모델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미술 시가감정에 수학적 공식을 대입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 소더비 인스티튜트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시가감정 심화교육과정 강의를 위해 내한했다. 지난 15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과 이화여대 등에서 '미술시장 분석과 가치평가 비교분석' '미술품 소장이력 조사' 등을 강의한다.

전문가의 눈에 비친 한국 미술시장은 어떨까. "최근 5~6년간 서구 블루칩 갤러리들이 한국 미술에 주목하고 있다. 가고시안 갤러리 전속 작가가 된 백남준은 10월 런던 테이트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앞두고 있고 김환기,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양혜규, 이불 등의 경매 기록은 꾸준히 좋아지고 있으며 매혹적이다. 최근 런던 프리즈 아트페어에서는 한국 미술 섹션도 있었으며, 단색화 열풍이 주춤하지만 시들 것 같지는 않다."

[전지현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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