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경찰 때문에 과격 행동…경찰이 변장해 화염병 던져
색깔 있는 물대포를 쏘는 건 시위 해산 아닌 체포가 목적
한국 영화 ‘1987’ 등 보면서 홍콩 시민들 관심·교류 원해
홍콩 시위를 주도하는 민간인권전선 얀 호 라이 위원이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
홍콩에선 ‘시위에 갈 거냐’는 질문이 금기어다. 시위 참여는 곧 불법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어제 시위에 나가는 꿈을 꿨어.” 이런 말로 시위 참석 의사를 대신해야 하는 게 홍콩 시민의 현실이다. 홍콩 시위를 주도하는 시민단체 민간인권전선의 얀 호 라이 위원(31)이 우스갯소리로 소개한 일화다.
한국 시민단체와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라이를 2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인터뷰 동안 라이는 휴대폰을 틈틈이 들여다봤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활발히 공유되는 홍콩 시위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평일인 이날에도 홍콩에선 시위가 벌어졌다. 200여개 중·고교 1만여 학생이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반대 동맹휴학에 들어갔다. 21개 업종 종사자들은 이틀간 파업을 시작했다. 3월 시작된 송환법 반대 시위는 13주째로 접어들며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상황은 변한 게 없다. 정부는 시민의 요구에 답하는 대신 강경 진압을 택했다. 실탄 사격과 물대포 발사, 무차별 폭행을 했다. 홍콩 시민 40여명이 부상당했고, 60여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야경이 아름다운 국제도시 홍콩은 매일 최루탄 냄새와 공포탄 소리가 퍼져가는 ‘전장’이 돼 버렸다.
시위대는 최근 화염병을 던지는 등 경찰 진압에 맞대응하고 있다. 라이는 “시위대의 과격한 행동은 홍콩 정부와 경찰에 의해 고조됐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자행한 폭력에 비하면 폭력적이지 않다”고 했다. 시위대가 선제적으로 공격하기보다 경찰의 과도한 폭력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하는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라이는 경찰이 시위대로 위장하기까지 했다고 전했다. 라이는 “경찰이 시위대로 변장해 시위대 안에서 화염병을 던진 게 밝혀졌다. 경찰이 시민과 같은 옷차림을 한 뒤 시위대가 비난을 받도록 과격행동을 하고 폭력을 선동하기도 한다”고 했다.
경찰은 시위의 평화적 해산이 아니라, 시위대 체포에 더 목적을 뒀다. 라이는 “색깔이 있는 물대포를 시위대에 쏘는 것은 해산이 목표가 아니다. 옷에 색깔이 묻은 시위대를 체포하기 위해서다”라고 했다. 경찰의 무차별 폭행도 문제다. 지난달 31일 홍콩 경찰은 특공대를 동원해 지하철에 탑승한 시민들을 곤봉과 고무총으로 무차별 진압했다.
경찰은 조슈아 웡 데모시스토당 비서장 등 시위를 지지하는 정치인과 지도부를 체포했다. 라이는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정부가 유명 정치인과 핵심 인물을 공격한다. 최근 민간인권전선 관계자가 대낮에 무장괴한에게 야구방망이로 폭행당했다”고 했다. 그는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고 의사 표현을 하는 게 개인 안전과 신변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며 “홍콩 정부가 경찰 정부, 권위주의 정부가 돼 간다는 신호”라고 했다.
홍콩 시위는 현재 기로에 서 있다. 라이는 “홍콩 행정부는 비상사태나 계엄령을 선포해 정치 활동과 시위를 막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며 “중국 정부 역시 10월1일 국경절을 기점으로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시위가 계속 과격한 양상을 띤다면 이를 빌미로 잔혹한 탄압이 뒤따를 것”이라면서도 “시위를 지속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라이는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중요하다고 봤다. 그는 “홍콩 시위가 지속될 수 있었던 건 국제사회의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홍콩 시민들은 영화 <1987> 등을 보며 한국 시민들이 독재에 어떻게 저항했는지 알고 교류하고 싶어한다. 과거 한국 시민들도 겪었던 고통을 마주한 홍콩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홍콩 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5가지다. 송환법 철폐,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경찰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불기소다. 라이가 말했다. “많은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하고 있어요. 정치개혁이 없다면 시위는 세대를 통해 계속될 겁니다. 2047년 홍콩이 중국에 영구 귀속된 뒤에도 중국 정부는 홍콩 시민의 신뢰 속에 통치할 수 없을 겁니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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