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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서울대 청소노동자 ‘폭염잔혹사’는 언제 끝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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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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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눈물 나는 데는 처음 봤어. 이런 데가 더러 있다고 하더라고. 그 사람 죽고 나니 그제야 휴게실을 지상으로 옮겨줬어. 꼭 사람이 죽어야만 해주는 건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게지.” 동료의 죽음 앞에서 경력 22년의 청소노동자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합니다. 20년이 지나도록 바뀌지 않은 현실에 대한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안녕하세요. 24시팀 이유진입니다. 성추행 교수 사건 등으로 시끄러운 서울대에서 또 한번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9일 낮 12시30분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제2공학관 지하 1층 남자 직원 휴게실에서 67살 청소노동자 ㄱ씨가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ㄱ씨는 새벽 6시께부터 시작한 오전 작업을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휴게실에 몸을 뉘었다가 다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노조는 평소 ㄱ씨가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열악한 환경이 병을 급속도로 악화시켰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날, 낮 최고기온은 34.6도까지 치솟았습니다. 휴게실은 ‘찜통’이었죠. 계단 아래 가건물 형태로 만들어진 휴게실에는 창문도, 에어컨도 없었습니다. 평소 ㄱ씨를 포함해 3명이 쓰던 휴게실은 실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이 3.52㎡(1.06평)에 불과할 정도입니다. 바람 한점, 햇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휴게실에 더위를 식힐 도구라곤 청소노동자가 직접 설치한 환풍기와 벽에 걸린 선풍기 1대밖에 없었습니다. 강의실 바로 앞 공간이라 문을 열 수도 없었습니다. 여름뿐인가요. 겨울이 되면 찬바람이 휴게실로 고스란히 넘어와 청소노동자들은 전기장판 온도를 최고로 올려두곤 했답니다. 휴게실 노란색 장판이 군데군데 검게 타버린 이유입니다.

휴게실을 옮겨달라는 청소노동자들의 요구는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숨진 ㄱ씨와 함께 이 휴게실을 사용하던 한 동료 노동자는 “애초에 에어컨을 달 수조차 없는 공간이다. 단과대에 여러해에 걸쳐 휴게실을 옮겨달라고 요구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내어줄 공간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겠죠. 이렇게 청소노동자 휴게실 설치가 학교 차원이 아닌 각 단과대의 재량으로 이뤄져 오다 보니, ㄱ씨가 숨진 휴게실 같은 공간들이 곳곳에 방치됐고 학교는 현황 파악조차 못 하고 있었습니다.

정규직 전환도 휴게환경 개선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청소·경비·전기 등 서울대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3월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됐습니다. 최분조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 서울대시설환경분회장은 “용역업체 소속일 땐 ‘공간을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지’ 이런 식이었다”며 “정규직으로 전환된 뒤 학교 쪽에 휴게공간 개선부터 요구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기록적인 폭염을 겪던 지난해 여름, 청소노동자들은 노조에 “이러다 죽겠다”고 호소했다고 합니다. 노조는 지난해 9월 학교와 단체협상을 하면서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은 휴게실에 조처를 해달라고 정식으로 요구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서울대는 지난 6월에야 뒤늦게 청소노동자 휴게실 전수조사를 시작했고, 이 조사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그사이 ㄱ씨가 운명을 달리한 겁니다. 다시 뒤늦게 서울대는 전담팀까지 마련해 분주히 움직이는 모양새입니다만, 동료 청소노동자의 말마따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최 분회장은 “정규직이 되고 좋아진 게 있다면 매년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 하나뿐”이라고 자조했습니다. 그날, 오전 내내 뜨거운 햇살을 오롯이 견디며 캠퍼스를 분주히 오갔을 ㄱ씨가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잠시 땀을 식힐 수 있었다면, 2명만 누워도 살이 닿는 좁은 공간이 아니라 대(大)자로 누워도 좋은 공간이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최 분회장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소노동자들도 서울대를 돌아가게 만드는 어엿한 학교 구성원이에요. 생각해보면 청소노동자들이 가장 더러운 것을 만지고 화학약품에도 많이 노출되는데 그렇다면 학교에서 제일 쾌적한 공간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서울대가 이른 시일 안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길, 그래서 서울대에서 더 이상 ‘폭염 잔혹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한겨레

이유진 24시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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