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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강성민의명저큐레이션] 누가 ‘한국의 子産’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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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정나라 다스린 명재상 자산 / 강대국 틈바구니 속 ‘완벽한 외교’ 실천

세계일보

“자산(子産)은 초(楚)나라보다 진(晉)나라를 더욱 강경하게 대하면서 성공을 거두었고, 많은 이익을 얻었다. 진나라가 초나라에 비해 도리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탕누어의 ‘역사, 눈앞의 현실’ 53쪽)

춘추시대 정(鄭)나라는 조(曹)나라, 채(蔡)나라 처럼 아주 작은 나라는 아니었지만 초(楚)나라, 제(齊)나라에 비하면 작은 나라였다. 노(魯)나라, 위(衛)나라, 송(宋)나라와 비슷했다. 정나라는 노나라와 근본 처지가 비슷했지만 정나라의 운명이 훨씬 불행했다.

그 원인은 지리적 위치 때문이었다. 노나라는 먼 동쪽에 숨어 있었다. 이에 그들이 늘 대응한 나라는 진정한 강국으로 성장했다고 할 수 없는 제나라뿐이었다. 반면 정나라는 사방이 전쟁터로 노출된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다. 강력한 진나라와 계속 북상하던 강력한 초나라가 정나라 땅에서 줄곧 전투를 벌였다. 자신의 땅이 다른 나라의 전쟁터가 되자 정나라는 본래의 조용한 일부 공간조차 거의 모두 잃게 됐고,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는 자국의 모든 목표는 너무나 멀고 사치스러운 것으로 변했다.

명재상 자산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은 바로 그 시기다. 자산이 등장한 이후 정나라는 ‘세발 달린 솥’(鼎)처럼 안정을 찾았다. 자산이 집권했을 때 정나라 백성은 “누가 나를 위해 자산을 재상으로 만들어 줬나. 내 모든 토지와 옷을 그에게 줬네”라고 한탄했다. 그런데 그가 다스린 지 3년이 되자 바뀌었다. “내게 어린아이가 있는데 자산이 예의를 가르치네. 내게 논밭이 있는데 자산이 재산을 늘려주네.”

대만의 문화비평가 탕누어의 ‘역사, 눈앞의 현실’은 공자가 집필한 역사서 ‘춘추(春秋)’에 대한 주석서인 ‘좌전(左傳)’을 현대 시각에 맞게 재해석한 에세이다. ‘춘추’는 기본적으로 노나라 역사를 담고 있다. 그래서 노나라 왕의 연표를 따라 그 시대의 일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누구일까. 노나라의 위대한 집정관이었던 계문자(季文子)도 아니고, 노나라 옆에서 제나라를 패권국으로 만든 관중(管仲)도 아니다. ‘춘추’를 지배하는 단 한 명의 주인공은 자산이다.

왜 그럴까. 자산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권력으로 다스리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권력이 없는 자가 존엄을 지키고 살아남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200년이 넘게 생존한다는 건 더더욱 말이다. 그런데 자산은 완벽한 외교적 실천이성으로 불가능한 일을 완수해냈다.

저자는 자산이 ‘냉철’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힘의 작용을 너무도 정확히 ‘계산’할 줄 알았다고 평가한다. 자산으로 인해 회맹(會盟·제후들이 회합해 맹약하는 의식)에 불려간 왕이 체면을 구기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자산은 세금을 올렸고 대국의 군주에게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매일 생각했고 매일 이겼다. 피곤한 삶이었다. 그래서 공자는 관중도 좋아했지만 자산을 더 좋아했으며, 나아가 자산을 사랑했다. 부드러운 관용의 실천이 만들어낸 인간적 공간이 그를 매료시켰기 때문이다.

정나라 상황이 우리와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한국은 이제 작은 나라는 아니다. 그렇다고 큰 나라에 비할 바는 더욱 아니다. 하지만 사방이 적이다. 누가 한국의 자산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인물이 나올 수는 없을 것인가. 안타까운 희망을 품어본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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