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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북 막말담화 ‘악습의 귀환’…남북 ‘안보 딜레마’ 넘어 신뢰복원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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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남북관계 어디로

남북 평화궤도 이탈 막으려면 힘 아닌 상호 이해 필요

북 도 넘은 막말담화 배경엔

북미 협상도, 남북경협도 진전 없자

답답함과 불만 커질 대로 커져

한미 훈련-북 시험발사 맞물리며

무한 군비경쟁 늪에 빠질 우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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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공화국을 선제공격하기 위한 침략전쟁 불장난”(<노동신문> 20일치 6면)이라 비난해온 한-미 연합군사연습이 20일 끝났다. 미뤄져온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되고 꽉 막힌 남북관계에도 숨통이 트이리라는 기대 섞인 전망이 많다.

하지만 북-미 실무협상 재개는 몰라도, 남북관계가 다시 궤도에 오르려면 넘어야 할 산이 적잖다. 무엇보다 남북의 신뢰 수준이 바닥이다.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이후 사라졌던 북한식 막말의 귀환은 “위기 징후”(외교안보분야 고위 인사)다.

문재인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겨냥해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어이없어 하늘 보고 크게 웃음)할 노릇”이라 빈정거린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16일)가 대표적이다. 담화는 문 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보기 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 “북쪽에서 사냥총 소리만 나도 똥줄을 갈기는 주제” 따위 막말을 쏟아냈다. 북쪽이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라고 떠받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언제나 지금처럼 (문재인 대통령과) 두 손을 굳게 잡고 앞장에 서서 함께해 나갈 것”(2018년 9월19일 평양정상회담 기자회견)이라는 다짐과, 모든 분야에서 “세계 선진 수준”(4월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 이르자는 호소를 정면으로 배반하는, 냉전 적대 시기 악습의 귀환이다. “김 위원장의 불만과 신경질을 눈치챈 아랫것들이 경쟁적으로 막말을 쏟아내는 분위기”(고위 소식통)라는 진단도 있다. 북한의 고질적 막말 담화는 주장의 핵심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소음이자 “모두를 패자로 만들 수 있다”(정부 고위 관계자)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징후다.

한반도 평화 과정에서 남쪽의 구실을 깎아내리는 주장도 문제다.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 권정근 담화’(6월27일)의 “조미 대화의 당사자는 우리와 미국이며 남조선 당국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다”라는 주장은 얼핏 북쪽의 전통적 견해를 재확인한 듯하지만, 실제론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말바꾸기다. 지난해 5월26일 판문점 통일각에서 열린 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이 “6월12일로 예정되어 있는 조미수뇌회담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문재인 대통령의 노고에 사의를 표하시였다”는 <노동신문> 보도(2018년 5월27일치 1면)와 정면충돌한다.

북쪽의 이런 행태엔 진전 없는 북-미 협상과 제재에 가로막힌 남북 협력에 대한 답답함·불만이 깔려 있다. 정세적으론 한-미 연합군사연습과 한국의 첨단무기 도입에 대한 말(막말 담화)과 행동(미사일·방사포 발사) 차원의 반발과 ‘내부 반발 다독이기 선전전’이 얽혀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한-미의 연합군사연습과 한국의 첨단무기 도입(F-35A, 글로벌호크 등)과 북쪽의 잇단 미사일·방사포 시험발사가 맞물려 안보 딜레마의 악순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안보 딜레마’란 나의 안보능력 강화가 상대의 안보 불안을 자극해 무한 군비경쟁과 모두의 안보 불안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뜻의 국제정치학 용어다. “안보 딜레마의 악순환이 본격화하면 남북관계는 파산을 피할 길이 없다”는 우려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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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딜레마를 피하고 남북관계를 다시 궤도에 올려놓으려면 적어도 두 단계의 대응이 필요하다.

첫째, ‘내로남불’을 배격하는 상호 이해와 배려다. 이번 한-미 연합 지휘소훈련은 전시작전통제권의 조기 전환 능력 검증이 필요한 사정이 크게 작용했다. 전작권 전환은 한국의 자기결정력을 높이고 미국의 영향력을 줄인다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앞선 필수 과제다. 남북 협력을 질적으로 비약시킬 밑돌이다. 남쪽의 첨단무기 도입은 전작권 전환에 대비하고 ‘핵을 가진 북한’에 대한 안보 불안 심리를 잠재우는 한편 군사 강국인 중국·일본 등을 시야에 둔 다목적 대책의 성격이 강하다. 북쪽의 군비 증강이 “나라의 자주권과 안전, 인민의 행복한 미래를 굳건히 담보해나가기 위한 성스러운 국방건설사업”(김정은 위원장, <노동신문> 17일치 1면)이라면, 남쪽에만 다른 잣대를 댈 이유는 없다. ‘내로남불’은 신뢰를 좀먹는다.

남쪽도 “북쪽의 단거리 발사를 문제삼지 않겠다는 선언이 필요하다”(전직 고위 관계자)는 제안이 있다. 북쪽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추가 발사”를 금지한 유엔 대북 제재 결의 위반이다. 다만 이 규정이 실제 겨냥한 건 단거리 미사일이 아닌 인공위성 발사를 명분으로 한 장거리 탄도미사일 기술 개량이라는 점에서 다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쪽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남들도 다 하는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듯, 문재인 정부도 ‘전술 무기 단거리 시험발사’가 격에 맞지 않게 한반도 정세를 뒤흔들 중요 변수로 작용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궁극적으론 남북 정상이 직접 만나거나 대리인을 통한 소통으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목표로 “군사긴장 완화, 전쟁 위험 제거, 단계적 군축 실현, 근본적 적대관계 해소” 등을 다짐한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 정신을 실천하는 길로 되돌아서는 발본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문 대통령부터 “힘을 통한 평화”(2018년 9월14일 도산 안창호함 진수식 연설)를 넘어 “평화는 (힘이 아니라) 오직 이해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6월12일 오슬로포럼 연설)는 인식의 실천에 나설 필요가 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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