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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노동자 산재 사고 위험, 하청이 원청보다 8.9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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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험 저임금’ 부른 발전사 하청구조

직접노무비 절반 떼고 지급, 인건비 ‘이중착복 의심’ 정황

현장서 ‘사고 위험’ 제기하면 책임 가리려 절차만 더 늘어나

“직접고용이 해결의 출발점”

경향신문

발전사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재 원인으로 지목된 외주화와 원·하청 구조는 2002년 정부가 발전정비 분야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본격화됐다. 정부는 2013년까지 발전부문 외주화를 지속 추진하며 “시장의 효율성 및 안전성 제고가 가능한 최적의 경쟁 도입”임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특조위)는 19일 발전사 외주화가 효율성도, 안전성도 담보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는 잦은 이직으로 이어져 협력사의 기술축적을 어렵게 했고, 원·하청 구조에서 비롯된 소통 단절은 현장의 위험 외주화를 고착시켰다.

■ 김용균 시름 때 협력사 배 불렸다

특조위 조사 결과, 발전 5사와 그 협력사 근무 노동자들은 소속 회사에 따라 천차만별의 월급을 받았다. 발전사 정규직 노동자가 받는 임금이 100이라면, 한전 계열사인 한전KPS의 경상정비 노동자는 77을 받는다. 민간 협력사의 경상정비 노동자는 64를 받고, 민간 협력사의 연료운전 노동자는 53을 받으며, 2차 협력사는 31을 받는다.

정부가 협력사 노동자들의 몫으로 책정해 업체에 지급한 직접노무비 수준은 결코 낮지 않았다. 정비 분야의 경우 노동자의 숙련도가 업체의 기술력을 좌우하기에, 민간 경쟁력 향상을 목표로 한 정부는 원활한 인력수급을 담보해낼 수 있는 수준의 직접노무비를 책정했다.

하지만 협력사 노동자에게 실제 지급된 인건비는 직접노무비의 절반가량에 불과했다. 특조위가 5개 협력사의 건강보험·국민연금 납입액으로 실지급액을 추정한 결과 5개 협력사는 발전사로부터 받은 노무비의 38.9~52.2%가량을 노동자에게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협력사들은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경상정비와 별도로 정기적인 계획정비 계약을 발전사와 추가로 맺는데, 계획정비 노무비는 실인건비 지급률이 3~25%에 그쳤다. 특조위는 “협력사가 경상정비와 계획정비 인건비를 이중착복하는 것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그사이 협력사는 높은 수익을 올렸다. 보유한 토지·건물·설비 등의 가치를 의미하는 유형자산 가액비율이 10% 안팎에 불과해 사실상 인력이 재산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정비회사 7곳은 지난해 9.1~19.5%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 외주화는 어떻게 위험을 낳았나

발전사에서 2014~2018년 5년간 일하다 다치거나 죽은 사람 수는 371명이다. 재해자는 원청 소속이 26명이었고 하청 협력사 소속이 345명이었다. 사망자 21명은 모두 하청 소속이었다. 자회사 노동자는 원청 노동자보다 작업 중 사고를 당하거나 중독될 확률이 7.1배 높았다. 하역업체와 협력사 노동자는 원청 노동자 대비 각각 8.1배와 8.9배 수준이었다.

특조위가 작업 중 사고로 손상을 입을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분석한 결과, 추락·전도·충돌 위험 등 ‘불안전한 작업환경’이 0.278로 가장 높았고, ‘원·하청 여부’가 0.208로 바로 다음 자리를 차지했다. 이는 안전수칙 미준수 등 ‘불안전 행동’(0.036)보다 앞선 것이다.

특조위는 그 이유로 원·하청 간 벽이 높은 데 따른 ‘소통의 단절’을 꼽았다. 사고 위험을 현장에서 문제제기해도 이는 하청 관리자를 거쳐 원청에 도달한 후 다시 원청의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역순으로 현장에 내려온다. 그러다 보니 위험 요소를 제거하려는 시도는 유야무야되거나 적기를 놓친다.

하청업체의 복잡한 업무분장도 문제다. 태안화력발전소의 5~8호기 설비 정비에만 6개 협력사가 투입돼 있다. 책임소재를 구분하려는 절차만 강화됐다. 예컨대 2016년 당진화력발전소의 중대재해 사고 발생 이후 원·하청의 위험성평가 절차가 4단계에서 26단계로 늘었다. 현장 노동자들에겐 안전조치가 아니라 통제장치만 추가된 셈이다.

불법파견 논란을 회피하기 위한 원청의 소극적 대응은 또 다른 원인이다.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업무였던 연료환경 설비운전 업무는 공장의 라인을 따라 진행되는 ‘연속공정’으로 원청 개입이 불가피한 환경임에도 외주화로 분절됐다.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관리자의 직접 지시나 지휘·감독은 불법파견에 해당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원청은 하청 상황실을 통해 현장 노동자와 간접적으로 소통하는 데 그치고 있다.

특조위는 “결과적으로 발전소 운영상 반드시 필요하고 노동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지시조차도 불명확하게 되거나 소극적으로 하게 됨으로써 사고 위험성을 높이게 된다”며 “통합운영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효상·정대연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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