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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지역공동체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재정 효율만 따진 폐교 결정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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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정중 폐교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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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청에서 서쪽 방향으로 3~4㎞를 가다 김포공항이 보일 때쯤 인구 2만2000명이 거주하는 마을이 나온다.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의 기록을 보면 본래 이곳은 소나무가 많고 정자(亭子)가 있다 해서 ‘송정리’로 불렸다. 김포공항이 들어선 후 인근 몇몇 마을과 함께 묶여 오늘날의 공항동이 됐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송정’이란 이름에 애착을 가졌다. 1991년 마을 가장자리에 중학교가 하나 새로 생겼는데, 학교 이름을 다름 아닌 ‘송정중학교’로 지었다.

송정중은 스무살 생일을 한 해 앞둔 2020년 폐교될 예정이다. 직선거리로 불과 700m가량 떨어진 곳에 마곡2중학교(가칭)가 들어서면서 이 학교로 흡수통합되는 것이다. 내년 3월 개교 예정인 마곡2중은 신축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교육청은 “새 학교에 어울리는 좋은 이름을 공모한다”며 의견을 구하고 나섰다. 반면 폐교에 직면한 송정중의 일부 학부모와 학생들은 “학교를 남겨달라”며 몇 달째 거리로 나서고 있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송정중 폐교의 근간에는 교육시설에 대한 ‘한정된 돈(예산)의 효율적 집행’ 문제가 있다. 이에 반해 폐교와 관련된 다수의 연구에서 전문가들은 학교를 단지 교육시설이 아닌 지역공동체의 문화와 전통, 인간관계와 이해관계 등이 다양하게 얽혀 있는 ‘복합공간’으로 보고있다. 송정중 폐교 논란을 계기로 인구 증감에 따른 대응이나 재정 효율 문제를 앞세워 ‘기계적으로’ 학교를 없애는 일이 과연 옳은가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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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정규모학교 육성’ 논란 10년째 반복

현재의 폐교 정책은 정부가 2000년대 중반부터 추진해온 ‘적정규모학교 육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시작은 농어촌 지역 학교들의 통폐합이었지만 인구 감소 추이에 따라 도심 지역으로도 대상이 확대됐다. 도심 지역 학교의 폐교가 본격화된 건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다. 2009년 8월 이명박 정부는 “2012년까지 소규모 초·중·고교 500곳을 통폐합하겠다”며 도심 지역의 경우 학생수 200명을 폐교 대상 기준으로 제시했다.

당시에도 학교의 무분별한 통폐합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이명박 정부는 2012년이 되자 “폐교 시 각 교육청에 제공하던 인센티브를 한 학교당 기존 20억원에서 최대 100억원으로 대폭 상향하겠다”고 선언했다. 시·도교육청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폐교에 나서달라는 뜻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폐교 정책을 더 장려했다. 2015년 12월 발표를 통해 폐교 대상 기준을 중·고교의 경우 학생수 300명 이하로, 초등학교는 240명 이하로 각각 확대해 제시하고 인센티브도 더 늘렸다. 이와 함께 설명자료를 통해 “적정규모학교 육성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지만 한정된 교육재정을 감안할 때 재정 운영의 효율성을 위해서라도 필요한 정책”이라고 밝혔다.

송정중 폐교가 본격화된 것도 2015년부터다. 서울시교육청은 마곡지구에 기존 마곡중학교에 이은 마곡2중학교 신설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학생수 300명 이하인 송정중과 공진중을 폐교 대상으로 결정했다. 당시 시교육청은 정부의 중학교 폐교 기준(200명)보다 더 넓은 ‘300명 이하’를 자체 기준으로 삼았다. 송정중 학생은 마곡2중으로 흡수통합하고, 공진중 학생은 인근 경서중 등으로 분산배치한다는 게 시교육청의 계획이었다.

90학급 규모인 마곡2중의 건립예산은 250여억원으로, 이 중 80%가량인 204억원을 교육부가 지원한다. 규정상 100억원 이상 국비가 투입되는 시·도교육청 사업은 교육부의 중앙투자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마곡2중 신설계획은 한 차례 재심사를 거친 끝에 2016년 12월에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이때 교육부가 내건 ‘조건’이 송정중, 공진중, 염강초 등 3개 학교의 폐교였다.

