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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e슬기로운 투자생활]성(性) 불평등은 투자의 잠복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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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오리건주 등 연기금, 기업에 성평등 데이터 공표 요구

"투자책임 다하려면 성평등 문제 리스크로 받아들여야"

이데일리

[이데일리 이슬기 기자] ‘성 불평등은 투자의 잠복리스크’다? 이러한 질문에 ‘예스(Yes)’라고 대답하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형 연금기금 등 기관이 그 예입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미국 코네티컷과 미네소타, 오리건주 등 연금기금은 이달 여성의 채용, 승진, 급여수준에 대한 자세한 데이터를 기업이 공표하도록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리건주 연금기금은 1060억달러(약 128조원)의 자금을 운용중인데,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을 감시하는 비영리조직인 ‘As You Sow’와 제휴해 31개 기업에 여성의 채용, 승진 데이터를 개시하길 요구하는 문서를 지난달 송부했다고 합니다.

토비아스 리드 오리건주 재무장관은 FT에 “성평등 문제를 리스크요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투자책임을 다한다고 얘기할 수 없다”며 “기업이 모든 종업원에 대해 성평등을 실현하고 있는지 여부를 검증하는 것은 투자수익을 올리는 것에 가장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성평등이 기업의 수익성을 높여준다는 조사는 이들의 움직임을 뒷받침합니다. FT는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가 3월에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이사회에서 다양한 의견을 도입하고 여성 간부 비율이 높은 기업은 자기자본이익률(ROE)도 높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여성의 참여가 조직의 문화를 다양하고 수평적으로 바꾸고, 이러한 문화의 변화가 기업의 수익성도 제고한다는 겁니다.

한국에서도 이미 비슷한 연구가 나오고 있습니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지난 6월 보고서를 통해 여성 임원 비율이 높을수록 기업 재무 성과도 긍정적이였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여성 등기임원을 선임한 기업의 경우 자기자본이익률(ROE)이 평균 3.72%로, 여성 등기임원이 없는 기업(1.55%)보다 상대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보였다는 겁니다.

다만 미국의 연금기금 등의 기관이 성평등을 위해 구체적인 움직임에 나서는 것을 고려하면, 한국의 기관들의 움직임은 더딘 편입니다. 연초 여성가족부에서 여성 임원이 많은 민간기업에 국민연금의 투자를 늘리겠다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발표하자 거센 비난에 부딪치기도 했죠.

물론 국민연금의 투자방향은 기금운용본부에서 독자적으로 수립해야 합니다. 어떠한 목표 달성을 위해 국민 노후 자금을 당근 삼겠다는 발상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타당합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비판이 ‘국민연금의 투자 목적은 철저하게 수익률 확보여야 한다(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도 한국에선 성평등이 기업의 수익성을 제고한다는 인식으론 좀처럼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볼 수 있죠.

자본주의의 산실로 불리는 미국이 변한다면 결국 다른 국가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바뀌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가 점점 확산되고 있는 한국도 지금은 지배구조에 ESG 논의가 편중돼 있지만, 곧 논의의 중심은 여성 등 다양한 분야로 옮겨갈 겁니다. 성평등을 논하면 소모적 논쟁으로 비화되는 일이 잦은데요, 성평등을 향한 세계적 흐름은 거스르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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