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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100년이 지나도 낡지 않았다 바우하우스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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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30주년 특별전

경향신문

마르셀 브로이어의 ‘탁자세트 B9’(가운데). 탁자 위의 세라믹 다기 세트는 바우하우스를 이끈 발터 그로피우스의 디자인, 왼쪽 목조 책상은 칼만 렝옐의 작품이다. 금호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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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파이프 등을 재료로 쓴 가구

단순한 디자인 강조한 생활용품

화려한 장식 주류였던 당시 ‘파격’

오늘날 주변 어디에서 본 듯 익숙

견고한 기능·간결한 조형미 탁월


바우하우스(BAUHAUS).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 세워진 뒤 데나우, 베를린을 거쳐 1933년 나치에 의해 폐교된 조형예술학교다. 단 14년간 존재하고, 설립 100년이 지났다. 하지만 예술과 공예·기술의 융합을 이끈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정신, 장르를 초월한 도제식 교육방식은 지금도 문화예술 곳곳에 살아 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며 기능성의 강조, 장식을 버린 단순간결의 조형미, 대량생산의 산업화시대에 어울리는 재료 등을 추구한 디자인 철학은 건축과 가구류·식기류, 생활용품, 타이포그래피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산업디자인의 막을 연 바우하우스는 현대 디자인의 원류로 평가받는다. 각국에서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다큐멘터리 영화(한국에서도 29일 개봉), 전시, 학술대회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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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와 현대 생활’ 특별전에서 선보이는 유리 용기와 조명들. 금호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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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서울 삼청로)에서 열리고 있는 ‘바우하우스와 현대 생활’전은 바우하우스가 왜 현대 디자인의 뿌리인지, 디자인이 일상 속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새삼 확인하는 자리다. 금호미술관이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특별전은 바우하우스와 20세기 주요 디자인으로 구성된 ‘금호미술관 디자인 컬렉션’ 120여점으로 꾸려졌다.

아무래도 먼저 눈길을 잡는 것은 바우하우스에서 가르치거나 배운 이들의 오리지널 디자인이다. 2층 전시장 들머리에서 만나는 마르셀 브로이어의 ‘탁자세트 B9’(1925~1926)는 여러 면에서 바우하우스 철학을 잘 보여준다. 4개의 탁자로 된 작품은 자전거에 사용된 강철 파이프와 성형합판으로 이뤄졌다. 높이와 넓이를 달리함으로써 사용하지 않는 탁자는 다른 탁자 밑으로 들어가 공간 활용성을 극대화시킨다. 장식 없이 기능성을 최대한 살려 바우하우스 디자인임을 알아볼 수 있다. 강철 파이프는 당시엔 ‘황당한’ 재료였지만, 가벼우면서 높은 강도와 간결한 외형으로 이후 가구 재료로 각광을 받았다. 강철 파이프로 프레임을 만들고 교체가 가능한 가죽·천을 활용한 그의 의자는 바우하우스의 상징으로,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브로이어 탁자 위의 세라믹 다기 세트(1963)는 바우하우스를 이끈 발터 그로피우스의 디자인이다. 또 옆의 목조 책상과 의자(1930)는 칼만 렝옐의 디자인으로 연구자들은 ‘보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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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켈러가 스승이던 바실리 칸딘스키로부터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칸딘스키 콘셉트의 요람’. 금호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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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의자 디자인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캔틸레버 의자(강철 파이프를 사용해 뒷다리 없이 공중에 뜬 형상의 의자)를 처음 만든 마르트 스탐의 작품도 보인다. 바우하우스 출신으로 원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마리안 브란트의 재떨이와 탁상시계·과일접시·냅킨꽂이(1920~1930)도 출품됐다.

20세기 대표적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바우하우스의 마지막 교장이다. 바우하우스가 문을 닫자 그로피우스 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바우하우스 정신을 확장시키는 작업을 해냈다. 전시장에는 그의 ‘바르셀로나 의자’(1926년), 캔틸레버 안락의자 ‘MR534’(1927)의 프레임이 나왔다. 유리·스테인리스스틸 등 대량생산에 적합한 재료를 선구적으로 활용한 디자이너 빌헬름 바겐펠트도 있다. 그의 ‘주전자’(1929)와 ‘쿠부스 저장용기’(1939), 천장 조명 등이 관람객을 맞는다. 그의 프로토타입이어서 극히 귀한 이 ‘주전자’는 지금 보면 평범하지만, 화려한 장식에 무겁고 파손도 쉬운 주전자가 주류이던 당시엔 가볍고 견고한 기능과 간결한 조형성을 강조함으로써 충격적인 디자인으로 평가됐다.

전시장 2~3층에는 조명 ‘카이저 이델’(이델)로 유명한 크리스티안 델의 조명, ‘현대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와 함께 작업한 샤를로트 페리앙의 ‘유니테 다비타시옹 부엌’(1947~1952)도 선보인다.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르 코르뷔지에가 마르세유에 지은 공동주택으로 현대 아파트의 원형으로 꼽힌다. 바우하우스에서 스승인 칸딘스키로부터 영감을 받은 페터 켈러의 ‘칸딘스키 콘셉트의 요람’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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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에 나온 어린이용 가구들. 금호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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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전시공간은 어린이 가구·놀이기구 컬렉션, 20세기 주요 디자이너들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토네트·나나 디첼의 디자인을 비롯해 레나테 뮐러의 삼베 인형 등을 만날 수 있다. 유명 산업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가 디자인한 복합적 기능의 어린이 침대인 ‘라펠키스트’(1975), 조형성·실용성이 어우러진 플라스틱 의자로 유명한 찰스와 레이 임스 부부의 테이블과 흔들의자, 덴마크 대표적 건축가로 개미·달걀·백조 의자로 이름난 아르네 야콥센의 어린이용 의자도 선보인다.

전시장을 둘러보면 어디에서나 본 듯한 평범한 디자인들이다. 하지만 1920~1930년대 작품임을 되새기는 순간 바우하우스의 힘, 영향력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소장품만으로 꾸린 전시회라 바우하우스와 이후 계속된 그 영향력을 길고 넓게 조망하기 힘든 한계도 있지만, 그럼에도 흥미롭게 들러볼 만하다.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워크룸’의 전시장 벽 디자인, 관람객 이해를 돕기 위한 ‘바우하우스 뉴스 아카이브’(한국디자인사연구소)에선 전시에 들인 공이 느껴진다. 전시는 내년 2월2일까지이며, 전시와 연계한 강연도 예정됐다. (02)720-5114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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