마곡2중 신설로 3개교 통폐합

교육부 조건부 승인 받은 시교육청

총액 300억 가까운 인센티브 얻어


결과적으로는 마곡2중을 하나 신설하는 과정에서 기존 학교 3개가 없어지는 셈인데, 이것이 시교육청의 자발적인 ‘의지’였는지, 폐교를 장려하던 교육부의 ‘강요’였는지 현재로선 확인할 길이 없다. 시교육청은 3개 학교 폐교에 따라 총액 300억원에 가까운 인센티브를 교육부에서 받을 예정이다. 교육부는 지역주민 반발 문제 등으로 폐교가 어려운 도심 지역 학교를 한꺼번에 3개나 폐교함으로써 장기적인 예산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 지역공동체와의 협의는 ‘실종’

폐교 과정서 주민 의견 수렴 실종

학부모 “학교서 인간관계 쌓는데”

전문가 “학교, 단순 교육기관 아닌

사람·이해관계 얽힌 복합공간”


문제는 폐교의 이유를 재정 효율성에서만 찾기엔 지역사회에서 학교가 갖는 의미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다. 박삼철 단국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학교는 지역의 정체성 확립과 소속감 증대, 인적자원 양성 등 사회적 자본 형성에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존재”라며 “학교가 있고 없고에 따라 집값이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로 폐교 문제는 지역 당사자들 간 이해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폐교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논의 시 폐교가 가져오는 영향에 대한 면밀한 평가와 함께 지역주민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폐교 시 지역사회와의 협의가 중요하다는 건 교육부도, 시교육청도 다 아는 사실이다. 교육부의 ‘적정규모학교 육성 추진방안’을 보면 폐교 대상 학교를 확정하기 전에 지역주민과의 협의 및 교육환경영향평가 등을 실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시교육청의 ‘적정규모학교 육성 매뉴얼’에도 사전 의견수렴 및 설문조사 등을 통해 폐교 대상 학교를 확정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이에 반해 송정중 폐교 과정에서는 이 같은 절차들이 거의 생략되다시피 했다. 같이 폐교 예정인 공진중, 염강초도 마찬가지다. 2017년 4월 시교육청은 서울시의회에 마곡2중 신설 동의안을 제출했지만 시의회는 “통폐합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주민들과 협의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며 부결시켰다. 같은 해 말 요구안이 다시 제출돼 시의회에서 가결되긴 했지만 이때도 협의가 안된 점이 지적됐다.

이는 현재 송정중 폐교에 반대하는 주민과 학생들이 가장 ‘분노’하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송정중의 한 학부모는 “젊은 학부모들은 학교를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쌓고 교류하고 있다”며 “지역공동체에 큰 의미를 갖는 학교를 어떻게 주민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없앨 수 있는지 그게 가장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 폐교 결정 ‘번복’ 사례 없진 않지만

영향평가·폐교 대비 계획도 불분명

마곡2중 학생 수 등 의견도 엇갈려

마곡 주민들은 혁신학교 결사반대


사전에 각종 영향평가나 폐교 대비 계획 수립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불분명하다. 폐교 결정 당시 300명이 안되던 송정중의 현 학생수는 455명으로 폐교 대상 기준을 훨씬 웃돈다. 마곡지구 내 아파트 입주가 속속 진행되면서 인구가 유입된 결과다. 마곡2중 개교 후 학생 증가 추이나 중학교 신입생 배정 문제를 놓고서도 시교육청과 주민들 간 의견이 엇갈린다. 시교육청은 “결국 마곡2중으로 학생들이 몰려 송정중의 학급 유지가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주민들은 “인근 송정초등학교 졸업생만 수용해도 매년 100명 이상 신입생 충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시교육청은 송정중이 혁신학교인 점을 들어 마곡2중 역시 혁신학교로 지정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이 역시 실현될 가능성이 낮다. 최종 결정은 학부모들이 하는데, 마곡지구 주민들은 ‘혁신학교 결사반대’를 내걸고 단체행동을 벌이는 중이다. 혁신학교 지정에 대한 반발을 예상해 미리 대비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는 “송정중 폐교는 결국 혁신학교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송정중 폐교 문제의 해법을 찾기란 간단치 않다. 학교를 유지하는 게 가장 명확한 해결책일 수 있지만, 이 경우 이미 폐교가 진행 중인 염강초 등과의 형평 문제가 걸린다. 폐교를 전제로 마곡2중 신설허가와 사업비(교부금)를 제공한 교육부도 번복은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이미 전국에 수많은 학교들이 심사를 거쳐 폐교가 진행 중인데, 송정중을 번복하면 타 지역에서도 학교 존치 요구가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폐교 번복 불가” 입장

존치 주장 주민들 “행정소송 불사”


교육부 관계자는 “폐교를 조건으로 학교 신설허가를 받았다가 이를 번복한 사례가 없진 않다”며 “당시 폐교를 번복한 학교의 비율만큼 사업비를 일부 회수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기준이라면 송정중 유지 시 시교육청은 사업비 반납으로 약 70억원, 인센티브 삭감 110억원, 학교 유지 예산 지출 등 어림잡아 200억원 가까운 재정적 손실을 보게 된다.

시교육청은 23일 행정예고를 통해 송정중 폐교 사실을 공고하고 의견수렴 절차에 착수했다. 송정중 존치를 주장하는 학부모들은 “시교육청이 폐교를 강행하면 감사 청구 및 가처분 신청, 행정소송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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