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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이주향의인문학산책] 홍콩이여, 힘을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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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환법 저지, 정치 자유 바로미터 / 평화 염원, 티베트 등으로 번지길

시위에 참여한 한 소녀가 똑똑히 말한다. “홍콩의 미래에 관심이 있어 왔어요. 그건 우리의 미래잖아요.” 홍콩 시민은 절박했다. 인구 700만명 중에 100만명이 넘는 시민이 거리로 나왔다면 그것은 홍콩의 민심이다. 경찰 뒤에 숨어 시민을 통제하고 있는 홍콩 정부의 신뢰도를 보면 더 명확해진다. 정부 신뢰도를 0%라 대답한 시민이 무려 43.5%나 된단다.

세계일보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송환법 저지는 홍콩의 정치적 자유의 바로미터다. 중국이면서도 중국이 아닌 곳, 그곳에서 자유가 공포가 되고 민주주의가 중국의 눈치를 봐야 한다면 홍콩이 아시아의 진주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홍콩에 대해 자부심이 있는 시민이 일국양제(1국가 2체제)의 약속을 지키라며 조용히 그러나 다부지게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적 자유를 위해 싸운 사람들, 그러다가 홍콩으로 들어온 중국인을 홍콩이 보호하지 못한다면 홍콩은 절대권력이 함부로 지배할 수 있는 섬이 돼 버리기 때문이다. 저렇게 모여 자유에 대한 의지를 다지고 평화를 호소하고 있는 홍콩 시민의 일이 남 같지 않은 것은 일본에게, 독재정권에게 자유를 반납하고 살아온 우리의 기막힌 역사 때문이기도 하다. 절대권력은 폭력이다. 그 폭력은 집요해서 포기를 모른다. 중국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그랬고, 티베트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러면 홍콩은 어찌 될 것인가.

2년 전 나는 생태학자들과 함께 우르판에서 톈산산맥 북단 사막 지역을 거쳐 알타이산 아래까지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나는 자연스럽게 신장위구르자치구에 모여 사는 위구르족의 독립을 지지하고 있었다. 생김새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생활양식도 다르고, 무엇보다도 독립하고 싶은 열망이 그토록 강한데 중국에 묶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넓고 넓은 초원에서 양을 키우며 말을 타고 사는 사람이나 사막의 오아시스에 기대 포도농사를 지으며 사는 무욕한 사람에게 무슨 프레임을 씌울 것인가. 그런데 거기에도 공안이 있었다. 시장에서, 길모퉁이에서, 공원 입구에서, 마침내는 사막 한가운데 휴게소에도 총을 멘 공안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필수품을 사기 위해 시장을 갈 때에도 신분증을 검사하는 곳이었다.

그 아름다운 사막지역, 초원지역을 다녀오고 나서 내게는 슬픈 믿음이 생겼다. ‘그들은 독립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믿음. 독립하지 못할 텐데 독립의 꿈을 꾸는 것은 어리석은 것인가, 씨앗을 심는 것인가. 그럼에도 일제강점기를 거쳐 온 역사를 가진 민족의 후손이기에 나는 그 꿈을 그저 부질없는 꿈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6년 전에는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서 여름방학을 보냈다. 거기 달라이 라마 사원은 80년대 시골 초등학교 건물처럼 낡고 허름했지만 정겹고 편안한 곳이었다. 활력과 경건함이 다 있는 기분 좋은 곳이었다. 낡은 호텔에서 짐을 풀고 달라이 라마 사원으로 들어간 첫날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입구 게시판에 걸려있는 티베트 사람들의 사진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티베트말로 적혀 있어서 처음에는 그들이 누구인지, 왜 거기 걸려 있는 지 알 수 없었다. 며칠 지나고 나서 알았다. 그들은 티베트의 독립을 열망하며 세상을 떠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중국이 티베트를 어떻게 장악했는지 알고 있다. 단지 접경에 있다는 이유로 어떤 폭력으로 어떻게 빼앗고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그래서 나는 아직도 티베트를 중국으로 부르는 것이 미안하다. 다람살라에서 만난 티베트인은 달라이라마라는 영적 지도자가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며 매일 사원에 나와 기도하는 것을 복으로 알고 사는 소박한 사람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동일한 꿈을 꾸고 있다. 달라이 라마와 함께 독립된 티베트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사는 것. 그들의 꿈과 열망이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현실은 가혹할 것이다.

나는 무력진압에 대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평화의 염원으로 모인 홍콩 시민이 그 힘으로 자유를 지켜내길 바란다. 그리고 그 에너지가 티베트로, 신장으로 번져나가길 바란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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