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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북한 미사일, 진짜 문제는 ‘고체연료·지하갱도’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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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4일 북한이 강원 원산 인근 호도반도에서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쏘아올린 것을 시작으로 3개월에 걸쳐 진행한 탄도미사일과 방사포 발사는 국내에 상당한 충격파를 안겼다. 지난해 남북, 북미 대화 국면에서 무력시위를 자제했던 북한이 갑작스레 새로운 종류의 유도무기를 공개해 최대 600여㎞를 비행하는데 성공한 것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능력이 그만큼 탄탄하다는 증거라는 해석이다.

세계일보

북한이 지난 24일 새로 연구 개발한 초대형 방사포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하에 성공적으로 시험발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5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 홈페이지에 게재된 방사포 발사 모습으로 차륜형 발사대에 발사관 4개가 식별된다. 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따로 있다. 고체연료를 쓰는 엔진을 탑재한 미사일을 낮은 고도로 수백㎞의 비행거리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고체연료 미사일에 북한이 한미 연합군 공습에 대비해 건설한 지하벙커와 터널이 더해지면 한국군의 미사일방어체계를 위협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북한 위협 대처가 어려워지는 이유

액체연료 미사일과 고체연료 미사일의 가장 큰 차이는 조기 경보 여부다. 액체연료는 독성이 강해 미사일 동체를 부식시킨다. 따라서 발사 전에 연료를 주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1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사전징후가 명확한 만큼 고고도 무인정찰기나 전자전기 등을 투입하면 사전 대비가 가능하다.

한미 연합군이 최근까지 유사시 북한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방어하는데 자신감을 보였던 이유다. 첨단 정찰자산을 동원해 이동식발사차량(TEL)의 동향을 추적, 연료 주입 과정에서 공습해 파괴하면 북한이 쏠 수 있는 미사일 숫자는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당시 “북한 미사일이 1000기가 넘는데 사드 미사일 48기로 막을 수 있느냐”는 주장을 반박하는 논리가 됐다.

하지만 고체연료 미사일이 전면에 등장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고체연료 미사일은 연료를 미리 채운다. 연료가 충전된 미사일을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장착한 뒤 마음대로 이동하다가 필요할 때 언제든 쏠 수 있다.

세계일보

북극성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탑재 잠수함만 추적하면 발사를 저지할 수 있고, 항공기는 기존 레이더로도 포착이 가능하다. 하지만 발사 징후를 알 수 없는, 남한 전역을 위협하는 고체연료 미사일이 TEL에 실려 북한 전역에 흩어져 움직이면서 한미 연합군의 정찰자산을 교란하면 대응이 어렵다. 그만큼 남한을 향해 날아올 미사일이 늘어나게 된다.

난공불락의 미사일방어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사일이 한 발이라도 서울 등 대도시에 떨어지면 혼란과 공포의 확산을 막을 수 없다. 북한으로서는 고체연료 미사일에 ‘올인’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북한이 대구경조종방사포와 신형 전술 탄도미사일을 공개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궤도형 TEL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한다. 그동안 북한이 공개했던 TEL은 러시아의 스커드 미사일을 복제하거나 중국제 특수차량을 개조한 것이대부분이었다. 그만큼 숫자도 적었다. ‘2018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의 TEL은 100여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북한이 자체적으로 궤도형 TEL을 만들면 한미 연합군이 추적, 파괴해야 할 TEL의 숫자도 늘어난다. 한미 연합군의 눈을 벗어나 남쪽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TEL도 증가하게 된다.

세계일보

조선중앙통신은 11일 전날 새벽 함경남도 함흥 일대서 단행한 무력시위 관련, "김정은 동지께서 8월 10일 새 무기의 시험사격을 지도하셨다"고 밝혔다. 통신은 무기 명칭이나 특성 등은 언급하지 않은 채 발사 장면 사진만 여러 장 공개했다. 사진은 중앙통신이 공개한 사진으로, 북한판 전술 지대지 미사일이라는 추정이 제기된다. 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


북한이 휴전선 일대와 내륙지역 곳곳에 건설한 지하시설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한다. 북한은 남포시 천리마구역 인근 태성 기계공장과 자강도 전천군 별하리 병기공장, 황해북도 사리원 무기공장 등을 비롯해 170여개의 미사일 생산 관련 시설을 운용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시설은 한미 연합군의 공습을 피하고자 지하에 별도 공간을 마련해놓고 있다. 여기에 장사정포가 배치된 휴전선 인근 갱도진지와 TEL이 은신한 지하벙커까지 고려하면 유사시 한미 연합군이 타격해야 할 지하시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탄도미사일은 오차가 수백m에 달해 정밀폭격이 어렵다. 탄두중량이 2t에 달하는 현무 미사일 개량형이 배치돼도 지하시설을 파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타우러스(TAURUS)나 슬램 이알(SLAM-ER) 같은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오차가 수십㎝ 이하로 정밀 타격이 가능하다. 하지만 북한 내 표적을 파괴하기에는 수량이 턱없이 부족해 추가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파괴력과 정확도, 중장거리를 때릴 수 있는 좋은 무기체계들이 들어와 있고 작전운용 시스템도 발전돼 있다”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의 21일 국회 국방위 발언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北 무기개발 속도 못따라잡는 南

