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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설왕설래] 당파의 지록위마(指鹿爲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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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김성일. 퇴계 이황의 수제자 중 한 사람이다. ‘퇴계 언행록’에는 그가 전하는 퇴계의 말이 남아 있다.

“언론(사헌부·사간원·홍문관)을 책임진 자는 임금에게 간하다 듣지 않으면 떠나는 것이 옳다. … 종사(宗社)의 존망과 오도(吾道·유학)의 성쇠에 관한 것이라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벼슬길에 나선 선비의 자세를 이르는 말이다. 간하는 것은 옳고 바른 말이다. 거짓말이 아니다. 제자는 스승의 뜻을 좇았을까.

임진왜란 1년 전 일본을 다녀온 김성일. 억지 주장을 했다. 서인인 황윤길이 “반드시 병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자 동인인 그는 “그런 정세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깜짝 놀란 서해 유성룡, 편전을 나와 “병란이 있으면 어찌하겠느냐”고 따져 묻자 “인심이 놀랄까 해명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 기록은 ‘징비록 권1’에 남아 있다.

동서로 갈라진 조선. 상대 주장이라면 무엇이든 부정한다. 그런 나라에는 ‘허망한 논쟁’만 들끓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강토를 피바다로 물들인 임진왜란은 바로 그 결과다. 뒤늦게 진주성 수축에 나선 김성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부정입학 의혹을 두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참다못해 한마디 한다. … 조 후보 따님의 경우도 대학교수 지도 아래 현장실습을 한 것이고 그 경험으로 에세이 보고서를 제출한 것이다. 당연히 제1 저자는 그 따님이다.”

황당한 말이다. 그의 말을 전한 기사들에는 그제 몇 시간 만에 수만개의 ‘화나요’ 표식이 붙었다. ‘분노한’ 글도 쏟아진다. “교육감이 에세이와 논문도 구별 못 하느냐.” 대한병리학회도 반박했다. “그것은 에세이가 아니라 논문”이라고. 따님? 왜 그렇게 깎듯이 불렀을까. 조씨의 딸·웅동학원·사모펀드를 둘러싸고 쏟아지는 온갖 의혹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인가.

이익에 반하면 무엇이든 거짓이요, 가짜뉴스라는 주장. 그것은 지록위마(指鹿爲馬)다.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 판에 옳고 그름을 어찌 따지겠는가. 그런 나라는 위험하다. 부끄러운 줄도 모른 채 거짓을 뻔뻔히 쏟아내니. 임진왜란 직전도 딱 그 짝이었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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