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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기자가만난세상] 금융 몰라 범죄자 되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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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했지. 이상하다는 낌새를 알아채고는 내가 먼저 농협에 신고를 했는데도 공범이 돼 버렸어. 용돈이라도 벌어보고자 시작한 일이었는데….”

세계일보

이희진 경제부 기자


지난 3월 어느 날, 김모(60)씨는 보이스피싱 일당의 범죄를 도운 혐의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대문경찰서에 출석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말 주차장 관리직에서 정리해고된 후 용돈벌이를 찾고 있던 그에게 온 한 통의 문자. 문자에는 수수료 2~3%를 제공하는 고수익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보이스피싱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없었던 김씨는 문자를 철석같이 믿었다. 그날부터 그는 보이스피싱 일당의 말에 홀딱 속아 수차례에 걸쳐 자신의 농협 계좌로 들어온 건당 수백만원에 달하는 돈을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전달했다. 몇 번을 시키는 대로 했지만 수수료가 지급되지 않자 김씨는 그제야 수상함을 알아채고 농협에 이를 알렸다. 이후 김씨 계좌는 사기이용 계좌로 묶여 입출금이 정지됐다. 그는 경찰 조사를 거쳐 사기방조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김씨와 같이 보이스피싱 일당에 속아 인출책·송금책으로 이용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보이스피싱인 줄 모르고 가담했다고 하더라도 피해규모가 커지면 공범으로 입건될 확률이 높다는 데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엔 3만4132건이 발생해 2016년(1만7040건)에 비해 약 100% 증가했다.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가 늘면서 인출책·송금책으로 검거된 피의자 수도 덩달아 늘었다. 지난해 인출책·송금책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4603명으로 2016년(1670명) 대비 175% 많아졌다.

검거된 인출책·송금책 인원 중 대부분은 애초에 범죄를 위해 조직적으로 가담한 인원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공범이 된 김씨와 같은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

제2의 김씨를 막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건 금융교육이다. 금융교육은 금융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쌓아 금융생활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행위다. 현재 우리나라는 금융감독원, 금융권 협회 등 민간기관을 통해 금융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금융교육의 양은 몇 년 새 눈에 띄게 증가했지만 교육의 질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보이스피싱 등 불법 금융에 대한 인식이 생각보다 개선되지 않고 있는 등 효율적인 교육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대학생 대상 보이스피싱 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고수익 아르바이트라고 속아서 현금을 단순히 인출·전달한 경우에는 실형을 받지 않는다’고 답한 대학생이 16.7%였다. 해당 설문조사가 금융교육 수강생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일반 시민의 금융범죄 인식도는 더욱 낮을 것임이 자명하다.

금융당국은 금융교육을 개선하고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12월 발전된 금융교육 종합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종합방안에 보이스피싱 등 불법금융에 대한 인식 개선, 예방책 등이 심도 있게 포함돼 있길 바란다. 그래야 김씨와 같은 억울한 공범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걸 최소화할 수 있을 테니.

이희진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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