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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안전한 곳에선 진실을 찾을 수 없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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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 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한겨레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지음/허블(2019)

완벽하게 아름답고 안전한 ‘마을’이었고, 성년이 되면 언니 오빠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순례를 다녀오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데이지에게는 질문이 있었고, 문지기가 지키는 금서 구역을 찾아간다. “저는 세계의 진실을 알고 싶어요.” 문지기는 대답한다. “세계의 진실은 여기에 있는 게 아니야.”

갈등도 슬픔도 없는 안전하고 행복한 마을에는 문지기의 말처럼, 진실이 존재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질문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안전’이 나쁜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곳에서라면 어른들이 만든 정의와 규칙에 따라 ‘착하게’ 사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란 없지 않을까. 김초엽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길을 떠난다. 반드시 그 ‘안전’에 질문하며 말이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 금서 구역의 문지기를 찾아간 데이지는, 자신처럼 질문을 품고 ‘마을’을 떠났던 올리브의 역사를 알게 된다. ‘마을’에서는 올리브 얼굴의 커다란 흉터가 어떤 무엇도 아니었다. 하지만 올리브가 질문을 품고 떠나간 마을 바깥의 세계에서 그것은 누군가의 시선을 받아 마땅한 것. 흉측한 것, 정상 아닌 것, 결여를 의미한다. 두 세계를 그려내며 소설은 자꾸만 묻는 듯하다. 누군가의 ‘결여’는 왜 ‘결여’라 불리는가? 표준의 기준은 무엇일까? 표준이 아닌 것들은 왜 시민권을 얻지 못하지? 올리브는 ‘마을’에서 안전한 삶을 살아가도 되었다. 하지만 진실이 있는 세계를 선택한다. 도전하며 싸우는 삶을 살기로 한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에서 가윤은 ‘우주 저편’을 탐사하기 위해 선발된 우주터널비행사다. ‘판트로피’ 과정을 통해 극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몸으로 신체를 개조하는 훈련을 받는다. 가윤에게는 앞서 같은 길을 걸었던 재경 이모가 있다. 마흔여덟의 적지 않은 나이, 학벌, 여성, 동양인 등 여러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도 있었지만 당당했고, 어린 가윤에게 늘 영웅이었던. 재경 이모는 ‘우주 저편’으로 가기 위한 미션을 하루 앞두고 뜻밖의 선택을 한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었고, 모두의 우주 영웅이 될 수 있었다. 그러면 되었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으로 실패한 우주인으로 남는다.

“재경은 수많은 소녀들의 삶을 바꾸었을지도 모른다. 최후에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재경이 바꾸었던 숱한 삶의 경로들이 되돌려지는 것은 아니다. 가윤이 바로 그 증거 중 하나였다. 가윤은 한때 재경을 보며 우주의 꿈을 꾸던 소녀였고, 이제 재경 다음에 온 사람이 되었다.”

김초엽 소설의 인물들이 분명한 성공이나 확실한 안전 대신, 무엇이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세계로 내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인물들은 그 ‘안전’에 질문했던 사람들의 가려진 역사를 복원하며, 우상을 만드는 대신 그들과 조우하고 닦이지 않은 자신 앞의 울퉁불퉁한 길을 더듬는다. 새 길을 닦는다. 김초엽의 에스에프소설이 사랑받는 데는 수만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토록 많은 질문이 이야기에 담겨 있는 것도 분명 그 이유 중 하나이리라 생각한다.

조유나 동아시아 인문사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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