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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어제의 내일은 오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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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이 문명 전환 주도했지만

성공 여부 예측불허…전문가도 틀려

미래는 젠더·인종 등 현재 이슈 영향

미래의 예언 대신 ‘열린 토론’ 긴요



한겨레

미래는 오지 않는다
전치형·홍성욱 지음/문학과지성사·1만5000원

온 우주가 나서도, 시간의 흐름은 막기 어렵다. 어제가 지나면 반드시 오늘이 온다. 그래서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다.

잠깐, 다시 생각해 보자. 오늘의 상황은 어제의 예측대로 펼쳐지는 게 아니다. 당장이라도 전쟁을 벌일 듯 트럼프와 김정은이 핵무기급 말폭탄을 주고받던 2017년, 두 사람이 분단의 선에 서서 손을 마주잡을 것으로 예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어제의 내일은 오늘이 아니다.

과학기술학(STS)을 전공한 전치형·홍성욱 두 사람은 인류 문명의 엔진인 과학기술의 역사를 고찰하면서 강조한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모호하다.’ ‘미래를 호언장담하는 자를 믿지 말자.’ ‘미래는 현재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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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증에 들어가보자. 세계 변화를 추동하는 기술·산업 발전의 핵심은 과학이다. 그러나 과학은 늘 반증을 통해 새로운 지식으로 업데이트된다. 300년 동안 흔들림 없는 진실로 여겨졌던 뉴턴의 중력 이론은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으로 엎어졌다. 아인슈타인의 주장 또한 한동안 이론으로만 존재하다가 1919년 영국 천문학자 에딩턴이 실제로 태양 주변 별빛의 휘어짐을 실측함으로써 ‘참’으로 인식됐다. 반증의 가능성에 열려 있는 과학만이 진짜 과학이라는 과학철학자 칼 포퍼의 의견이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다. 덧붙이자면, 칼 포퍼의 강의에 감명받은 조지 소로스는 전도 유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이 아니라 과거 몇 차례 위기에도 생존한(반증에서 살아남은) 기업에 집중 투자해 떼돈을 벌었다.

전문가라고 해서 반드시 미래 예측에 뛰어난 것도 아니다. 1984년 <이코노미스트>는 전직 재무장관들, 다국적기업 회장들, 옥스퍼드대 경제학과 학생들, 환경미화원들 등 네 그룹으로 나눠 10년 뒤 경제 상황을 예측하도록 했는데, 환경미화원과 기업회장들이 적중률 공동1위를 차지했고, 경제학과 학생들, 재무장관들이 다음 순서였다. 많이 아는 것과 앞날을 전망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계속 살아남으리란 법은 없다. 새롭게 발명된 과학기술의 숨겨진 용도 또는 다양한 용도를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고 우리의 예상과 다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가령 2000년대 초반 많이 쓰였던 파일공유 프로그램 ‘냅스터’는 애초 다양한 음악을 공유하고자 하는 애호가들을 위해 만들어진 획기적 기술이었지만, 불법공유 문제가 불거지며 소송에서 패소함으로써 소멸의 운명을 맞았다. 더욱이 어떤 기술은 실패 이유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주저앉기도 한다. 초음속 비행기 콩코드는 7시간 걸리던 대서양 비행거리를 3시간으로 줄이는 탁월한 발명품이었지만 결국 승객수가 감소해 망하고 말았다. 분초를 다퉈가며 일하던 기업체 간부들이 노트북의 개발로 비행기에서도 업무를 볼 수 있게 되자 굳이 빠른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라는 ‘곁가지 가설’이 솔깃할 만큼, 아직까지 콩코드 실패의 원인은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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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어차피 예측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면, 차라리 상상력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만든 에드윈 랜드, 애플의 스티브 잡스 등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비전이 담긴 물건을 내놓아 시장을 뒤흔들었다. 최초의 피시 ‘알토’를 만든 앨런 케이의 말대로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발명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미래 예측이 쉽지 않음에도, 과학기술과 미래의 변화를 예언하는 이들은 대중의 끊임없는 관심을 받는다.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을 뛰어넘는 ‘특이점’의 도래를 장담하는 레이 커즈와일(구글 기술고문), 분자 조립기계를 이용하면 세계를 다시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확언하는 나노 기술 전문가 에릭 드렉슬러, “육체는 두뇌를 위한 원격조정장치”라고 확언하는 인공지능 연구자 마빈 민스키 등이 그러하다. 이런 주장들은 파국과 종말을 예견하는 종교적 색채를 띠기도 하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단단히 대비하라는 자기계발의 성격도 지닌다. 지은이들은 우주개발·생명공학·자동화 등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조건’이 아무리 변화하더라도 이는 결국 정치적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한나 아렌트의 의견에 동조한다. 원하는 사양을 갖추고 100살 넘게 사는, 보다 우월한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손 치더라도 이 목적을 위해 새로운 과학기술을 사용할 것인지 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로 미래를 약속하는 레토릭은 사후 바로 신체를 저온냉장하면 언젠가 영생을 얻을 수도 있다며 회원을 모집해온 로버트 에틴거의 냉동보존술 사업, 또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도 일어나 걷게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놓은 황우석의 줄기세포 프로젝트 등으로 변주되며 ‘대박’을 바라는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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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과학기술이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고 구조와 행동 패턴 등에 달려 있다. 일본의 인공지능학회가 발행하는 학술지 <인공지능> 2014년 1월호 표지는 미래의 청사진에 ‘현재’가 얼마나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일상생활의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표지는 가사 업무를 도맡는 안드로이드 로봇을 만화로 그린 것이었는데, 아름답고 앳된 여자 생김새의 로봇이 원피스를 입고 빗자루를 들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이후 성(性) 역할에 대한 일본 사회의 고정관념이 노골적으로 담겨 있다는 비판이 일자, 인공지능학회는 3월호 표지엔 가사 로봇이 한 손엔 빗자루를 쥔 채 독일어로 쓰인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읽고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 미래를 구성하는 것은 젠더뿐 아니라 노동, 인구변동, 이민, 난민, 인종문제 등 당대의 이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이 책은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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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우리가, 지금, 여기서 꾸려가고 있는 현재에 맞닿아 있다. 원하는 미래를 함께 공유하고 토론하는 공론의 장이 절실히 요청되는 까닭이다. 미래는 오는 게 아니라, 오게 만드는 현재의 문제이므로.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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