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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숨진 탈북母子처럼… 복지혜택 못받는 극빈층 최소 93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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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 의무자 조항이 복지 문턱 높여

1명이라도 월소득 238만원 넘으면 기초생활보장 혜택 받지 못해

30대 후반 박미영(가명)씨는 병든 남편과 세 아이를 재봉틀 일로 혼자 먹여 살리다 힘에 부쳐 2014년 주민센터에 찾아갔다.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신청했더니, 담당 공무원은 "서류가 필요하다"고 했다. 제적등본, 임대차계약서, 최근 1년치 은행 거래 내역 등을 요구했다. "시부모 금융 정보 제공 동의서도 가져오라"는 말에 박씨는 신청 자체를 포기했다. "아이들은 낮에 학교에 가고 남편은 누워 있는데 언제 그걸 다 준비하겠느냐"고 했다. 그해 5인 가구 기준 최저생계비는 월 193만원이었다. 박씨의 한 달 벌이는 그에 못 미쳤지만, 서류 꾸릴 여력이 없어 나라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20일 "박씨처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이 전국적으로 최소 93만명"이라고 했다. 20여일 전 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임대아파트에서 여섯 살 아들과 함께 아사한 채 발견된 탈북자 한모(42)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복지 사각지대에 최소 93만명

조선일보

우리 정부는 소득과 재산이 최저생계비에 못 미치는 국민에게 최저생계비만큼 생계·주거·의료·교육 급여를 제공한다. 일명 '기초생활보장제도'다. 그렇다면 이론적으론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사람이 없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복지부는 2017년 빈곤층 실태조사를 벌인 뒤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면서 아무 혜택 못 받는 사람이 전국적으로 93만명"이라고 추정했다. 취재팀이 만난 전문가들은 "그 뒤에도 이 수치는 크게 줄지 않았다"고 했다.

부양의무자 조항 등이 문턱 높여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부양의무자 조항'이 복지 사각지대를 만들어내는 가장 큰 주범"이라고 했다. 현행법은 직계 1촌 혈족과 그 배우자를 '부양의무자'로 친다. 이 중에 월소득이 238만원 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부양의무자에게 부양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받지 못한다. 집 나간 남편, 연 끊긴 부모, 자기 먹고 살기도 힘든 자식 때문에 복지 혜택 못 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뇌병변장애가 있는 30대 싱글맘 오명희(가명)씨는 60대 어머니가 재혼하는 바람에 기초생활보장 수급이 끊겼다. 어머니의 소득(월 130만원)에 새아버지의 경비원 월급(월 150만원)등이 합산돼 '부양의무자 소득 기준'을 넘긴 것이다.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도 허점투성이

복지부는 2015년 12월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만들었다. 단전·단수·단가스·건보료 체납 등 29개 정보로 위기에 처한 사람을 찾아내는 전산망이다.

하지만 아직도 허점이 적지 않다. 매달 복지부 전산망에 걸리는 사람은 500만명 정도다. 복지부는 이 중 상황이 심각해 보이는 사람 5만~8만명을 추려 두 달에 한 번씩 지자체에 명단을 건넨다. 복지부 실무자들은 "도움이 절박한 사람은 그보다 더 많은데, 이 정도가 현재 행정력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라고 했다. 서울 시내 주민센터 직원 여러 명은 취재팀에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 고독사 방지 업무까지 겸해, 내가 관리해야 할 사람이 지금도 월 수백 명"이라고 했다.

안상훈 서울대 교수는 "대통령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현금 퍼주기' 복지를 할 게 아니라, 최하층 복지 시스템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남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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