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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조국 딸 아니면 논문 저자 됐겠나"···부모들 '학종=금수저전형'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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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지난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적선동 현대적선빌딩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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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으로서 대학 연구에 참여해 논문 공저자가 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에 대한 논란은 2000년대 후반 촉발된 대입 제도 개편과 관련 깊다. 당시는 ‘입학사정관제도(현 학생부종합전형)’의 도입으로 수험생·학부모의 ‘스펙 쌓기’ 경쟁이 본격화되던 시기다. 조 후보자처럼 고교생이 학술 논문의 공저자가 되는 일이 늘면서 부작용이 커지자 학생부종합전형 등을 ‘금수저 전형’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조 후보자의 딸은 2010학년도 대입을 통해 대학에 진학했다. 당시는 이명박 정부가 2007년 도입한 입학사정관제도가 확대되던 시기다. 교과 성적뿐 아니라 다양한 활동을 학생 선발에 반영해 미국대학처럼 객관식 시험으로 학생을 줄 세우지 않고 다양한 가능성을 보고 뽑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대학·학부모에게 생소했던 새 대입제도는 상위권 수험생과 학부모로 하여금 ‘스펙 경쟁’에 매달리게 만들었다. 일부 학생들은 성인 수준의 자격증이나 특허, 각종 경시대회 입상 경력, 해외 봉사 경험 등을 갖추려 노력했다. 임진택 경희대 입학사정관은 “당시는 입학사정관제 모집인원이 전체 대학 모집정원의 2%에 불과하던 시기”라며 “특별한 제한 없이 학교 밖 수상 경력 등을 반영했기 때라 외부 경험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대학교수, 전문 연구원의 연구 프로그램에 참여해 논문의 공동저자가 되는 것 역시 학생·학부모가 관심을 끄는 ‘스펙’ 이 된 것도 이 무렵이다. 입시업체 종로학원하늘교육의 임성호 대표는 “당시엔 대학들이 학생이 논문 연구에 참여하는 것에 가점을 줄 수 있었고 정부도 이를 막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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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자녀가 2010년 졸업한 서울 강동구 한영외국어고등학교(한영외고) 전경.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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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후보자의 딸이 재학했던 한영외고의 유학반은 이런 상황 변화에 유리했다. 한영외고에 근무했던 한 교사는 “민사고·대원외고 등 다른 학교처럼 유학반 학생들은 대학·연구소 인턴 경험을 중시했다. 미국 수학능력시험(SAT) 대비와 마찬가지로 해외대 진학에 필수라고 여겼기 때문에 학생들의 참여도 활발했다”고 전했다. 그는 “마침 입학사정관제 도입에 따라 국내 대학도 외국어와 외부 실적을 중시하는 전형을 내놓았는데 해외대학을 준비하던 유학반 학생도 꽤 지원했다”고 전했다. 당시 학교에서 제공한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는 조 후보자 측의 해명에 대해 학교 관계자는 “공문 보존 기간(5년)이 지난 상태라 학교의 공식 프로그램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답했다.

2010년대 전후로 입시에 민감한 특목고·자사고는 재학생에게 대학 연구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대학-고교 연계 프로그램을 늘렸다. 반면 이런 프로그램이 없는 학교의 학생·부모는 대학교수나 연구원인 가족, 지인의 도움으로 연구 참여 기회를 얻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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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은 과열된 분위기 속에 교수 부모가 연구에 기여하지 않거나, 기여도가 낮은 자녀·친척을 논문의 공동 저자로 올렸다는 소문도 이어졌다. 이는 최근 교육부의 조사에서 사실로 밝혀졌다. 지난 5월 교육부가 발표한 ‘미성년자 공저자 논문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07년부터 10여년간 전국 53개 대학교수 102명이 논문 160편에 자기 자녀를 공동 저자로 올렸다. 이중 서울대·포스텍·가톨릭대 등 7개 대학교수 9명은 연구에 제대로 기여하지 않은 자녀를 공저자로 올리는 ‘연구 부정행위’로 확인됐다. 이와 별도로 자녀 외에 미성년자를 논문 공저자로 올린 경우도 389건 발견됐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교육부는 2014년부터 외부 논문을 학생부에 기록하는 것을 금지했고, 대입 자기소개서에도 쓸 수 없게 했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부 종합전형을 비판하는 이들에겐 '금수저 전형'으로 비판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이종배 공정사회를위한국민모임 대표는 “조모씨가 교수의 딸이 아니었어도 의대교수들과 함께 어울려 영어논문을 쓰고 1저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을지 의심스럽다”며 “이번 일로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대표되는 수시전형이 부모의 도움 없이는 스펙을 쌓기 어려운 ‘금수저 전형’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고 비판했다.

천인성·전민희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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