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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韓서 치명적 가짜뉴스 퍼져도 판정은 美서…삭제까진 수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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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뉴스 온상된 유튜브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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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K씨는 몇 달 전 유튜브에 퍼진 근거 없는 소문 때문에 홍역을 치렀다. 예전 같으면 카톡방에서 몇 명이 '그랬다더라'는 소문 정도로 끝날 해프닝이었지만, 여러 개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가면서 허위정보가 진짜뉴스인 양 엄청난 속도로 퍼져 나갔다. "전혀 사실이 아니고 명예훼손이 심각하다"며 유튜브 측에 해당 동영상을 차단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K씨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답변을 받았다. 유튜브 측은 "일단 신고를 하면 내부에서 검토해서 조치를 취하겠다. 그런데 검토하는 팀이 해외에 있어서 시간이 좀 걸린다"는 답변을 보냈다. K씨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유튜버들을 고소했고 몇 달이 지난 지금 해당 콘텐츠는 대부분 삭제됐지만, 여전히 유튜브 검색창 연관 검색어에는 가짜정보가 버젓이 올라와 있다.

K씨의 사례는 가짜뉴스뿐만 아니라, 개인에게 치명적인 허위 조작정보가 유통되어도 사실상 막을 길이 없는 유튜브 정책의 부작용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미디어업계 관계자는 21일 "똑같은 콘텐츠가 네이버나 다음 같은 국내 정보기술(IT) 플랫폼에서 유통되었다면 즉각적인 조치가 취해졌을 것"이라며 "최근 보람튜브 채널 하나의 광고매출이 지상파 방송인 MBC와 비슷할 정도로 유튜브 채널의 영향력이 커졌는데, 유튜브가 같은 정책을 고수한다면 앞으로도 비슷한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매일경제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인터넷기업은 정보통신망법 제44조 2항에 명시된 '임시조치' 제도의 적용을 받아 블로그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일어나는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 임시조치는 게시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플랫폼 사업자에게 신고하면, 판단이 어려운 경우에도 게시물을 우선 임시 블라인드 처리를 해 정보 접근을 차단하는 피해 구제 방식이다. 임시조치 기간은 30일 이내다. 게시자는 임시조치 적용을 통보받으며, 재게시를 요청할 수 있다. 검토 결과 재게시 요청이 받아들여지면, 게시물은 복원된다. 임시조치는 권리 침해 등을 판단하는 기간에도 급속도로 게시물이 퍼져 피해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유튜브는 국내와 달리 임시조치를 시행하지 않고, 국내법이 아닌 '유튜브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에 따라 콘텐츠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 한마디로 국내에서 영업을 하면서 국내법에 따라 대응하는 게 아니라 미국 현지 기준에 따라 가짜뉴스와 명예 훼손 여부를 결정한다는 얘기다. 가짜뉴스 등으로 피해를 받아 미국 구글 유튜브 본사에 신고하면, 자체 가이드라인 위반 여부를 검토해 처리하며, 광고 수익과 연령 제한 조치도 취한다. 반복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위반하는 사용자 계정은 미국 본사 차원에서 해지 조치한다.

이 때문에 유튜브는 이를 담당하는 모니터링팀, 정책검토팀이 국내에 있지 않아 신속한 구제가 어렵다. 실제 피해 사례에서도 게시물 삭제 등 처리까지 수 주가 걸리는 등 피해자 불만이 속출하고 있는 이유다. 이에 대해 유튜브 관계자는 "한국이 아닌 글로벌에서 한국어를 하는 인력을 두고 콘텐츠 모니터링과 검토를 관장한다"고 말했다.

21일 '유튜브의 정치편향성' 관련 세미나를 개최한 주정민 한국방송학회 회장(전남대 교수)은 "최근 조사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6명이 유튜브에서 정보를 얻고 10명 중 4명이 뉴스를 본다고 한다"며 "누구나 콘텐츠를 올릴 수 있어 편리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콘텐츠가 남발되면서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21일 현재 유튜브에는 총 532개 채널이 '뉴스/정치' 카테고리로 등록되어 있다. 조회수를 올려야 하는 유튜버들은 자극적인 제목과 혐오 발언으로 클릭을 유도한다. 유튜브에는 지금도 '노회찬 의원 타살설, 19대 대선 부정선거, 박근혜 탄핵은 북한 지령, 5·18 당시 북한군 개입, 태블릿PC 조작설' 등의 허위조작정보를 올린 채널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또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이 정치 뉴스 이용자의 편견을 강화시키는 '확증편향'을 부추기고 있음이 실험으로 확인된 결과가 발표됐다. 유튜브 전체 트래픽 중 70%가 추천시스템에 기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홍규 EBS 연구위원은 "포털 뉴스를 이용하는 시간보다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시간이 약 1.5배에 달하는데, 유튜브 정치 뉴스에 대해 편파적이고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다"며 "실제로 유튜브 정치 뉴스를 시청한 후 정치 성향과 연령에 따른 확증편향 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튜브의 허위조작정보를 규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팽팽하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다. 이에 대해 김지호 경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토론에서 "설령 가짜뉴스일지언정 '삭제'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라며 "차라리 '가짜뉴스'라는 표시를 해주어서 이용자들이 가짜뉴스임을 인식하고 자연스럽게 정화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위근 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은 "글로벌 사업자들이 개별시장(한국)의 법제도와 정책을 따르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찬옥 기자 / 오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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