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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삶과문화] 있을 때 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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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치 돌고 도는 법 / 사람이 멀리 바라보고 /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 반드시 금방 근심 생겨

“아Q는 혁명당이 동네 사람들 모두를 죽여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루쉰, ‘아Q정전’)

이 회사를 정년까지 다녀야 한다고 치자. 내 사수가 또라이라고 치자. 또라이의 특징은 자기가 또라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거다. 내가 그를 매일 마주쳐야 한다면 어떨까. 하루는 “이봐, 왜 일을 그렇게 굼뜨게 해”라고 지적한다. 서둘러 일을 하면 “아니, 왜 그렇게 급하게 일을 처리해”라고 나무라듯 말한다. “예, 예”하고 맞춰주면 예스맨이라 하고, 이의를 제기하면 기어오른다 한다. 알아서 일을 처리하면 “반드시 보고하라”고 화를 내고, 일일이 보고하면 “회사 1, 2년 다니냐. 적당히 알아서 해야지”라고 면박을 준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까.

세계일보

명로진 배우 겸 작가


‘또라이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다. 당신이 어딜 가든 당신을 괴롭히는 이는 늘 있다는 뜻이다. 어떤 곳에 갔더니 아무도 또라이가 아니다. 그럼 당신이 또라이일 확률이 높다. 그러니 인생이란 얼마나 고달픈 것인가. 누군가 사이코가 아니라면 내가 사이코라니.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여러 해 전, 중국 취푸의 공자연구원에서 사 온 부채에 쓰인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인무원려 필유근우(人無遠慮 必有近憂: 사람이 멀리 바라보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금방 근심이 생긴다).”

인간에게 걱정과 근심을 주는 게 개나 고양이일까. 일이나 돈일까. 사람이다.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린 우리가 마주치는 타인 때문에 근심걱정 속에 산다. 우리 속담에도 있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나를 괴롭히던 구관이 떠나고 신관이 왔는데 더 독하다. 선조들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신께서는 우리를 위해 어디에나 폭탄을 준비해 놓으신다는 사실을. 세상엔 사이코가 있다. 타인의 정신적 혈액을 빨아먹고 사는 멘탈 뱀파이어도 있다. 나쁜 놈도 있고 미친 ×도 있다. 어떤 조직이든 20%는 이런 자들이 버젓이 차지하고 있다. 당신 상관이 이 20%에 속한다면 당신은 대단히 불운한 경우다. 나는 이들을 대하는 방법이나 이들의 언행을 견디는 방식을 논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아랫사람을 무시하는 이에겐 그에 걸맞은 최후가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기원전 7세기, 춘추전국시대 송나라에 남궁장만이란 장수가 있었다. 그는 천하장사였으나 노나라와의 전쟁에 나갔다가 일시적인 포로가 됐다가 풀려났다. 얼마 뒤 송나라 임금 송민공이 연회를 했는데 남궁장만이 창던지기 쇼를 선보였다. 송민공은 “노나라에 잡혀갔다 온 포로가 재주를 부리네…”하며 놀렸다. 남궁장만은 창피했지만 참았다. 곧 송민공은 바둑판을 가져오게 해 남궁장만과 바둑을 두었다. 남궁장만이 다섯 판을 내리 지자 다시 한 판 더 두기를 청했다. 송민공은 “원래 포로는 지는 게 일이야…” 하며 놀렸다. 남궁장만은 또 참았다. 그때 주나라 사신이 와서 새 천자의 등극을 알렸다. 송민공은 “사신을 보내 축하하자”고 했고, 남궁장만이 자기를 보내 달라고 청했다. 송민공은 또 그를 비웃었다. “송나라에 아무리 사람이 없기로 어떻게 포로가 됐던 놈을 사신으로 보내겠느냐?”라고. 이 말에 남궁장만은 폭발하고 말았다. 송민공에게 욕을 퍼부으며 바둑판을 들어 내리쳤다. 송민공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남궁장만은 후환이 두려워 진나라로 망명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임금이 신하를 깔보거나 비웃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경우가 다반사다.

뭐든 적당히 해라. 적당히. 한 번 팀장이 영원한 팀장도 아니고, 아랫사람이라고 늘 빌빌거리는 건 아니다. 당신이 괴롭힌 그가 퇴사한 뒤에 갑으로 변신할 수도 있고, 당신이 정년 후 경비원이 됐을 때 그 아파트 자치위원장이 돼 있을 수도 있다. 아Q처럼 어리석고 모자라 마을 사람들에게 핍박받는 자도 마음속에는 “혁명이 일어나 동네 사람 모두를 죽여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세상 이치와 위치는 돌고 도는 법. 분노의 칼을 맞고 쓰러지기 전에 있을 때 잘하자.

명로진 배우 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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