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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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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빈

붉게 벌어지는 저 입을 악어라고 부르는 순간

석류는 비로소 석류라는 이름에서 벗어난다

빤질한 아가리가 되려고

내 안에 자라는 늪을 향해

밤이면 달빛을 베어 먹는 악어

목구멍을 조여와 달빛이 일렁거려

토해지는 이빨들은 냄새나는 주검처럼 박힌 못들

어떻게 살아 펄떡이는

말들이 되나

둥근 감촉 알알이 맺힌

핏빛 惡, 惡, 語들

턱관절을 벙긋할 때 잇몸이 으악

세상의 질서란 똑같은 발성으로 일제히 따라하는 으악

석류라고 쓰고 석양이라고 읽을 수도 있다

석유 냄새 미끄러질 때

날개는 돋치고 의미는 규정하지 않는다

더러 죽고 더러 깃털 흩어지지만

악어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악어들이 덤벼든다 으아악

세계일보

석류 껍질이 터져 핏빛 열매들이 쏟아져 나온다.

붉게 벌어지는 그 입을 악어라고 부르는 순간,

핏빛 열매 대신 핏빛 惡語들이 쏟아져 나온다.

둥근 감촉 알알이 맺힌 나쁜 말들은 날개를 달고 천 리를 간다.

붉은 보석 같은 惡語는 새콤달콤하고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무조건 좋아한다.

그런데 우리는 악어인 줄 모르고 그 말들을 이리저리 토해낸다.

이빨에 박힌 냄새나는 주검 같은 말이 옮겨지면서 더러는 죽고 더러는 깃털처럼 흩어지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사실이라고 믿는다.

석류라고 말했는데 석양이라고 전해지는 것처럼 악어는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이 밝혀져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지금은 온갖 소문이 날아다니는 정보화시대이다.

유언비어를 판단하는 힘이 필요한 때이다.

박미산 시인, 그림=원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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