우리 군은 매년 수십조원의 국방비를 쓰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이 새로운 무기를 공개하면 “위협이 커졌다”며 이에 대응할 전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의 “그 많은 돈으로 떡 사먹었느냐”는 말처럼 국방비를 낭비해서 이런 말이 나올까. 그렇지는 않다. 무기체계를 확보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이 소요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우리 군이 무기를 도입하려면 소요제기→소요결정→사업추진기본전략 수립 및 국방중기계획 반영으로 이어지는 절차를 거친다.

이후 국내 연구개발 방식으로 무기를 확보하게 되면 탐색개발→작전운용성능 결정→소요군의 체계개발 동의→체계개발→시험평가→야전운용시험→양산을 거쳐 실전배치가 이뤄진다. 이 모든 절차를 거치는데 최소 9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해외구매 방식을 택하면 제안요청서 작성→제안서 접수 및 평가→대상장비 선정→협상 및 시험평가→기종선정→배치의 절차를 거친다. 아무리 서둘러도 7년은 걸린다는 게 해외 방산업체 관계자들의 평가다.

세계일보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2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새로 연구 개발한 초대형 방사포 시험 사격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25일 보도했다. 뉴시스 조선중앙TV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다보니 거액을 들여 구매한 무기가 실전배치 단계에서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소요제기 시점에서는 우리 군에 위협이었던 북한 무기체계가 나중에 다른 위협으로 바뀌면 결과적으로 ‘헛돈’을 쓰게 된다. 소요를 처음 제기했을 때는 첨단 기술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실제 도입 단계에서는 뒤떨어진 기술로 전락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개발과정에서 뜻하지 않는 난관에 직면하면 전력화 단계에 이르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그만큼 기술이 진부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형전투기(KF-X) 사업이다. 2000년대 초부터 개발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사업 타당성을 놓고 수차례 연구용역만 거듭하며 논란을 겪다가 2015년 12월에야 체계개발에 착수했다. KF-X는 4.5세대 전투기로 개발될 예정인데, 이보다 진보한 5세대 전투기인 F-35A는 청주 공군기지에 이미 배치가 되고 있다. F-35A 전력화 완료시점보다 5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후인 2020년대 후반에야 전력화될 KF-X의 성능이나 기술 수준을 놓고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의사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졌다면 기술의 진부화 논란을 피할 수 있었던 대목이다.

반면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단만 내려지면 모든 절차는 ‘프리패스’다. 소요제기나 사업추진 기본전략 수립, 공개경쟁입찰 등은 필요치 않다. 방위산업체라는 기업 형태도 없는 만큼 제안요청서 작성 등 공개경쟁입찰 관련 절차나 제도도 필요없다. 군수공업에 자원을 우선적으로 투입하는 북한 체제의 특성 덕분에 러시아 무기를 단순 생산하거나 개량하는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무기체계를 끊임없이 개발할 여력도 있다. 170여개의 미사일 공장에서 개발 또는 생산하는 미사일 종류도 많다. 무기개발 과정이 경직된 우리 군보다 훨씬 빠르게 무기를 개발하면서 전장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능력을 갖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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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2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 아래 새로 연구 개발한 초대형 방사포 시험 사격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25일 보도했다. 뉴시스 조선중앙TV


2019년 평양은 그동안 숨겨뒀던 대남 카드를 하나씩 꺼냈다. ‘북한판 이스칸데르’라 불리는 KN-23을 시작으로 대구경조종방사포와 전술 탄도미사일, 초대형 방사포를 동해상으로 쏘아올렸다. 어디서 왔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고체연료 미사일을 우리 앞에서 보란 듯이 발사, 대남 압박을 극대화했다.

우리 군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탄도미사일 전력에서는 우리 군이 우위에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하지만 군 밖에서는 의문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북한의 무기개발 속도를 남한이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군이 북한의 스커드 미사일을 막기 위해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를 구축할 때, 북한은 지하 시설에서 새로운 고체연료 미사일을 개발해왔다. 그 결과 패트리엇(PAC-3)와 사드의 틈을 파고드는 신무기들을 선보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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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선중앙TV가 5월 4일 동해상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참관 하에 진행된 화력타격 훈련 사진을 다음날인 5일 방영했다. 목표물을 맞힌 것으로 추정되는 모습. 연합뉴스 조선중앙TV


남은 우려는 하나다. 이것이 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또다른 무기를 북한을 개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 군과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더 늦기 전에 북한의 위협과 우리 군의 대응전략을 면밀하게 따져봐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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