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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아픈 몸으로 동네 독거노인들 보듬는 '거리의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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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회 청룡봉사상] 仁賞 환경미화원 신웅선씨

'중증 장애' 강직성 척추염 앓지만 14년간 매달 2~3번 반찬 배달하고 10년째 매주 토요일엔 목욕 봉사

월급 10~15% 기부도 이어와

"어머니, 저희 왔어요~!" 25일 오후 신웅선(57)·안연숙(59)씨 부부가 인천 남동구 만수동의 한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다. 김명숙(가명·84) 할머니가 활짝 웃는 얼굴로 문을 열었다. 부부는 들고 온 보따리를 김 할머니에게 전했다. 보따리를 풀자 잡채와 버섯불고기가 가득 든 반찬통이 나왔다. 신씨 부부는 2005년부터 만수동 일대에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매달 두세 번씩 직접 만든 반찬을 배달하고 있다. 신씨는 동네 목욕탕에서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에게 목욕 봉사도 10년째 한다. 2010년부터는 월급의 10~15%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한다. 이렇게 기부한 돈이 올해까지 3000만원이 넘는다. 신씨는 이런 경력을 인정받아 53회 청룡봉사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아픈 내가 살아 보려고 열심히 봉사하고 나눈 건데…. 어르신들이 이 소식을 들으시면 참으로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지난 25일 인천 남동구 만수동의 한 아파트에서 신웅선(가운데)·안연숙(오른쪽)씨 부부가 이 집에 홀로 거주하는 김명숙(가명) 할머니에게 직접 만든 반찬을 건네며 웃고 있다. /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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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는 사실 '강직성 척추염'을 앓는 중증 장애인이다. 강직성 척추염은 척추가 굳어가는 질병으로, 완치가 어려운 희소병이다. 이런 몸을 이끌고 신씨는 2002년부터 인천 남동구청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한다. 지금은 두 달에 한 번 대학 병원에서 주사를 맞아 진행 속도만 늦추고 있다. 정확한 진단을 받기 전까지 몇 해 동안, 신씨는 병명도 알지 못한 채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신씨는 "척추 마디마디가 으스러지는 듯 아파, 매일 새벽 3시 30분 아내가 입혀주는 옷을 입고 나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너무 고통스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 했다. 2005년 어느 겨울날 불법 현수막을 철거하면서 챙긴 노끈을 들고 뒷산에 올랐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 아흔 되신 어머니, 처자식이 눈에 아른거렸다. "위만 쳐다보지 말고, 아래로 어려운 사람들도 돌보며 살아가야 한다던 어머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신씨는 산에서 그냥 내려오며, 앞으로 남은 인생은 '덤으로 사는 인생'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는 "이왕 덤으로 사는 거, 나누는 삶을 살아보자 결심했다"고 했다. 부부는 이렇게 회고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때부터 신씨는 아내와 함께 동네 주민들을 통해 혼자 사는 어르신들을 수소문했고, 반찬 배달을 시작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토요일 오전 신씨는 동네 목욕탕으로 간다. 목욕탕에 들어서면 "만수동 왔는가"라며 어르신들이 반겨준다. 이곳에서 어르신 세 분의 등을 밀어드린 지 올해로 10년째다. 처음에는 목욕으로 혈액순환이 좋아지면 척추 통증이 줄어들까 해서 갔다. 하지만 탕에서 어르신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지고, 이제는 등도 밀어드리는 사이가 됐다. 신씨는 "봉사활동을 하며 몸을 더 움직이고 긍정적으로 지낸 덕분에 이제는 건강도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알리려고 한 봉사활동은 아니었지만, 소문이 나면서 인천사회복지협의회·인천광역시장 등으로부터 각종 상을 받기도 했다.

신씨는 3년 뒤면 정년퇴직이다. 그는 "봉사를 하며 만나 뵌 분들이 결국 나를 살리고 도와주셔서 정년까지 일하는 것 아니겠느냐"며 "환경미화원 월급의 20%라고 해봐야 얼마나 되겠느냐만, 꾸준히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파트 융자금 5000만원은 퇴직금으로 갚으면 된다"며 웃었다.

[인천=이동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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