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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파생상품 손실 ‘눈덩이’…소송전으로 번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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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英·美 국채금리 연계상품 손실률 최대 90% 넘어

“중위험 상품이라더니?”…불붙는 불완전판매 논란

세계파이낸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파이낸스=안재성·오현승 기자] 파생결합증권(DLS) 상품에 대한 불완전판매 논란이 거센 가운데 대규모 소송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과 시민단체들이 소송전을 예고한 가운데 금융감독원도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 회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올초 이후 글로벌 경기가 급속도로 얼어붙고 안전자산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이와 연계된 파생금융상품들이 대규모 손실 위기에 처했다. 특히 우리은행이 판매한 독일 국채 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는 손실률이 최대 90%를 넘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융회사들이 판매한 DLF, 파생결합증권(DLS) 등 해외 주요국 금리연계형 파생결합상품 판매잔액은 이달 7일 기준 총 8224억원이다. 이 중 우리은행(4012억원)과 KEB하나은행(3876억원)의 판매 금액이 대부분(95.9%)을 차지했다.

특히 문제시되는 상품은 우리은행이 올해 5월까지 판매한 DLF다. 1266억원 가량 팔린 해당 DLF는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에 연계한 상품이다. 국채 금리가 –0.2%보다 높으면 연 4~5%의 수익이 나지만 이보다 낮은 수준으로 금리가 형성되면 손실구간에 접어든다.

20일(현지시간) 기준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는 –0.689%까지 떨어져 해당 상품은 심각한 손실 위기에 처했다. 만약 오는 9~11월인 만기까지 이 금리가 유지되면 손실률이 95.1%에 달한다. 금리가 더 하락해 –0.7% 아래로 내려가면 투자액 전액이 날아간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미중 무역전쟁, 이탈리아 정정 불안, ‘노 딜 브렉시트’ 등 암초가 많아 단기간에 글로벌 경기가 불황에서 벗어날 것 같지는 않다”고 우려했다.

영국 파운드화 이자율스와프(CMS)금리와 미국 국채 5년물 금리를 기초로 한 DLF도 6958억원어치 팔렸다. 이 중 KEB하나은행의 판매액은 3876억원으로 과반을 차지했다.

이 상품은 기초자산의 만기 시점 금리가 가입시점에 견줘 60% 이상일 때 연 3~5%의 수익을 제공한다. 하지만 기초 금리가 베리어 이하로 떨어지면 떨어진 만큼 손실이 발생한다.

이미 금리가 크게 낮아진 상태라 만기까지 현 금리 수준이 유지될 경우 평균 예상손실률은 56.2%에 달할 전망이다. 그나마 우리은행의 DLF와 달리 6~8회 만기 연장이 가능하다는 점이 다행으로 꼽힌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통상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것으로 여겨질 경우 '방망이를 짧게 잡으라'는 격언처럼 만기를 짧게 설정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다만 우리은행의 경우 금융시장이 단기간에 너무 급격히 변하면서 만기가 짧은 것이 오히려 독이 됐다”고 진단했다.

홍콩 반정부 시위 장기화로 인해 홍콩 증시에 연동되는 주가연계증권(ELS)에 돈을 넣은 국내 투자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홍콩H지수가 국내에서 판매된 ELS의 주요 기초 자산이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중 발행된 ELS 가운데 홍콩H지수를 기초 자산으로 하는 ELS 비중은 67%에 이른다.

지난 20일 기준 홍콩H지수는 1만132.77으로 연고점인 1만1848.98 대비 약 13% 가량 떨어졌다. 원금 손실기준선이 가입 당시의 50~60%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연고점에서 판매된 ELS도 아직은 여유가 있는 셈이다.

다만 지난 2015년 홍콩H지수가 급등락을 거듭하며 고점의 절반 수준까지 추락한 시기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아직 안심하긴 일러 보인다. 특히 중국 정부의 무력 진압이 현실화할 경우 단기간 내 변동성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

여러 파생결합상품의 대규모 손실이 우려되면서 불완전판매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특히 해당 상품들은 ‘중위험·중금리 상품’으로 판매돼 심각성이 더 크다.

실제로 이 파생결합상품들은 일견 중위험·중금리 상품의 구조로 보이지만 변동성이 일정 구간 이상으로 높아지면 당장 초고위험 상품으로 돌변한다. 일례로 독일 국채 금리 연계형 DLF의 경우 금리가 –0.2% 이하로 내려가면 그 차이의 200배만큼 손실이 난다.

파생결합상품 투자자들 중 법인도 있지만 개인이 3654명으로 전체 판매잔액의 89.1%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사태는 소송전으로 넘어가는 모습이다. 피해 투자자들과 소송을 추진하고 있는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이번 사건은 키코와 ‘동양 사태’가 결합된 형태”라며 “단순히 '이런 상품에 가입한 경험이 있다'는 등의 항목에 체크한 것만으로 책임을 소비자에게 넘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위험성이 높은 상품을 설계한 그 자체에 대해 문제삼는 건 옳지 않다"면서도 “다만 소비자에 대한 투자 권유 등 판매 과정이 적절히 이뤄졌는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불완전판매 논란이 거세지면서 검사에 나선 금감원은 금융상품 판매의 적정성, 적합성, 부당권유 등 세 부분을 집중적으로 검토할 방침이다. 만약 불완전판매로 결론나면 과거 사례에 비춰볼 때 판매 금융사가 투자자 손실액의 최대 70%까지 배상책임을 질 수 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불완전 판매의 개연성은 있지만 실제 위반 여부는 아직 확실치 않다"며 "금융사들이 적합성의 원칙, 설명의무의 원칙 등을 제대로 지켰는지 여부가 법적 쟁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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